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분규ㆍ주변국 개입 겹치면 ‘최악’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1.03.1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후세인 이을 실력자 없어 정정불안… 불보듯 쿠르드족ㆍ시아파의 ‘대반격’ 예상

“후세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이라크 사람들이 결정할 문제다. 외부세력이 개입할 문제는 아니다.” 지난 2월15일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국민에게 ‘후세인의 처단’을 요구했을 때, 이라크의 반체제 정치인들조차 부시의 교구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불쾌감을 표시했었다. 그만큼 이라크인들은 자신들의 내부문제에 외부세력이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다. 또 그들의 민족주의적 정열은 이란ㆍ이라크전쟁 당시 30만명이 희생되고도 사담 후세인 정권을 지지할 정도로 대단한 데가 있다. 그러나 이번 걸프전쟁에서 이라크는 너무 참담하게 패배했기 때문에 군사적 패배를 정치적 승리로 전환시킨다는 ‘후세인 신화’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전쟁에서의 패배로 이라크의 권력구조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서방정보소식통들이 생각하는 후세인 이후의 대체세력은 크게 두가지 즉, 집권바트당과 그동안 후세인체제에서 소외돼온 것으로 알려진 군부세력이다. 분석가들에 따라 상이하긴 하지만 현재 이들 세력 중 일부 인물들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집트의 여당 민주국민당 기관지인 <마요>지의 만수르 편집장은 현재 바트당내 2인자이자 혁명평의회 부의장인 이자크 이브라힘 알두리, 이란ㆍ이라크 전쟁 당시의 영웅인 라시드 퇴역장군, 전외교관이자 영국에 망명중인 가베르 등을 유력한 차기대권주자로 들고 있다.

이집트의 反후세인 논객인 안니 만수르 (<옥터버>지 주간)는 25일 <알 아하람>지에 “CIA가 이브라힘을 이미 접촉하고 있다”는 기사를 기고하기도 했다.

또 이란 출신의 중동문제전문가인 아민타헤리는 청년장교그룹의 지도자인 하삼 압둘 마자르, 인민군 총사령관인 파하야 신알지즈파위, 바트당 2인자인 이자크 이브라힘 알두리, 타리크 아지즈 부총리겸 외무장관, 사둔 하마디 부총리 순으로 후계인물의 가능성을 꼽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인물이 후세인 체제를 계승하게 된다 해도 ‘아랍세계의 통일단결’을 주장하는 바트당 또는 군부의 인물일 경우 서방세계가 기대하는 이라크체제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오랫동안 중동외교를 담당해온 영국의 안토니 파슨스는 향후 이라크 체제의 전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라크에서 항상 그랬듯이 후세인 이후 ‘X'라는 장군이 다시 등장할 것이다. 그는 피는 덜 흘리게 하겠지만 결국 후세인과 비슷해질 것이다”

파슨스의 견해처럼 후세인을 이을 강력한 인물이 등장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이라크를 포함한 이 지역의 정세가 안정될 가능성도 있다. 또 그는 정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민심을 달래기 위해 부분적이나마 체제의 개혁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이라크의 권력구조 속성상 그와 같은 인물이 있겠는가하는 회의이다.

50년대의 지하혁명 활동, 58년 바트당 혁명의 성공 및 좌절, 집권기간 수차례의 쿠데타 위기를 겪으면서 후세인은 자신에게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이물들을 철저히 제거해왔다. 또한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면서, 주변인물들에게는 철저한 권력분산 정책을 펴왔다.

예를 들어 바트 당내 2인자로 알려진 이브라힘 혁명평의회 부의장은 당내 권력은 갖고 있지만 군부나 행정부와는 철저히 단절 돼 있다. 또 서열 3위인 라마단 제1부총리는 행정분야의 발언권은 가지고 있으나 군과 당에 대해서는 기반이 없다. 당의 이론가이자 외교분야의 1인자인 아지즈 부총리 겸 외무장관은 이라크에서는 소수파일 수밖에 없는 기독교도 출신이기 때문에 내정 장악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권력구조의 특성상 후세인 체제가 미국의 경제봉쇄조처 등 외부압력에 의해 붕괴될 경우 이라크 정치는 부분적인 권력기반밖에 가지지 못한 인물들의 군웅할거로 인해 극도의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분간 누가 권력을 잡게 된다 해도 그는 곧 그 다음 사람에게 타도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내정의 혼란이 가속되면 이라크의 고질적 문제인 민족분규가 발생하면서 이라크뿐 아니라 이 지역 주변정세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위험이 있다. 이라크는 종교적으로 수니파(4백만명)와 시아파(8백만명), 그리고 민족적으로는 아랍민족과 북부의 쿠르드족(5백만), 터키계 소수민족 등의 이질적인 요소로 이루어진 ‘인공적인 국가’이다. 이란이나 이집트와 같은 국가적인 일체성이 결여돼 있는 것이다.

한 국가로서의 이같은 취약성 때문에 내부붕괴를 막기 위해 후세인 정권은 쿠르드족의 분리주의운동이나 이슬람원리주의운동에 대해 철저한 탄압정책을 구사해왔다. 국민 사이에도 정권의 불안정은 곧 국가의 분열이라는 위기의식이 높기 때문에 무엇보다 정권안정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중앙권력이 혼란에 빠질 경우 소수파인 수니파 지배하에서 소모를 겪어온 다수파 시아파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 또 후세인의 화학탄공격으로 이미 커다란 피해를 본바 있는 쿠르드족의 분리독립운동이 격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민족분규가 발생해 주변 아랍국가들의 이해관계와 연동되면 이 지역의 정세는 극도로 혼란해 질 가능성이 높다. 우선 이라크의 시아파와 종교가 같은 이란이 이라크에 시아파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움직일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되면 시아파정권의 탄생을 견제하기 위해 수니파가 지배하는 사우디와 시리아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 쿠르드족의 분리독립움직임은 터키의 개입욕구를 부채질하게 된다. 이같이 주변아랍국이 이라크 내부의 사태발전에 얽혀들면 이라크가 ‘제2의 레바논’으로 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후세인이 제거되면 이 지역의 평화가 보장될 것이라는 미국 및 反이라크 아랍국가들의 기대와 달리 ‘후세인 이후 체제’는 더욱 많은 위험요소들을 안게 되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