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공영제
  • 송준 기자 ()
  • 승인 1991.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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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인 시내버스가 도시 운송서비스라는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시내버스 공영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

찬.  박병소 서강대 교수.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스웨덴 웁살라 대학 이학박사. 서울시 교통체계개선위원회 위원장 역임.

● 시내버스 공영제를 도입하자는 근거는?
대중교통수단은 사회보장의 한 형태로서 철저하게 ‘시민의 발’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시내버스 요금이 인상될 때마다 정부나 업자는 서비스 및 운전기사 복지개선 등의 핑계를 늘어놓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공공의 재산이어야 할 교통수단이 몇몇 업자들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교통문제에 관한 기본시각을 바꿔야 할 대이다.

● 현행의 시내버스 체계도 공익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 한 예로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노선에도 버스는 달리고 있다.
승객은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는 버스를 원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은 노선에 많은 버스가 운행되는 교통체계가 필수적이다. 그러면 버스의 회전이 빨라져 승객은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수 있고 또한 버스 1대당 승차인원이 많지 않으므로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이렇게 승객의 편의가 보장되면 상당수의 자가용 운전자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반대이다. 노선이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버스의 배차간격이 길어진다. 승객은 오래 기다려야 하고 만원버스에 시달려야 한다. 황금노선에 중복 배차된 여러 회사의 버스가 과열경쟁을 벌여 과속운전 등의 부작용을 낳는 하년 변두리나 저소득층 주거지역 등 수익성이 낮은 노선의 운행은 피하려 한다.

● 적은 노선으로 도시 전역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가?
초창기의 시내버스는 한번의 승차로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승객의 욕구를 만족시키면 되었다.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서 승객이 원하는 노선이 많아지자 단순히 버스의 노선수를 늘려온 것이 지금까지의 시내버스 정책이었다. 그 결과 도시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에 도달하려는 승객은 버스를 탄 채 도심의 혼잡한 도로를 통과하여 다시 외곽지역으로 가야 한다. 많은 노선에서 이같은 현상이 겹쳐 교통체증이 발생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존의 시내버스 운행체계를 바꿔야 한다. 버스는 일정 지역을 순환하고 승객은 한번의 버스요금으로 자유롭게, 기다리지 않고 버스를 갈아탈 수 있는 제도이다. 승객은 도심을 통과하지만 버스가 중심지로 몰려들지는 않는다. 각 노선의 버스가 각기 다른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한 이런 발상은 꿈에 불과하다. 시내버스가 공영화되어 정부가 전 도시의 노선을 정리할 수 있어야 가능한 제도인 것이다.

● 일정지역을 순환하는 버스들이 교차하는 곳에서는 역시 교통 혼잡이 일어날 것 아닌가?
예컨대 서울역은 철도ㆍ지하철ㆍ버스가 만나는 지점이다. 민자여사를 지을 때 지하에는 지하철역을, 2층에는 시내버스 환승터미널을, 그리고 3층 이상에 매표소 및 상가를 배치했더라면 차를 갈아타는 승객의 편의를 보장함을 물론 교통혼잡도 통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 그만한 시설을 건설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필요하지 않은가?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를 바랄 수는 없다. 서울시의 도로를 1%(한강 양안의 남북 강변도로를 합친 길이) 늘리는 데 5천억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만큼의 도로를 신설한다고 하여 서울의 교통문제가 해결되겠는가. 공영 시내버스 환승체계를 갖추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실마리라고 생각한다.

● 민영과 공영의 중간형태인 ‘공동배차제’를 실시하자는 주장이 일고 있는데….
역시 미봉책에 불과하다. 노선이 그대로라면 배차를 공동으로 한다고 도심교통량에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

● 공영제가 실시된다 해도 운전자가 운행을 빼먹거나 승객에게 무례하게 대할 소지는 여전히 남는다.
공공정책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전문 관리가 경영을 맡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문경영인 시대이다. 교통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주고 책임을 지게 한다면 효율적인 운영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운전기사라는 직업은 초심자건 경력자건 상하등급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운전기사에게 공무원 규정에 따른 직위를 부여하면 공공에 대한 책임의식이 생긴다. 업무성적을 근거로 승진의 기준을 삼거나 관리직으로 자리를 옮길 기회를 열어준다면 운전사의 직업의식은 저절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정년퇴직자나 지원자에게 일정기간 교육을 받게 한 뒤 공영버스 운행의 감독직을 한다면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반.  고승연 교통개발연구원 교통계획실장. 서울대 토목공학과 졸업.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교통공학박사.

● 왜 시내버스 공영제의 도입을 반대하는가?
새 제도를 도입하고 시설을 갖추려면 많은 돈이 소요된다. 기존의 세금이 상당액 투자되는 것은 물론 새로운 목적세를 거둘 명분이 생기는 데도 버스요금은 여전히 시민의 부담으로 남는다. 운영상의 비효율성도 무시할 수 없다.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생산성은 저하되기 마련 아닌가.

● 비용이 많이 든다 해도 필요하다면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시내버스 공영제를 실시하고 있는 외국의 경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1950년대 자가용 대중화의 추세가 나타났다. 이로 인해 버스승객이 격감하여 업자들이 도산할 지경에 이르렀고 정부가 울며 겨자먹기로 넘겨받은 것이 지금의 공영제다. 유럽의 경우 시내버스 공영제에 드는 비용으로 버스요금ㆍ정부지원금 그리고 교통세에서 각각 3분의 1씩을 충당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라가 많다. 새로운 제도를 고려할 때는 장단점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버스요금으로 이만큼의 운송서비스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성과다.

● 현행 시내버스의 문제점이 적지 않게 지적되고 있는데….
개선안을 마련하는 데 있어 이상론만을 주장하는 것도 문제이다. 투자비용과 그에 걸맞는 효과를 엄밀히 따져보아야 한다. 현재 운행중인 차량과 주정차 시설 및 노선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민영제도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안으로 ‘공동배차제’가 연구되고 있다. 수익노선과 적자노선을 배합하고 여러 회사를 몇 개의 조합형태로 묶은 뒤 서로가 수용할 수 있는 절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 이 제도의 골자이다. 공동배차제는 크게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초보적 단계는 ‘노선순환제도’이다. 수익성이 서로 다른 노선을 적절히 배합, 각 회사의 버스가 일정기간 돌아가며 운행하는 방식으로서 이윤을 고르게 배분한다는 장점이 있다. 다음 단계가 ‘수익금 공동관리제’이다. 전체 버스를 노선 구분 없이 운행하여 얻은 이익을 각 회사가 출자액을 기준으로 나누어 갖는 방식이다. 이 단계에서는 차량관리 및 회사경영을 각 회사 단위에서 맡는다. 최종단계가 ‘차량 공동관리제’이다. 각 조합의 버스를 통합 관리하는 새로운 조직을 운영하여 공영제에 가장 근접한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 민영제가 유지되는 한 회사나 조합은 최대이윤을 추구하려 할 것이고 결국 서비스의 질은 개선될 수 없지 않은가?
서비스의 질이란 것은 공영제냐 민영제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버스 운영체계를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없는 데서 온 것이다. 서울의 경우 시청 교통국 운수1과의 버스계 직원5명이 4백48개 버스노선과 배차를 조정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감독은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다. 홍콩에는 버스감독만을 전담하는 사람이 9명 있다.

● 운전기사의 입장에서 보면 민영제나 공동배차제나 다른 것이 없다. 공영제를 통해 운전기사와 정비사의 복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공영제가 실현되면 운전기사와 정비사의 복지는 분명히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들어가는 돈을 확보하는 것도 문제이며 노사문제와 임금협상 등이 부작용도 우려된다. 결국 느는 것은 국민의 부담이다. 예비군 훈련 면제혜택을 주거나 개인택시 자격증 취득을 손쉽게 해주는 등의 방법으로 운전기사의 사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 노선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려 할 때 정부가 일일이 버스회사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는데….
유럽의 경우 정부는 버스업계가 신청하는 노선을 승인하거나 금지시키는 업무만 할 뿐이다. 버스노선은 업자들이 제일 잘 안다. 노선조정은 자율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여러개의 노선을 자율적으로 조절하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 공영제 버스가 민영버스보다 안락성 편리성 안정성에서 앞선다는 학자들의 견해가 있는데….
공영제가 실시되면 낡은 버스를 폐차시키고 재생타이어 사용을 규제하는 등 안전운행에는 도움이 될 것이나 전체 수송량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 또 2층버스를 운영한다면 시설과 성능이 좋으므로 고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값이 비싸고 전량 수입을 해야 하며 그 비용은 국민의 어깨 위에 짐지워질 것이다. 결국 제도의 장단점을 결정하는 절대기준은 없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이점을 살리면서 새 제도를 도입하되 최소의 비용으로 얼마만큼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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