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들의'꿍꿍이'파병
  • 한종호기자 ()
  • 승인 1993.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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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O를 국익.외화벌이 수단으로…식량.막사 없어'풍찬노숙'도

 소말리아의 유혈 사태 속보를 듣다 보면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견한 나라 가운데 상당수가 비교적 넉넉지 못한 나라임을 알게 된다. 평화유지군이라면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한 나라가 국제평화라는 공상한 명분을 위해 자금과 병력을 보내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으나 그렇지만은 않다. 그 배경에는 한국의 월남전 파병을 연상케 하는 사연이 있다.

 6월12일 현재 소말리아에서 진행되는'제2차 유엔 소말리아 활동(UNOSOM Ⅱ)'에는 24개국에서 병력 약 2만명이 참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병력을 파견한 나라는 파키스탄(4천4백36명)이고 두 번째가 미국(4천31명)이다. 파키스탄이 대규모 병력을 파견한 배경에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한다. 파키스탄은 90년 핵무기 개발 의혹 때문에 미국의 미움을 사 경제.군사 원조를 못받게 됐다. 미제 무기로 무장한 파키스탄 군부는 부품조차 구하지 못해 쩔쩔매다가 미국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이번에 대규모 파병을 자청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식 무기를 자랑하는 미군과 달리 파키스탄 병사들은 무장 헬리콥터도 탱크도 없다. 외신에 따르면 파키스탄 외무부의 아크람 대변인은 돈이 없어 중장비를 보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연히 파키스탄 병사들은 선진국에서 온 병사들에 비해 행색부터 초라하기 짝이 없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데다 공용어인 영어도 거의 할 줄 모른다.

상록수부대는 위성통신 장비까지 갖춰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병사들의 사기가 오를리 없다. 6월13일 파키스탄 병사들이 수도 모가디슈에서 비무장 시위대에 발포하여 국제적 비난을 산 일도, 자신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무리한 파병을 강행한 파키스탄은 나은 편에 속한다.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아예 유엔군에 파견하는 것을 외화벌이 수단으로 삼는 나라도 있다. 모잠비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평화 유지군의 경우 22개 파견국 가운데 일본 이탈리아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개발도상국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달러이다. <아사히 신문>이 유엔 자료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파병된 장교들은 군사 감시요원의 경우 유엔으로부터 1백45달러를,  평화유지군 사령부 요원은 85달러를 각각 일당으로 지급받는다. 병력을 보낸 개발도상국 정부들은 이 돈을 유엔으로부터 일괄 수령한 뒤 나중에 본인들에게 얼마씩 떼어 준다고 한다.

 또 각 부대 단위에는 식비와 숙박비에 해당하는 비용이 유엔에서 지불된다. 이것저것 합하면 가난한 나라들로서는 꽤 쏠쏠한 돈벌이이다. 자기네 군사예산도 절약하고 외화까지 벌어들이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그래서 개도국들은 가능하면 많은 병력을 파견하려고 애쓴다. 유엔만 믿고 아무 대책 없이 수천 병역을 파견한 아프리카 몇몇 나라의 병사들은, 막사가 없어 맨땅에서 잠 자고 먹을 것이 없어 굶기가 일쑤라고 한다. 소말리아에도 파키스탄 외에 모로코 나이지리아 보트와나 짐바브웨 튀니지아 등 국내 사정도 어려운 나라가 남의 나라 평화를 지켜주기 위해 병력을 보냈다.

 선진국의 경우 지원병 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어차피 높은 급여를 지급해야 할 뿐 아니라 활동 비용을 대개 유엔이 청구하지 않고 자국이 부담하기 때문에 특별이 문제될 것이 없다. 6월29일 소말리아로 떠나는 2백52명의 한국군 상록수 부대는 냉장고는 물론 샤워용 트레일러에 한국과 직접 교신이 가능한 위성통신 장비까지 싣고 간다고 하니 개도국들에 비하면 '호화판 근무'를 하는 셈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사병의 경우 월 1천달러, 장교는 1천5백달러 정도를 한국 정부에서 받는다. 우리 정부에서 먼저 예산을 집행한 뒤 나중에 이를 유엔에 청구하기로 협의가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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