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가 녹는 아픔을 아시나요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6.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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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다발성골수종 환자 2천~2천5백명…아직 완치 어려워

 
박태성씨(50·경기도 시흥시)는 2003년 봄 직원들과 축구하다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영양 부족인가 싶어 보약을 지어 먹으려다 주변에서 ‘혈색이 창백하니 정밀 검사를 받아 보라’는 권유를 받고 병원을 찾았다. 1주일 뒤에 혈액 검사 결과를 통보해주기로 했던 병원측에서 3일 만에 급히 연락을 해왔다. 빨리 입원해서 정밀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전갈이었다. 병명은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다발성골수종.

임종한씨(45·경북 울산시)는 지난해 가슴이 따끔거려 담인 줄 알고 병원을 찾았다. 지방 의원에서는 담 치료를 해주었으나 차도가 없었다. 통증을 참다 못해 종합병원을 찾아 정밀 검사를 받은 뒤에야 그는 다발성골수종에 걸렸음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의 경우처럼 다발성골수종은 어느 날 갑자기 다양한 증세로 찾아온다. 빈혈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알게 되거나 허리가 아파 디스크나 척추 질환인 줄 여겼다가 다발성골수종이라는 진단을 받기도 한다. 관절염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인은 물론 의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정확한 진단을 받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리기 다반사다. 가톨릭의과대학 강남성모병원 박종원 교수(혈액 내과)는 “빈혈 증세와 함께 허리 통증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다발성골수종 검사를 받아야 한다”라고 귀띔했다.  

연간 발생률 30배 이상 증가

다발성골수종은 백혈병이나 임파선암(림프종) 같은 혈액암의 일종이다. 몸의 항체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형질세포가 암세포로 변해 계속 번식하는 병이다. 일단 발병하면 거의 모든 뼈로 전이되어 ‘다발성’이란 말이 붙었다. 뼈로 옮겨간 암세포는 정상이던 뼈를 녹게 만든다. 녹은 뼈에 구멍이 숭숭 뚫리면서 척추 뼈가 골절되어 심한 통증을 유발하거나 하반신이 마비되기도 한다. 뼈가 녹다 보니 척추가 내려앉는 경우도 빈번하다. 임종한씨의 경우에도 척추가 내려앉아 인공 척추를 끼웠다. 인공 척추를 끼우기 전까지는 통증 때문에 허리를 못 펴 누운 채로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다. 이 질환을 앓는 사람은 대부분 척추가 내려앉아 키가 줄어든다. 박태성씨는 3cm가량 줄었고, 임씨는 키가 7~8cm가량 작아졌다. 

 
다발성골수종에 걸리면 빈혈이 나타나고 면역 기능 이상으로 쉽게 병에 감염되기도 한다. 혈소판이 부족해 피부에 멍이 생기거나 심각한 경우 출혈이 나타나기도 한다. 폐렴에 걸릴 확률도 일반인에 비해 15배가량 높아 환자의 상당수는 폐렴으로 사망한다. 다발성골수종은 증상이 나타난 뒤에도 치료하지 않으면 평균 6개월 이내에 사망하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치료를 받는다 해도 아직은 완치가 어렵다. 그러나 최근 새로운 치료약과 치료법이 개발되면서 장기 생존자가 크게 늘었다. 한국다발성골수종연구회 이재훈 교수(가천의과대학 길병원 혈액종양내과)는 “최근 10년 사이에 치료법이 눈부시게 발전해 평균 생존 기간이 과거 2년6개월~3년이었는데 6년 이상으로 증가했다. 조혈모세포이식과 새로운 표적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다발성골수종은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흑인과 백인에게서만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다발성골수종이 혈액 종양의 10%를 차지한다. 한국에서는 1981년 환자가 16명에 불과할 정도로 발병이 드물었다. 그러나 25년 만에 연간 발생률이 무려 30배 이상 증가해 2006년 현재 한국 내 다발성골수종 환자는 약 2천~2천5백 명에 이른다. 지난 20년간 전체 암 환자가 2.5배가량 증가한 것에 비하면 가히 폭발적이다. 

한국에서 갑자기 급증한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에 대해서는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의학계에서 생활 습관이 서구화되고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이 심해진 탓이 아닌가 의심할 뿐이다. 세계 의학계에서도 벤젠이나 톨루엔, 제초제 같은 유해 화학물질을 다발성골수종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산업화가 불러들인 신종 질병”

최근 한국을 방문한 미국 다발성골수종 치료 의학자 브라이언 두리에 박사는 “다발성골수종은 산업화가 불러들인 질병이다. 환경오염과 유해 화학물질이 신체 면역력을 약화시키며 발병을 부추기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화학 공장 근로자에 비해 컴퓨터나 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 근로자는 이 질환에 덜 걸리리라고 믿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두리에 박사는 강조했다. 첨단 산업 부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유해 화학물질을 대량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IBM 노동자 가운데 11명이 이 질환에 걸려 회사를 상대로 2003년부터 소송을 벌이고 있다. 두리에 박사는 “IBM 노동자의 소송이 어떻게 결론날지는 모르지만, 산업재해로 의심해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박태성씨의 경우에도 유해 화학물질에 의한 발병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박씨는 화학 포장지를 생산하는 회사에서 25년 이상 근무했다. 박태성씨는 “포장지 생산 과정에서 유해 화학물질을 늘 다룰 수밖에 없다. 종일 냄새를 맡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손으로 만져야 할 경우도 많다. 하지만 나 혼자 원인을 밝혀내기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박종원 교수 말대로 정부가 역학 조사를 통해 유해 화학물질과 발병 원인과의 상관성을 정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엄습한 다발성골수증 공포는 환경을 보호하고 유해 화학물질을 멀리 해야 할 이유를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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