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돌아오다/새로운 '양김 시대'도래한다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3.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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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갈수록 DJ필요 …선택적 협조체제 될 듯

 '金心'이 돌아온다. 金大中 전 민주당 대표가 5개월 동안의 영국 케임브리지 체류를 마치고 7월4일 돌아온다.

 김 전대표는 평범한 시민으로서의 삶을 기대한다. 그는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경희대 및 경희대 부설 평화복지대학원에서 강의할 예정이다. 이 두 대학에서의 강의는 거의 확정적이다. 연세대에서는 최근 송자 총장이 김 전대표에게 동서문화연구소 특임교수로 와달라고 직접 요청했다. 연세대는 전담 비서와 연구실, 특임교수로서의 지위에 걸맞는 급여를 제의해 놓고 있다. 청주의 충북대에서도 특강을 요청했다. 최근 서울에 있는 한 종합대 교수협의회는 그를 차기 총장으로 추대할 것을 신중하게 검토했다. 그가 평생 명예 교수로 있는 러시아의 모스크바 대학도 이미 오래 전부터 강의를 요청해 놓고 있다.

 신앙과 신학에 대한 그의 관심이 예전보다 더 높아진 것은 그동안 뚜렷한 변화의 하나다. 평소 젊은이들이 신앙에 더욱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 그는 '1년에 네 번 정도'신앙간증을 하고 싶다는 뜻을 한 측근에게 비쳤다고 한다.

"아시아 민주 발전 위해 매진하겠다"
 지난 5개월 간의 행적을 보아도 신학 탐구에 더욱 투철해진 그의 모습이 드러난다. 동유럽을 방문했을 때 그는 역사적 의미가 담긴 교회나 성당을 찾아보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빌헬름 리버신학 교수와 독일 통일에 기독교가 미친 영향을 주제로 토론했고, 루마니아에서는 티옥테스트 정교회 대주교와 오랜 시간 대화했다. 귀국길의 마지막 일정인 이스라엘 방문도 성지순례가 목적이다.

 통일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활동은 널리 알려진 바대로이다. 그가 유럽에서 행한 여섯 차례의 연설 주제는 모두 한반도 통일 문제와 직.간접으로 맥이 닿아 있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통일에 관한 독일의 경험과 한국의 전망'(2.24 독일 사회과학연구소) '한국 민주화 투쟁에서의 나의 역할'(5.10 케임브리지 대학) '한국과 영국 및 유럽공동체의 관계'(6.2 영국 왕립 국제문제연구소) '대북한 정책의 새로운 접근'(6.8 런던 대학) '통일독일과 유럽통합의 한국 통일에의 관련성'(6.14 옥스퍼드 대학) '북한에 대한 새 통일정책의 필요성'(7.1 히브리 대학) 등이다.

 따라서 귀국후 그의 국내 활동은 각 대학에서의 강연, 신앙활동, 통일문제 연구, 한국현대정치사 집필로 집약할 수 있다. 이는 그가 어느 만큼 분주한 나날을 보낼 것인지 예고해 준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현실 정치와 완전히 단절할 것인가. 현재로서는 '그렇다'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는 이미 더 이상 현실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여러번 밝혔다. 귀국을 앞두고 평소 그가 알고 지내던 많은 사람에게 일제히 보낸 편지에서도 "앞으로 귀국하면 국내 정치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고, 오직 민족통일과 아시아에서의 민주발전 문제라는 두가지 목표에 대해 집중적으로 노력할 생각입니다"라고 분명하게 못박았다.

 그러나 현실 정치는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정치 현실은 그의 이러한 원칙적 입장 정리와는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다. 그의 귀국을 전후해 정치적 회오리는 이미 불기 시작했다. 그가 가만히 있어도 국내 정치 상황은 그를 또 다른 중대 변수로 삼아 격렬하게 꿈틀거리고 있다. 많은 정치 관측통이 그의 귀국을 '신 양김 시대의 도래'로 평가한다.

 왜 그럴까. 어째서 '신 양김 시대의 도래'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일까.

두 김씨 회동 아직은 불투명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지난 6월15일 金泳三 대통령과 李基澤 민주당 대표가 만난 청와대 회담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이기택 대표는 지난 3월 전당대회 이후 줄기차게 청와대 영수회담을 열자고 제의해 왔다. 이는 청와대가 주도해 진행하는 개혁작업에 대한 야당의 비판적 견해 필요성과, 당내에서 그의 불안한 입지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영수회담은 그를 명실상부한 야당 대표로 인정한다는 의미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이대표는 회담 성사를 위한 막후 접촉에 나섰다. 그래도 청와대가 계속 부정적 입장을 보이자 이대표의 불쾌감은 대단했다.

 6월14일께가 되면서 사정은 급변했다. 朱燉植 청와대 정무수석이 전격적으로 이대표를 방문하고 유럽 순방을 떠나기 직전인 15일로 영수회담을 확정지었다. 청와대의 돌변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당시만 해도 명주.양양 보궐선거에서의 패배가 그 주요인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영수회담을 서두른 청와대 전략은 두가지 이유에서 나왔다. 김대중씨의 귀국 시점에 맞춰 이대표의 위상을 높여줄 필요가 있다는 계산이 그 하나이고, 이대표가 영국에서 김씨를 만날 때 김대통령의 호의적인 인사를 전할 필요성이 그 두 번째였다. 민자당 정세분석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김씨의 귀국이 미칠 파장에 대해 면밀하게 분석해 왔고, 이미 6월초에 분석 내용에 기초한 영수회담의 필요성을 공식 건의했다.

 이에 대한 동교동 시각은 이렇다. "김대통령은 김 전대표를 크게 의식하고 있다. 김대통령은 이미 김 전대표가 귀국하면 될 수 있는 대로 빠른 시일 안에 만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대표의 위상을 높여준 것은 상대적으로 김 전대표의 위상을 낮추기 위한 것이다. 이는 김대통령이 가능한 한 김 전대표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포석이다. 그러나 청와대 입장에서는 차선의 방도를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전대표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미 김대통령에게 많은 시련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빠른 시일 안에'김씨를 만나겠다는 뜻을 표명했지만 실질적 회동 가능성은 아직 불투명하다. 김씨측은 한때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김대통령과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으나, 회동 뒤의 파장을 생각해 신중을 기하고 있다.

YS 인적 자원 부족해 DJ 정치력 상승
 김씨의 귀국과 김대통령과의 만남만으로 '신 양김 시대 도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신 양김 시대는 좀더 복잡하고 미묘한 정국 구도에서 파생할 것이다.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은 '정치 파장 이론'으로 이를 성명한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인다. 그 파장을 크게 하려면 돌을 던지는 힘도 세야 한다. 개혁 작업도 마찬가지다. 사정과 개혁의 폭이 넓고 깊어질수록 그것을 추진하는 정치력이 세지고 넓어져야 한다. 그런데 김영삼 정권은 그렇지 못하다. 개혁에 필수적인 정치적 원동력 부족, 즉 인적 자원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개혁 폭이 넓어질수록 김대통령의 정치적 힘이 축소된다는 아이러니가 생길 수 있다. 이럴 때 과연 누가 김대통령을 도와줄 수 있을까."

 민주당내 역학 구도의 변화보다도 민자당내 판세 변화가 김대중씨의 정치력을 높여준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아이러니이다. 민주당의 또 다른 최고위원은 "민자당의 1차 위기는 9월 정기국회 직전에 온다"라고 단언한다. 그는 "개혁 작업을 제도로 완비하기에 앞서 민자당내 각 세력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국회를 여는 과정도 굉장한 파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내년 5월 민자당 전당대회는 계파의 힘과 직결되기 때문에 갈등의 정점을 이룰 것이다. 제도 개혁으로 가느냐 못가느냐 하는 샅바싸움에서 민주계가 이기지 못하면 김대통령은 다른 말로 갈아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김대중씨는 정치력을 적극적으로 투자할 기회를 아직도 가진 셈이다"라고 말한다.

 이에는 민자당 의원들도 동의한다. 민정계 ㄱ의원은 전당대회 직전부터 95년말 총선 공천 작업이 진행될 때까지 약 1년반 동안 서너차례 위기 국면이 찾아올 것이라고 내다본다.
 95년 지자제 선거야말로 최대 위기 국면을 몰고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 ㅇ의원은 "문제는 김대통령이 더 이상 정치적 성격의 사정을 하기 어렵게 된 때 실시하는 지자제 선거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다든지 하는 경우처럼 선거에서 성과를 못 거두면 후반기 체제는 예측불허 상황으로 흘러가고, 예측 불가능한 각 세력의 합종연횡을 촉발할 것이다"라고 분석한다.

'YS 신당'은 탄생할 것인가
 새 정부 출범 직후인 3월부터 나오기 시작한 'YS 신당론'은 현재로서는 순수한 가상 시나리오에 불가하다. 그러나 이런 정황들은 단순 시나리오를 시나리오 이상으로 만들고 있다. 동교동의 한 핵심 비서는 "YS 신당론의 골격은 민자.민주당 민주계와 한때 민추협에 속했던 재야의 3자 연합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을 추적해 보면 김 전대표가 정계를 떠남으로 해서 생긴 정치적 공백을 메우기 위한 몸부림으로 볼 수 있다. 여야 모두 연약한 지반을 다져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이다"라고 독특한 해석을 내놓는다. 그의 전망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YS 신당이 필연적이라면 과거 기득권 세력, 즉 민정.공화계와 재벌.군벌의 신 3자 연합도 필연적이다. 김대통령이 먼저 상대할 대상은 야당이 아니라, 야당보다 더욱 어려운 내부의 반대 그룹이다. 김대통령은 40여 명이 채 못되는 인원을 이끌고 내부의 적과 통일.국제 경쟁력 문제 등에 대처해야 한다는 이중 삼중의 부담을 안고 있다. 결국 김대통령 개혁의 성패는 상당 부분 김 전대표에게 달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가 정계를 떠났건 떠나지 않았건 김 전대표의 지원은 꼭 필요하다."

 김씨의 귀국을 바라보는 각 정파의 시각은 모두 다르지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공통적이다. 민자당 金鍾泌 대표는 최근 한 사석에서 "그분은 약속을 지키려 하겠지만 상당수 민주당 의원들이 사사건건 자문을 구한다며 따라다니지 않겠느냐. 또 언론이 가만히 있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 자체가 바로 정치를 하는 것이 된다"라고 실질적인 정계복귀 가능성을 거론했다는 후문이다. 반면 姜三載 제2 정책조정실장은 "그분의 순수성을 믿는다. 우리가 공연히 억측해선 안된다"라고 말했다. 민정계의 한 고위당직자도 "그분이 정계를 떠났기 때문에 국민의 존경과 평가가 높아졌는데 이를 뒤엎고 정계로 돌아올 리 없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金台植 총무는 "김 전대표가, 김대통령의 개혁 작업은 대략 6개월 정도 지나면 그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 그의 예상대로 돼가고 있지 않느냐. 김 전대표는 어디까지나 大處高所에서 나라를 위한 큰 물줄기만 바로잡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국에서 김씨를 만난 한 의원도 "지난 30년 동안의 권위주의를 청산하려는 김대통령은 도와줘야 하지만 수구 세력이 반동화하지 않도록 '견제 속의 지원'을 하도록 부탁했다"라고 말했다.

일본 NHK '김대중 3부작'9월 방영
 현단계에서 김대중씨의 행보는 지극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신중성은 그가 귀국한 뒤에도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그는 '앞으로 이러한 일을 할 것이다'라고 미리 표명한 '숙제거리'가 너무 많다.

 그가 통일 문제 외에 제일 크게 생각하는 것은 아시아 지역의 민주적 발전이라는 휠씬 광범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파기스탄의 부토, 버마의 아옹산 수지,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싱가포르의 이광요, 중국의 방려지, 티베트의 달라이라마 등 아시아 지역 인권 지도자들과 지속적인 연대를 다질 계획이다. 또한 도쿄 납치사건 이후 한번도 가보지 않은 일본에도 들러 나카소네 전 총리 등을 만날 예정이다. 일본 NHK 텔레비전은 '살아 있는 현대사'시리즈의 하나로 김씨를 영국 현지에서 취재해 이미 제작 완료했다. NHK의 이 시리즈에 생존 인물이 등장하기는 발트하임 전 유엔 사무총장 이후 두 번째다. 전세계에 방영될 이 시리즈는 3부작으로 나뉘어 오는 9월 전파를 탈 예정이다.

 민주당 李海瓚 의원은 최근 영국에서 김씨를 만나 "우리 정치인은 분단구조를 악용하거나, 수용하고 안주하거나, 극복한 세 범주로 나눌 수 있다. 朴正熙 全斗煥 盧泰愚 씨가 분단구조를 악용한 경우다. 이 문제를 어느 만큼 극복하느냐에 따라 역사 속에 어떻게 자리매김될 것인지 결정될 것이다"라고 말했더니 매우 고마워하더라고 밝혔다.

 민족 통일을 위한 것이든, 아시아 지역의 민주화를 위한 것이든 앞으로 김씨는 지나간 세월 이상으로 바쁘게 보낼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의 한 비서는 "김심의 정답, 그리고 지상 목표는 민족의 통일과 부흥이다. 그의 정계 은퇴는 현실 정치의 은퇴이지 역사 속의 은퇴는 아니다"라는 말로 그가 나아갈 길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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