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자존심 살린 ‘헨리 유엔’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2.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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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여름 어느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중국 상해 출신 변호사 헨리유엔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녹화재생기를 틀었다. 프로야구광인 그는 메이저리그 경기를 놓칠 수 없어서 예약녹화를 해두었던 것이다. 프로야구광인 그는 메이저리그 경기를 놓칠 수 없어서 예약녹화를 해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프로야구 경기는 녹화돼 있지 않았다. 10단계에 이르는 비디오의 예약녹화 기능을 다루면서 실수를 한 게 분명했다. 화가 치민 그는 더 현리한 예약녹화 방법은 없을까하고 궁리하기 시작했다.

  현지 TRW사의 우주기술그룹 변호사로 일하면서 전자공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고향이 같은 다니엘 쿼와 함께 간편한 예약녹화 방식을 개발했다. 두 사람이 고안한 것은 시청자가 신문이나 잡지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안내란에 프로그램별로 적힌 고유번홀글 리모콘으로 입력하기만 하면 예약녹화가 되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녹화 재생기에 60달러짜리 기구만 덧붙이면 되는 이 간편한 예약방식을 ‘VCR 플러스’방식이라고 이름 붙이고, 이제품을 제조하고 판매할 젬스타개발사를 설립했다.

  90년말 유엔은 이 획기적인 상품을 개발한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에 착수했다. 미국 유수의 신문사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프로그램 안내란 한켠에 조그만 고유번호를 집어넣도록 설득하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큰 신문사들을 움직일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90년 11월25일 이래?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4백여개 신문이 이 방식을 채택했으며, 캐나다 영국 일본은 물론 최근에는 한국의 ≪TV저널≫과 일부 신문사가 채택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워크≫는 이듬해 1월14일자에서 이들 덕분에 “결국 우리가 외식을 하는 동안에 ‘심프슨 일가’(미국의 인기 만화 프로그램)를 녹화하는 간편한 방법이 생겨났다”는 찬사와 함께 두사람을 90년의 최고 기업가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사진).

젬스타개발사는 신문사들로부터 라이센스 이용료를 받고, 녹화재생기 제조업자로부터는 사용료를 받고 있다. 또 자체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사업이 본격화된 작년 이 회사는 8천만달러 가까이 벌어들였다.

  유엔은 지금 더 큰 구상을 실천에 옮기려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자동차,여행,영화와 같은 상품을 광고할 때 흔히 광고를 비디오테이프레 담아 소비자에게 직접 우송한다. 유엔의 아이디어는 유선방송을 통하여 이런 광고를 내보내고 소비자가 이들가운데 필요한 것을 예약녹화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유엔은 아이플러스사라는 계열 회사를 세우고 광고계의 베테랑을 경영자를 영입했다.

  지난해 6월 부시 대통령은 캘리포니아공대 졸업식에서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를 정복한 헨리 유엔의 기업가 정신을 찬양했다. 그는 시장을 일본과 한국에 내준 채 단 한개의 VCR도 생산하지 않는 나라로 전락한 미국이 생산국들에게 떵떵거리며 사용료를 받게 된 사실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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