연변땅에서 본 한반도 형편
  • 김형국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ㆍ본지 칼럼니스트) ()
  • 승인 1991.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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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쥐거나 돈푼께나 만지면 모두 약탐을 하는 모양이다. 약탐에는 우리와 중국이 피장파장이다. 중국을 통일했던 진시황제는 불로장생약을 찾아 멀리 제주도까지 사신을 보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이제는 거꾸로 우리가 중국 땅을 마치 거대한 한약 공장으로 여기는 차례이다. 아시안 게임에 갔던 수천 한국 관광객은 거의 빠짐없이 북경의 동인당 약방을 찾았다. 수천년 동안 주종적으로 얽혔던 한중관계사를 기억한다면, 약탐한다고 중국을 ‘사냥하는’ 우리의 행각에서 역사의 일대 역전극을 보는 기분이 들 법도 하다.

연변 등 중국의 우리 동포들로 하여금 약보따리를 들고 서울을 찾게한 것도 식을 줄 모르는 우리의 보약탐이 다리를 놓았다. 드디어 지난해 가을, 서울의 덕수궁 돌담길은 대거 고국을 찾은 중국동포들의 약보따리로 성시를 이루었다. 도시 미관도 문제이거니와 동포들에 대한 대접이 박절해선 안된다는 여론이 돌자 적십자를 앞세워 나라에서 약을 구입해주었다. 동포들의 약재 비관세 반입량을 대폭 제한하는 후속 조치도 취했다. 최근 신문보도는 그 후속조치가 별무효과라고 전한다. 통관기준의 강화에도 불구하고 한약재 밀반입은 한결 교묘해진 수법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중간의 화폐경제력 격차로 중국동포의 방한이 한약재 암거래를 통해서나 겨우 가능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딴은 오랫동안 왕래가 단절됐고, 아직도 국교가 수립되지 않은 악조건인데 그나마 오가게 된 것만도 다행이다. 이산가족의 만남이 우선 반갑고, 게다가 북한과 바로 이웃한 중국땅 동포들의 남한 견문은 장차 한반도 정세변화에의 실질적 기여도 기대되기 때문이다.

길림성 연변일대는 조선족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 지난달, 그곳에서 만난 우리 동포들은 동족이 이룬 성취라면서 한결 같이 현대 한국의 발전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중국도 개방과 실용의 노선을 걸은 지 10여년만에 크게 변했다고 자랑하면서도, 서울을 향한 선망의 마음이 역연했다. 거꾸로 그들이 조국땅이라면서 지금껏 오갔던 북한이 폐쇄를 고집하고 있는데 대해 실망을 숨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남북한에 대해 상반된 시각을 가진 중국동포들이 자주 서울을 오간다면, 그들이 은둔사회 북한에다 한국과 주변 외부세계의 변화를 알려주는 정보의 창구가 되어줄 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런 정보창구의 역할이 기대되는 동포들의 왕래에 불신의 벽이 끼어들고 있음은 딱한 일이다. 덕수궁 돌담 앞의 어느 연변동포는 가짜라 할까봐서 사슴머리가 그대로 붙은 채인 녹용을 팔고 있었다. 우리 정부도 불신을 부채질했다. 수요 억제를 노렸음인지 동포들의 한약보따리에는 가짜가 많다는 식의 이른바 ‘언론플레이’를 했다.

중국동포에 대한 배려는 ‘예행연습’
부자가 가난한 친척을 그런 식으로 박대하기냐면서 연변의 유지급 동포는 가짜는 당치 않다고 했다. 국내의 중국통 교수도 같은 말이다. 모두가 국영 제약회사 제품인데, 공장에 따라 혹시 ‘함량미달’ 제품은 있을 수 있어도 그걸 가짜라고 싸잡아 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가짜를 양산할 오늘의 중국체제가 아니라는 점은 중국기행을 쓴 소설가 박경리의 지적이다. “비록 빈곤할지라도 평등이 자리잡힌 그곳 사람들은 자연스럽다”고.

진작 서울을 다녀간 연변동포들은 목돈을 만지는 행운을 잡았다고 한다. 대신 그곳 인심이 나빠진다는 소문도 없지 않다. 하지만 풍요의 갈구는 사람의 보편적 심리이다. 어줍잖게 보이는 한약재 보따리장사가 남의 땅에서 어렵게 뿌리내린 동포들에게 힘이 된다면 그 보따리 장사행각을 보다 사려깊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반도 통일을 기약하자면 국민경제가 바닥인 북한에 대해 국가 및 개인 차원의 지원은 불가피하고, 지원을 마다하지 않는 자세와 심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중국동포에 대한 배려는 북한동포에 대해 언젠가 쏟아야할 배려의 예행 연습이라 볼 수도 있다.

독일의 통일도 그런 사전적 배려가 힘이 됐다. 독일의 국경마을은 분단상태에서도 서독사람의 동독사람에 대한 복지성 구매와 물자보급이 이어졌다. 통일의 도화선이 됐던 동독 사람의 탈출이 줄을 잇자, 서독은 피난민용 주택 4만호 건설을 위해 금방 사십억달러를 계상했다.

연변쪽 국경도시 도분에서 바라본 북한땅 외관은 상대적으로 넉넉한 남한이 국민생활 동질화를 위해 감당해야 할 통일비용이 엄청날 것임을 말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두만강은 죽은 강이 된지 오래였고, 건넛산은 민둥산이었다. 그럼에도 아름드리 장백송은 계속 소련으로 반출중이었다.

내나라에 돌아와서 따져 본 한반도의 장래는 더욱 암담해질 뿐이다. 통일 비용이 엄청날 것이라는 경제적 예상 때문만은 아니다. 북한의 가난을 해결하겠다고 나서기엔 오늘날 우리의 개인은 이웃을 모르는 집단이기주의에 병들어 있고, 우리의 사회는 붕괴직전의 총체적 부패에 빠져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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