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 여야 이심전심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1.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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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ㆍ평민, 중선거구 통해 한계 극복 꾀할 듯

국회의원 선거법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수서 파동의 여파가 계속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불쑥 제기된 선거법 개정은, 민자당 고위층 관련 의혹에 대한 수사를 요구하는 야권의 공세와 지자제선거 분리실시 논란 대문에 그동안 현안으로 떠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수서 파동이 진정국면에 접어들면 선거법 개정은 여야간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여야간의 역대 선거법 개정 협상이 항상 총선 1년여를 앞둔 시점에서 본격 추진됐다는 사실로 본다면 더욱 그 가능성이 높다.

盧泰愚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수서 사건관련 특별담화에서 “돈을 쓰는 정치풍토를 과감히 개혁하는 제도적 개선안을 단기간 안에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6공화국 들어와 처음으로 대통령이 직접 국회의원 선거법의 개정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민자당 金潤煥 총장은 담화가 나온 이튿날 당내에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제도개선 특위’를 구성하는 기민성을 보이며 “돈 안쓰는 선거를 위해 1구 2~5인의 중ㆍ대선거구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며 “여야 당3역 회담에서 이를 논의해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은 물론 여당내에서도 갑작스럽게 선거법 개정을 들고 나온 김총장 등의 숨겨진 의도를 대략 3가지 방향으로 분석하고 있다. 첫째는 검찰 수사발표 이후에도 계속 확산되고 있는 수서 사건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한 ‘여론의 물머리 돌리기’라는 분석이다.
두 번째는 14대 총선에서 ‘참패’할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시사저널≫ 71호 여론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듯 민자당의 지지도가 10% 미만인 최악의 상태에서 선거를 치렀다가는 과반수 의석도 차지하지 못하는 ‘불행한’ 사태를 겪을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가 그것이다. 따라서‘2등만 해도 당선 될 수 있는’ 동반당선의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론을 택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지난 13대 총선에서 민정당 후보가 낙선한 1백37개의 선거구 중 1백15개의 선거구에서 민정당 후보가 2위를 했다는 사실은 중선거구제 추진 속셈이 어디에 있는지를 드러내준다.

민자, 5공 소외세력 ‘홉수’도 고려
지자제선거 협상 결렬로 옥외집회라는 강경노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중선거구제가 지역당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선거제도라는 점에서 평민당도 무조건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평민당에게는 중선거구제가 비호남권 입성의 길을 그만큼 넓혀주는 ‘샛길’일 수도 있을 법하다. 민자당도 지자제 후보공천 표기의사까지 표명한 호남지역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의 반발을 무마하면서 호남 입성에 성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절묘한’ 방책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또 다음 총선에서 낙선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당내의 많은 의원들, 특히 민주계 의원들의 동요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세 번째, 중선거구제가 내각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3당 합당을 할 즈음 구 민정당의 많은 인사들은 내각제 개헌과 관련, 선거구제 조정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기했다. 특히 朴?圭 국회의장은 구 민정당 대표위원 시절부터 내각제 개헌의 정지작업으로서 선거구제의 개정을 여러 차례 시사한 바 있다. 내각제를 실시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한 선거구에서 2~5명이 의원을 뽑는 혼합선거구제를 실시, 한 선거구에서 자민당 의원이 2~3명씩 당선되는 경우가 흔하다.

민자당의 선거법 개정 움직임이 위 3가지 사항 중 어느 하나만을 염두에 두었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3가지 측면에다가 고단위 처방 한가지가 더 추가된 듯하다. 여권 핵심부는 총의석 2백99석 중 지역구 2백24석을 아예 30개 정도 늘리는 방법을 통해 소위 5공 소외세력까지 끌어들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민자당이 선거법을 손질하겠다고 나선 배경과 ‘돈 안쓰는 정치풍토’는 근본적으로 거리가 멀리 않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선거구역 넓어지면 돈 더 들게 마련”
중선거구제로의 개정을 주장하는 의원들은 현행 소선거구제가 선거과열로 △지역감정을 심화하고 △타락선거를 가져오며 △30% 미만의 득표를 했다 해도 최다득표만 하면 당선이기 때문에 나머지 70% 이상의 유권자 의사가 ‘죽은 표’가 된다는 점 등을 강조한다. 실제로 13대 선거 당시 영등포을구의 경우 민정 민주 평민 3당의 각 후보가 당선득표선인 3만1천백에서 3만1천8백까지 고르게 득표, 결국 당선자인 金明燮 전의원(민정) 후보표를 제외한 3분의 2는 ‘죽은 표’가 됐다.

그러나 민자당내에서도 중선거구제로 개정한다고 해서 정치풍토가 쇄신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金種泌 최고위원은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선거구역이 넓어지면 몇 명을 뽑든 비용이 더들게 마련”이라면서 “돈 안쓰는 정치는 선거제도보다는 후보자들의 자세에 다려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중선거구제에서 여당은 복수공천을 할 수  없다는 제약도 있다. 예를 들어 서울의 노원 갑ㆍ을이나 은평 갑ㆍ을처럼 인접한 2개 선거구가 모두 민자당 현역위원인 경우 중선거구제로 개정하면 복수공천을 하거나, 어느 한 명은 다른 지역구로 옮겨가게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당에서는 복수공천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민자당 일각에서는 선거풍토 쇄신을 위해서는 선거구 조정보다는 선거제도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민자당 중앙위의장인 黃珞周 의원(민주계)은 “정당 명부식 선출 방법만이 선거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 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한 선거구에서 최다수 득표한 한 사람만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와 전국구라는 이름으로 도입된 비례대표제가 혼용되고 있는 현행 선거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는 현재 독일 네덜란드 등 서유럽의 대부분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방식이다. 투표용지에는 후보자 이름 대신 정당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으며 유권자는 지지하는 당에 투표를 한다. 각 정당은 유효득표수 비율에 따라 의석을 나눠 갖는다. 물론 각당에서 내세운 후보자들의 순위는 매겨진다. 즉 우리나라의 전국구 의원을 선출하는 방식과 유사한 듯하지만 모든 의원이 이렇게 뽑혀 내용상으로는 전혀 다른 셈이다. 이런 방법으로 투표를 하면 후보 개개인이 나서서 선거 운동을 할 필요가 없으므로 돈 쓸 일이 그만큼 없게 된다.

이와 관련해 독일식의 투표방법이 하나의 대안이 될 듯하다. 독일의 선거제는 우리나라처럼 지역대표제와 비례대표제의 혼합 형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비례대표제의 혼합 형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비례대표제가 각 정당이 얻은 지역구 의석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과 달리, 독일은 각 당의 전체 득표수에 의해 할당된다. 즉 독일의 투표용지는 지역대표를 선택하는 부분과 지지하는 정당을 선택하는 부분이 동시에 들어 있다. 왼쪽은 지지하는 후보를 찍고 오른쪽은 지지 정당을 찍도록 돼 있다. 예를 들어 지역대표는 사민당의 인물을 선택했더라도 지지 정당은 기민당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셈이어서 의석수반을 가지고 그 당이 지지도를 재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독일의 경우 각 당의 지지도와 각 당의 의석수는 거의 비슷해 유권자의 뜻이 의석에 제대로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처럼 당 지지도는 낮은데도 의석을 많이 차지하는 불합리한 요소를 배제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현행 전국구 의석의 배분방식은 지역구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정당이 없을 경우 제1당에게 무조건 전국구 의석 75석 중 38석(50.66%)을 배분하고, 나머지 37석을 가지고 5석 이상의 지역구를 확보한 정당들끼리 지역구 의석수 비례로 배분하게 돼있다. 이런 제도는 결과적으로 13대 총선 당시 민정당이 33.96%의 득표율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의석수(2백99)의 41.81%(1백25)를 차지하는 ‘기현상’을 가져왔다.

또 지역구 의석은 많은 차지했지만 총득표수가 민주당보다 적었던 평민당이 전국구 의석을 더 많이 차지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12대 총선 때는 이 현상이 더심해서 민정당은 35.25%의 득표로 총의석의 53.6%를 얻었다.

‘직능대표’ 취지 못살리는 전국구
현행 전국구 제도가 직능대표제의 근본취지를 전혀 못살리고 있는 것도 개선돼야 할 점이다. “합당한 이후 민자당 전국구 의원 중 경제 전문가를 찾아보니 徐모 의원 한명밖에 없더라”는 민자당 한 중진의원의 말은 의미 있다. 그 뜻은 야당의 경우 전국구 후보공천이 ‘당비 모금 창구’로 이용된 인상이 짙고, 여당은 특정 실력자들의 파벌주의에 빠진 13대 전국구 공천 경험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을 듯하다.

평민당 趙世? 정책위 의장은 “전국구의원들도 선거과정에서 나름대로 노력해 당선됐다는 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과잉충성의 폐단을 막으면서 철저한 직능대표성을 갖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전국구 제도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金光 교수는 “독일처럼 투표용지에 후보의 이름과 간단한 약력을 적어 넣는 방식의 투표를 하면 된다”고 개선책을 내놓고 있다.

14대 총선을 1년여 남겨놓은 요즘 또다시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론이 대두된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이번만은 당리당락 차원이 아니라‘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구성할 수 있는 선거법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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