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가, 새 실험으로 격변 중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6.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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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씽크빅, 임프린트제 전면 실시…위즈덤하우스는 ‘분사제’ 도입
 
지난 3월, 30·40대 젊은 출판사 사장들의 모임인 ‘책만사(책을 만드는 사람들)’ 모임에서는 ‘최봉수-김학원’ 논쟁이 붙었다. 웅진씽크빅 출판 부문 최봉수 대표가 발제를 하고, 휴머니스트 김학원 대표가 반론을 펴는 형식이었다. 토론 주제는 ‘5년 내에 매출액이 1천억원대에 이르는 단행본 출판사가 나타나고, 이런 출판사 대형화가 한국 출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였다. 최대표가 대형화 추세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면, 김학원 대표는 ‘전문 편집자 제도 강화’를 강조했다(딸린 기사 참조).

언뜻 출판 자본의 규모에 대한 논쟁으로 보이지만, 두 사람의 고민은 수렴되는 부분이 있다. 출판계 인력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다. 두 사람을 발제자, 토론자로 섭외한 것은 81학번으로 오랜 친구 사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두 사람이 선도하는 기획·인력 시스템에 관해 많은 출판인들이 고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봉수 대표가 주목받은 것은 그가 근래 출판계의 화두가 된 ‘임프린트(Imprint)제’ 전도사이기 때문이다. 임프린트는 유능한 전문 편집자를 영입해 별도의 독자 브랜드를 주고, 경영 책임을 맡기는 제도이다. 모회사 격인 본사는 ‘소사장’ 격인 각 임프린트 대표에게 인건비, 사무실 운영비 같은 경상 경비를 지급한다. 책이 나온 후 그 책에 대한 수익을 배분해 갖는다(웅진의 경우 본사가 70%, 임프린트 회사가 30%). 임프린트제가 처음 선보인 것은 2004년 미국 랜덤하우스와 중앙M&B가 합작해 설립한 랜덤하우스중앙이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부터다. 최대표는 당시 랜덤하우스 사업운영실장으로 있으면서 이 제도 도입을 주도했고, 합작 전에 미국에서 임프린트제에 관한 연수를 받았다. 그런 그가 지난해 말 웅진씽크빅으로 이동하면서 ‘임프린트’ 하면 웅진씽크빅을 떠올리게 되었다.

“매출액 1천억원대 시대 대비하라”

임프린트 시스템은 미국식 제도이다. 대형 출판사들이 서로 합병하여 자본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얻으면서 각각 출판사들은 독립해 자기 색깔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랜덤하우스에는 크라운과 크노프가 있는데, 크라운은 철저하게 대중 출판물을, 크노프는 고급 문화를 지향한다. 각각은 한 모회사를 두고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문화도 다르다.

한국에서 선보인 임프린트 제도는 이런 미국식 임프린트가 변형된 것이다. 현실적으로 인수·합병이 쉽지 않아 기획·편집자를 영입해 그에게 독자 브랜드를 가진 임프린트 회사를 맡기고 독립 경영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에 출판계가 관심을 기울인 것은 기존 인력 구조와는 상이한, 일종의 탈출구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 출판계에 진입한 386세대가 ‘독립’을 고민할 즈음이라 관심이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최대표는 “한국에서는 40대 이상 편집자가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독립해 소규모 출판사를 차리는 것이 반복되었다. 이런 경영의 영세함 때문에 신규 인력이 진입하기도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현재 웅진씽크빅은 임프린트 회사 9개를 거느리고 있다(앞으로 더 늘릴 계획이다). 각 임프린트 사에서는 경제·경영서, 실용서, 아동물, 컴퓨터·어학 책 등을 각각 전문 출판한다. 출판계에서 알아주는 기획·편집자들이 모여들었다. 기획실장을 맡아 1년 동안 임프린트 제도를 안착시키는 역할을 맡은 김민기 실장이 대표적이다. 어학 출판 기획자로 유명한 김민기 실장은 1년간 기획실장을 하고, 이후에는 어학·컴퓨터 전문 임프린트사인 ‘뉴런’을 맡을 계획이다.

“임프린트제가 출판 다양성 해친다는 건 오해”

최봉수 대표는 임프린트가 출판 자본의 대형화와 다양성을 고려한 제도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출판사의 대형화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추세이다. 이미 지난해 단행본 대표주자인 민음사는 매출액이 4백억원을 넘어섰다. 홈쇼핑 등 유통 채널이 다양화하면서 상위권 출판사들의 매출 신장세가 가팔라 5년 안에 1천억원대 출판사가 출현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고급 인력을 모아 계열화한 기획 시스템을 구축하고, 예측 가능한 경영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최대표는 “미국 랜덤하우스는 판매량을 기준으로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 그 자료를 기반으로 5년간 데이터를 대입했더니, 통계가 비슷하게 나왔다. 다섯 단계 비율을 관리하면 출판 경영도 예측이 가능해진다”라고 말했다. 책 종수를 이 비율에 대입해 관리하고, 이 매출 예상액에 따라 각 임프린트의 인력과 예산을 책정한다.

출판계 일각에서는 임프린트가 자본의 확장 전략이므로 출판의 다양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대표는 오해라고 잘라 말한다. “임프린트 대표들에게 요구한 것이 차별화다. 장르를 차별화하고, 각 장르 안에서 하위 장르를 차별화하고, 회사 문화를 차별화하라는 것이다. 임프린트제가 출판의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것은 오해다.”
출판계에서 독특한 실험을 하는 또 다른 회사로는 위즈덤하우스가 있다. 이 회사는 ‘분사제’를 도입했다. 1999년 창업한 이 회사는 예담, 위즈덤하우스, 열번째행성, 스콜라 등의 브랜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조직은 4개 기획편집 분사와 홍보마케팅 분사, 본사 등 6개 분사 체제로 나뉜다. 독립성을 가진 각 기획편집 분사에서 기획한 책은 위즈덤하우스에서 갖고 있는 적절한 브랜드를 선택해 출판된다는 점에서 브랜드로 나뉜 임프린트와 다르다. 각 분사장은 경영권과 인사권을 가진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합의제 집단지도체제’이다. 각 분사장이 모두 참여하는 경영회의에서 의사결정을 한다. 경영회의에서 논의된 사항이 팀장회의로 넘어가고, 이는 팀장급과 평사원들로 각각 구성된 두 학습 토론회에서 토론된다. 이런 합의제 회의 시스템을 거치기 때문에 회사의 비전이나 전략이 대표이사나 임원단의 독단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김태영 대표의 말처럼 “대표가 낸 기획안도 합의제 회의에서 번번이 부결된다”. 또 회의를 통해  전 직원의 의견을 수렴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학습 토론회에서 출판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토론하다가 출간 도서를 점자책으로 만들어 기부하는 방안이 나왔고, 이는 곧 시행되었다.

매출액 인센티브 따라 억대 연봉자 출현

이 회사의 독특한 점은 ‘기획 인세제’를 도입한 것이다(딸린 기사 참조). 기획위원 15명이 상근·비상근으로 활동하는데, 기여에 따라 인세를 지급받는다. 예를 들어 기획위원이 기획 아이디어를 내면 0.5% 인세를 받고, 저자를 발굴해 계약이 이루어지면 0.5% 인세를 추가한다. 원고 컨셉트를 정리해 최종 원고가 나오면 인세 2%를 추가로 지급한다.

분배 방식과 복지 체계도 다른 출판사와 사뭇 다르다. 위즈덤하우스는 55세 정년제를 실시하고 있다. 대표이사를 포함한 임원은 50세까지만 경영회의에 참가할 수 있고 이후 실무자로 일하는 것이 보장된다. 50세 이후 임금은 동결된다(임금피크제). 새로운 감각을 가진 차세대가 새로운 회사의 비전을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창업자 김태영 대표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일정 매출액을 넘을 경우 지급하는 매출액 인센티브는 분사별로 매출액 일부를 안분하여 호봉에 따라 매월 지급하고, 이익 인센티브는 연말에 1회 지급한다. 지난해 1인당 매출액 인센티브는 월평균 50만원, 이익 인센티브는 5백60만~7백만 원씩 받았다. 이런 제도 덕분에 지난해 직원 가운데 ‘억대 연봉자’가 나왔다.

회사의 사규에는 인센티브 방식, 1개월 자기 계발 휴직제도, 평일 아침 간편식 제공, 연 1회 건강 검진 지원, 5년 근속 단위로 포상금과 해외여행권 제공, 학자금 및 만 6세 미만 자녀 양육비 지원 등이 규정된다. 이런 제도는 모두 경영회의를 비롯한 합의제 회의에서 결정되었다. 이런 조직 시스템 덕분인지 출판사 치고는 이직률이 극히 낮다. 1999년 창업 이래 매출액은 해마다 거의 100%씩 증가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1백27억원. 올해는 2백5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민식 홍보마케팅팀 이사는 “출판은 높은 수준의 창의적 인력을 어떻게 결합하느냐가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임프린트이든, 합의형 분사제도이든, 전문 편집장 제도이든 핵심은 어떻게 기획·편집·마케팅 인력을 조직화할 것인가에 있다. 이들이 각자 회사에서 도입한 제도는 출판이 사양산업이라는 인식을 벗어나고, 전근대적 경영을 탈피하고자 하는 몸부림이자 실험이다. 세 대표들은 한결같이 자신보다는 회사의 시스템과 회사 인력이 부각하기를 원했다. 또한 ‘출판은 사양산업’이라는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의 ‘실험’에 출판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이들에게서 ‘희망의 씨앗’을 엿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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