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충복들‘벤츠2ㆍ16'탄다
  • 시즈오카 다모스 (산케이신문 기자) ()
  • 승인 1992.05.2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번호 金 생일과 같아…1백여명에 하사


 김일성 주석의 생일(4월15일)을 전후해 북한을 다녀온 일본〈산케이신문> 시즈오카 다모스 기자가《시사저널》에 글과 사진을 보내왔다. 시즈오카 기자는 87년부터 89년까지〈산케이신문〉서을특파원을 지냈다. <편집자>

 한반도 최고의 명승지 금강산. 봄기운이 완연했지만 아직도 봉우리들은 눈에 덮여 있었다. 등산로 입구에 감색 벤츠가 눈에 띄였다. 번쩍번쩍 빛나는 새 차였다. 차번호를 보고 깜짝 놀랐다.‘2?160062??. 2월16일은 김정일 서기의 생일이다. 김일성 주석 80회 생일을 취재하기 위해 평양으로 출발하기 직전 도쿄의 한 소식통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김정일 서기가 측근 중의 측근에게만 자신의 생일을 본딴 번호를 부착한 벤츠를 선물했다.??2 ? 16??으로 시작되는 번호판을 단 벤츠는 북한의 새로운 지배계급을 상징한다.??그 벤츠가 눈 앞에 서 있다. 누가 타고온 차일까. 운전사에 물었더니??부부장의 차??라고 말했다. 금강산 입구 계곡에 지어진 간부 전용 식당. 이름을 확인할 수 없는 부부장은 외국에서 온 요인과 함께 그 식당에서 식사중이라는 설명이었다.


4월15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주석의 생일을 축하하는 수만명 규모의 대야회가 열렸다. 그곳에서도 벤츠의 행렬과 마주쳤다. 1백대를 넘는 벤츠가 대야회의 조명을 받아 번쩍번쩍 빛났다. 번호는 모두??2?16…??이다. 김서기의 측근이 대거 몰려온 것이다. 그러나 정작 김서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낮에 열린 10만명 규모의 매스게임장에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의 생일2?16과 아버지의 생일 4?15를 통해 군?당?정부의 최고 지도자 위치를 확고하게 구축한 그는 즘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외국으로부터 축하사절단이 잇달아 몰려드는 평양공항. 그 주차장에 은색 벤츠가 들어 왔다. 넘버는??평양30-369??. 됫자석에서 한중년여성이 내렸다. 엷은 적갈색 색안경을 낀 그 여성이 마중나온 공군장교와 다정스럽게 인사를 나눴다. 북한에서??마담 박??으로 통하는 그 여성은??금강산 국제그룹??박경윤 이사장이었다. 그 마담 박을 평양에서 만났다.


평균 수면시간 4~5시간. 바쁜 스케줄에 쫓기는 그였지만 틈이 나는 대로 솔직하게 취재에 응해주었다. 그가 확고한??평양 커넥션??을 구축하게 된 것은 1980년대 말이었다.??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된 지 반세기. 조국을 위해 무언가 해보고 싶었지요. 마침 나는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남과 북에 걸릴 거 없이 일을 시작했습니다.??한국어 영어 일어를 섞어가며 그는 말했다. 마담 박은 4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중국으로 향했다. 북경을 경유해 처음 평양을 밟았다.??중국에는 그 전에도 수없이 드나들었지요. 친하게 지내던 중국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소개로 평양에 들어갔어요.??

박경윤 이사장“은행도 설립하겠다"


 북한에서는 노동당의 힘이 절대적이다. 그는 우선 노동당 간부들을 공략해 튼튼한‘파이프??를 구축했다. 그들의 도움으로 평양 시내에 회사를 차린 것이 금강산 국제그룹이었다. 첫 사업은 관광업 이었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죠." 그의 사업은 북한 당국의 절대적인 후원 아래 궤도에 올랐다. 그는 평양외국어대학을 졸업한 젊은 인재를 대거 채용했다. 현재 직원수는 60여명. 일 ? 영 ? 불 ? 독 ? 중 ? 러시아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현재 금강산 국제항공은 여객기를 2대나 보유할 만큼 성장했다. "관광사업은 이제 궤도에 올라 이 부문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룹 전체의 사업을 확대하는 중입니다. 항공 선반 무역 호텔업 등에 이어 멀지않아 은행도 설립할 것입니다." 노동당 간부로 김서기의 측근이라는 설이 있는 朴鍾根 금강산 국제그룹 사장은 금강산국제그룹과 노동당의 '직통 파이프'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새로운 사업계획을 세우면 박사장이 노동당으로 달려가 금방 허가를 맡아내지요." 마담 박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박사장을 칭찬했다. 그는 세련된 인물이었다. 나이는 40대후반으로 보였다. "〈산케이신문〉입니까. 항상 우리 공화국을 크게 보도해주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칭찬이 아니라 빈정거림이었다. 평소 북한에 대한 비판기사가 제일 많이 게재되는〈산케이신문〉기자를 달갑게 생각할 리가 없다. 참고로 북한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신문은〈마이니치신문〉. 그 다음이 〈요미우리신문〉이고〈아사히신문〉은 왠지 세번째로 평가가 낮았다. 그에게??〈산케이신문〉은???하고 물었더니 "그런 것 묻지 않아도 알 만하지 않습니까"라고 되받았다. 마담 박은 평양의 귀빈용 초대소에 거주하며 운전사가 딸린 벤츠를 타고 다닌다.


북한취재가 가능했던 것은 그의 덕택이었다. 금강산 국제그룹을 통해 입국비자를 받았고 4월12일 나고야에서 금강산 국제항공 전세기로 평양에 들어갔다. 평양 도착 다음날 북한의 산악지대를 횡단, 원산을 거쳐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해변에서 눈에 띈 것은 두 열의 철조망. 첫째 열의 철조망에는 전류가 흐른다고 안내원이 귀띔해줬다. 남쪽 공작원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한 해안에서 잠깐 쉬고 있는데 소풍 온 소년 소녀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안녕하십니까"하고 가벼운 인사를 던졌다. 인솔교사가"같이 도시락을 먹지 않겠습니까"하고 권유했다. 도시락 반찬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밥 떡 배추김치 고구마튀김 나물 생선찜 등 가지 수는 꽤 되었으나 먹음직스러운 도시락은 아니었다. 그러나 '1일2식'이라는 북한의식량사정을 감안하면 꽤 근사한 도시락임에 틀림없다.

"정치는 1번이지만 경제는 조금 문제"


 다시 평양으로 되돌아온 어느날 술집을 찾아나섰다. 밤 10시경 호텔 택시를 타고 거리로 나갔다. 수년 전만 해도 외국인, 특히 기자가 외출하면 반드시 안내원이 뒤따라 붙었지만 최근에는 개인행동도 비교적 자유스러워겼다. 평양 시내에 국한되는 얘기지만…. 찾아간 술집은 50평 정도 되었다. 여성 '접대원'이 주문을 받아 술과 요리를 날라다 준다. 하지만 그들이 손님자리에 앉는 법은 없다. 남자 세명이 앉았던 식탁을 봤더니 일제 아사히맥주가 7병이나 놓여 있다. 북한산 맥주도 있지만 일본제 맥주가 더 인기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족 생일이라든지 특별한 날직장에서 입장권을 받는다.


'권'이 없으면 이런 술집에는 들어을 수 없다." 그 중 한 남자는 이런 말도 했다. 북한에서 노동당대회가 열린 것은 12년 전이다. 당 규약상 5년에 한번씩 열게 되어 있는데 말이다. "수령님은 인민이 행복해지기 전에는 차기당대회를 열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공화국의 정치제도는 1번이지만 경제에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때문에 당대회를 소집하지 않는 겁니다." 그들도 정확히 북한의 경제사정이 어떻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의 생가를 찾아갔을 때 일이다. 힘찬 군가소리가 들려왔다. 빨간 머플러를 목에 감은 소년들이었다. 만경대혁명학원 소년들이 학습차 온 것이다.


그 중 한 소년을 붙잡고 나이를 물었더니 "열넷입니다"라고 군인처럼 대답했다. "장래 희망은 무엇인가" "네. 인민군에 들어가겠습니다.”만경대혁명학원은 김일성체제를 지탱하는 노동당 ? 군의 간부 양성기관이다. 인민군 원수가 된 김서기 모교이기도 하다. 간부급 자제 중에서 선발된 사람들에게만 입학이 허용되는 특수학교로 전원 기숙사생활이 원칙이다. 8년제로 한국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이 학교의 생도수는 7백명. 졸업생 가운데 7할은 간부후보생으로 인민군에 입대하고 나머지 3할은 김일성종합대학 등에 진학한다. 국제적 고립과 경제 부진으로 북한은 건국이래 최대 난국에 직면해 있다. 이 소년들이 당과 군의 간부로 등장할 무렵까지 과연 북한의 현 체제가 그대로 유지될는지 두고볼일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