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다 보니 알몸이었다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1.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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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ㆍ민주 당보 紙上戰 서로 치부만 드러내고 끝나

평민ㆍ민주 두 야당의 ‘7일간의 黨報싸움’은 결국 ‘누워서 침뱉기’로 끝났다. 이 싸움은 끝날 즈음에는 두 당의 당사자들도 왜 싸웠는지 모를 만큼 애당초부터 명분 없이 시작됐다. 걸핏하면 ‘제살을 뜯는’ 야권의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

‘7일간의 紙上戰’은 민주당이 2월21일자 당보 민주신문 호외에 ‘평민 총재 수서관련 확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면서 시작되었다. 이 호의 기사는 수서사건을 담당한 한 검찰수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 “한보그룹 鄭泰守 회장이 평민당 權魯甲 의원에게 당비 명목으로 전달한 2억원 가운데 1억원이 직접 金大中 총재에게 전달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는 또 “청와대와 평민당이 특혜를 눈감아준 대가로 얼마를 받았는가”라고 꼬집으면서 “평민당 金大中 총재가 엄청난 액수의 뇌물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꼬리를 달았다.

김대중 총재를 걸고 넘어진 이기사는 평민당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렇잖아도 김총재의 정치자금 수수설 때문에 잔뜩 위축되어 있던 터라 평민당은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처지였다.

평민당도 역시 당보 호외 형식을 띤 2월25일자 평민신문을 통해 민주당에 반격을 가했으나, 엉뚱하게 민주당 李基澤 총재의 개인 경력과 민주당의 창당 배경 등을 물고늘어지면서 민주당이 ‘야당으로서는 함량미달’이라는 논조로 몰아쳤다.

“적과 동지 구별 못하는 무모한 짓”
7개 항목으로 나눠 민주당을 비판한 이 신문에는 이총재를 “파출소 한번 안 가본 기회주의자”이며 “사이비 야당인”이라고 몰아붙였고, 민주당을 “망국적 지역감정에 편승한 소영웅집단”이라고 헐뜯었다. 두 당간의 ‘지상전’이 이쯤에 이르자 두당 내부에서 자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적과 동지를 구별 못하는 무모한 싸움은 없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엉뚱하게 인신공격을 당한 민주당은 못참겠다는 듯이 2월27일 성명을 발표, “평민당이 정직한 야당으로 복귀할 것을 촉구한다”고 받아쳤다.

張石和 대변인의 이름으로 발표된 이 성명서에는 ‘1억원 수수’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어 보복성이 강했다. 이날 오전 평민당 朴相千 대변인은 민주당 장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어 “평민당은 대응 성명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통보하면서 ‘휴전’을 제의했고,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격했던 싸움은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그쳤다.

평민당으로서는 어려운 시점에 ‘위로는 못해줄망정 악의에 찬 모함을 해대는 민주당이 한 대 통합까지 하려 했던 동지 야당인가’라며 못마땅했을 법하다. 민주당은 평민당이 현정권과 타협해 체제내에서 안주한다고 늘 비판해왔다.

결국 이번 두 당의 싸움은 서로의 약점만 노출했을 뿐이다. 또 이번 싸움을 통해 두 야당은 수서사건의 의혹을 풀 능력도 자격도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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