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위로 뽑은 후 ‘엄선’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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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재판 배심원 어떻게 선정하나/경찰 가족·친지 등은 제외

 
죄가 중한 형사 사건 재판에 배심원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현실화하고 있다. 현재 관련 법안이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데 올 상반기 안에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5년간 시범 실시한 뒤 2012년에 전면 실시하는 방안이다. 배심원은 어떻게 뽑고 어떤 권리와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일까.

4월12일 모의재판에 참석한 일반 배심원들이 뽑힌 과정을 역으로 따라가면 실타래가 풀린다. 이날 오전 9시30분 모의재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대법정에 온 ‘배심원 후보자’는 22명이었다. 이들은 법원이 전산 시스템을 이용해 무작위로 추출한 서울지법 관내 주민 7백명 가운데 성별과 연령을 안배해 확정한 후보자다. 애초 30명이었는데 일부가 불참했다. 지방법원장은 행정자치부로부터 최신 주민등록 전산 자료를 제공받아 후보자를 추출한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 기획추진단 홍기태 부장판사는 “여론조사를 한 결과 배심원 후보가 되면 참여하겠다는 국민들이 80%에 가깝다. 20% 정도에 불과한 일본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만 20세 이상이 되어야 배심원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배심원 수는 다섯 명에서 아홉 명까지 다양하다.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사건이면 아홉 명, 기타 사건은 일곱 명이다. 피고인이 공소 사실을 대부분 인정하는 경우는 다섯 명도 가능하다. 피고인이 원하지 않는 경우나 조직폭력 사건 등 배심원이나 그 가족이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사건은 재판부 판단에 따라 배심원 없이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

사건 유형에 따라 5명에서 9명까지

우리 법원이 도입하려는 배심원제는 혼합형이다. 미국처럼 배심원들의 평결이 그대로 재판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권고’에 그친다. 배심원들이 판사와 함께 실제로 재판에 참여하는 유럽식 ‘참심제’와도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재판부가 ‘권고’ 수준인 배심원들의 평결과 다른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라고 걱정했다. 홍판사는 “그럴 경우, 판사도 엄청난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만장일치로 배심원들이 평결했다면 더욱 그렇다. 판결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배심원 평결과 크게 다른 판결이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라고 말했다.

판결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보니 배심원 후보자들 중에서 배심원을 뽑는 과정도 치밀했다. 4월12일 열린 모의재판에서 재판장은 ‘형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경험이 있나’ ‘가족이나 친지 중에 경찰관으로 근무하거나 근무한 적이 있는 사람이 있나’ ‘공무원·법무사·군인이 있나’  따위를 후보자들에게 물었다. 배심원 직무를 수행하는 데 부적절한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서다.

이 과정을 거친 뒤에는 검사와 변호사의 신경전이 벌어진다. 법원 사무관이 후보자들의 번호표가 들어 있는 함에서 먼저 아홉 명을 뽑아 이들을 따로 배심원석에 앉힌 뒤 검사와 변호사가 이들을 상대로 “5번 배심원 후보에게 묻겠습니다”라는 식으로 질의·응답을 한다. 그런 다음에 검사·변호사가 재판장과 함께 이들 가운데 누구를 배심원으로 정할 것인가를 의논한다.

서로 자기 쪽에 유리한 사람을 배심원으로 정하려다 보니 한쪽에서 반대하면 배심원이 될 수 없다. 4월12일 모의재판에서는 아홉 명을 뽑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추첨을 여섯 차례나 했다. 전처와 그 남자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O. J. 심슨 사건 때 미국 법원은 배심원을 뽑는 데 며칠을 보냈다.

사개추위 안에 따르면, 배심원들에게 청탁하는 것은 물론 전화해 불안감을 주는 것까지 형사처벌 대상이다. 배심원이 돈을 받거나 직무상 취득한 비밀을 누설해도 마찬가지다. 배심원 후보자로 뽑힌 사람이 출석하지 않거나 허위로 답변하면 2백만원 이하 과태료를 문다.

홍기태 부장판사는 “두세 다리 건너면 다 안다는 우리 나라에서 배심원들이 학연이나 지연 같은 연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느냐가 배심원제의 안착 여부를 가르는 일차 관건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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