孫柱煥 전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 “대통령 뜻 따른 것일 뿐"
  • 정치부 차장 ()
  • 승인 1992.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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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정부수석 비서관이 공개적으로 입을 연 적은 없었다. 물러난 후에도 입을 뗀 사람이 없었다.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과 관련해 李鍾贊 의원 진영에서“대통령의 뜻을 왜곡 전파한 사람??으로 지목해 구설수에 오르자 사표를 제출한 孫柱煥 전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 그가 의외로 자리에서 물러난 직후《시사저널》인터뷰석에 나와 입을 열었다. 그는 3당 합당이후 하루도 바람잘 날 없이 정치권이 소용돌이쳤던 지난 1년5개월 동안??권부의 안방??을 지켰다. 그는 두 번의 지자제선거와 한번의 총선 등 선거를 세번 치른 유일한 정무수석이었다. 손주환 전 정무수석은 청와대 생활 1년5개월이 15년처럼 느껴지는 긴장의 세월이었다고 토로했다. 정무수석 재임 때 金泳三 대표쪽으로 기운듯한 인상을 준 것과 관련해서는??정무수석은 자기의 뜻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盧泰愚 대통령의 김대표 지지 입장을 사실상 시인했다. 그는 노대통령과의??기연??으로 26년 동안의 언론계 생활을 마감하고 13대 국회에 전국구로 진출,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경향신문〉과〈중앙일보〉에서 월남 특파원ㆍ외신부장ㆍ사회부장ㆍ편집국장 대리를 거쳤고, 한국기자협회 회장과 관훈클럽 총무를 역임했다. 사표가 수리된 이틀 후인 지난 8일 아침 그는 마포 소재??강변 한신코아??1316호 개인 사무실에서 2시간 동안 질문에 답했다. 극도의 신중한 태도로, 그러나 비교적 솔직하게 그는 심정을 털어놨다.

 지금 심경은 어떻습니까?
경선이라는 당내 행사에서 청와대를 정치 공세의 표적으로 삼는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모시던 국가원수에 대해 죄지은 기분입니다.

 왜 죄지은 기분입니까?
수석비서관에게 제일 중요한 일은 대통령의 명예를 보존하는 것입니다. 이유야 어떻든 중요한 정치참모로서 정치논쟁의 대상이 된 것 자체가 대통령께 누를 끼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적어도 그 점에 대해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갑자기 경질된 경위를 설명해 주시지요.
지난 2일 비서실장에게 사표를 제출하고 구두로 대통령께 설명 드렸습니다. 대통령께서 5일 동안 장고 하신 후 결심하셨습니다.

 이종찬 의원이 대통령의 뜻을 왜곡 전파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지목했는데 그것을 인정하십니까?
(한참 생각한 후) 그동안의 경선과 관련해 대통령께서는 엄정하고 공정한 관리자의 입장임을 말씀해오셨고, 저는 그 뜻을 받드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도 사표를 낸 이유는, 첫째 경선을 진행하는 데 정무수석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문제제기 자체가 대통령께 누를 끼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이종찬 의원 진영에서 경선의 모양을 망가뜨리고 경선의 정치사적 의미를 훼손시키려는 징후들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쪽에서 구실로 삼는 정무수석 자리를 내놓는 것이 경선의 뜻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에 따라 대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경선과정을 보면서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정치권 사람들, 또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의식이 대통령의 진취적이고 전향적이며 역사를 발전시키겠다는 의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집권당의 대통령후보를 경선을 통해 선출하려는 이유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보려는 뜻에서입니다. 제일 간편한 방법은 지명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그 의미가 얼핏 감이 잘 안 잡힐지 모릅니다. 20~30년 혹은 50년이 지난 후에 노대통령의 통치 5년을 평가한다면, 우리의 총체적인 국력을 향상시키는 역사적 대전환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 평가의 하나가 집권당 대통령후보를 경선으로 뽑은 것이 되리라 봅니다. 집권자가 힘을 과시하는 한가지 방법은 후계자를 지명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정치적 관행이었기 때문에 시비를 걸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유혹을 뿌리치고 자유경선 방식으로 후계자를 뽑게 하는 것은 대통령의 어려운 결단이요, 위대한 정치실험입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지엽적인 부분인 진행과정에 집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경선이라는 대정치실험은 바로 오늘 우리 정치의 현주소 아래에서 성공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정치 여건과 수준을 능가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 때문에 원론적인 의미의 경선을 기대하는 국민이나, 그것을 요구하는 언론의 바람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보니까 잘되는 것 같아 흐뭇합니다. 제가 물러선 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얼핏 보기에 노대통령이 김대표를 편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명확하게 밝힙니다. 영국도 마찬가집니다. 그것이 경선의 본질을 해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경우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이제 경선을 처음 시작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굳혔다 하더라도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우리 정치 여건상 어렵습니다. 그러나 공정한 게임의 관리자라는 역할과 후계자가 누구여야겠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엄격하게 구분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 점에서 국민 · 언론 · 당원이 현실과 동떨어진 교과서적 경선진행을 요구하고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대통령께서 지금까지 취해오신 입장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손수석의 입장이 김대표쪽으로 기운듯한 느낌을 주었다면 그것은 대통령의 뜻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해석해도 됩니까?
저는 정무수석으로서 한번도 대통령의 뜻을 어겨본 적이 없고 대통령의 뜻을 받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정무수석은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추진하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뜻이 있을 수 없고 자기의 뜻대로 해서도 안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공정한 경선 관리자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 한점도 부끄러움이 없었고 불공정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박태준 최고위원의 사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박최고위원의 사퇴에 대해 언론이 외압이라는 식으로 추측보도를 했는데, 저는 그 분이 많은 인생 경험과 정치적 경륜으로 미뤄볼 때 압력으로 자기의 정치적 행로를 바꿀 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분이 정치적 진로에 관해서 정부나 정치권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다소 이견을 보이는 일은 있을 수 있지 않았겠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분의 최종결심과 결정이 다른 사람의 영향이나 강제에 의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정무수석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합니까?
정치분야에 관해 대통령을 보필하고 심부름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지요. 대통령께서 여당 총재로서 일하실 때는 대야당 관계와 대국회 관계의 참모역할도 수행합니다.

 언론에서‘여권 핵심부??하면 손수석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정무수석직은 어느 정도 막강한 자리인가요?
정무수석 비서관은(자기)얼굴이 없는 사람입니다. 대통령의 뜻을 가장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대통령의 눈짓, 얼굴 표정 하나 하나에 그 분이 무엇을 생각하고 계신가를 알아서 그 뜻에 맞추면서 정국을 운영해야합니다. 그 때문에 당사자의 생각보다는 국정 최고 책임자의 생각을 잘 살펴 받드는 일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중압감이 심한가요?
대단합니다. 청와대 경내 조경이 아주 잘돼 있어요. 철 따라 꽃이나 나무가 새롭게 치장을 하는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1년5개월동안 자연의 변화를 보면서 한번도 아름다움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생물체를 보는 감동보다는 그저 무생물체를 보는, 무감각하게 보는 심정이었습니다. 1년5개월이 15년으로 느껴졌습니다. 사표가 수리된 후 만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영부인께 고별 인사를 하러 청와대에 들어갔는데 몇 달 지난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 주변의 조경이 비로소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또 사무실에는 대통령과 직통으로 통하는 인터폰이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그 벨 소리가 한번 울리면 몇 분씩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수석비서관은 그 분야의 일에 시행착오를 범해서는 안되고, 실험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24시간 긴장 속에서 지냅니다.

 그 중에도 가장 마음졸였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대통령께서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단체장선거 연기를 발표하셨는데, 국민에게 그것이 어떻게 보일 것이냐 하는 것이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대통령께서 결심하신 후에도 국민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가 굉장히 걱정스러웠지요.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와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권부의 안방'이란 곳은 대중과 격리될 위험성이 많지 않나요?
대중전달 매체가 발달돼 있고, 여러 채널을 통해 정보가 대통령에게 전달됩니다. 쉽게 말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대해 대통령이 귀가 어둡다는 것은 메커니즘상 불가능합니다. 한 사안에 대해 다각적 시각을 통한 종합적인 판단을 하게끔 기능적으로 돼 있습니다.

 체험해본‘권력의 맛'은 어떤 것입니까?
권력의 맛보다는 국민을 책임지는 사람의 고통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한가지 결정이 국민 또는 국가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또 역사에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를 늘 생각하면서 최종적인 정책결정을 위한 건의를 드리고 또 해야 하기 때문에 고통과 번뇌의 나날을 보냈다고 보면 정확할 것입니다.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때는 언제입니까?
두 차례 치른 지방의회선거는 개인적으로도 보람을 느낍니다. 30년 만의 지방자치제 실시는 6 · 29선언 중 마지막 약속의 이행입니다. 지자제선거는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도 있었습니다. 만약 선거가 잘못 치러졌다면 국정수행에도 어려움이 예상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지방의회선거를 통해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성공적으로 지방의회를 출범시킨 시기에 정무수석으로서 대통령을 모시고 기여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판단을 잘못했다든가 실수한 적은 없습니까?
정책을 건의할 때 한가지만 드리지 않습니다. 단체장선거 연기 문제를 예로 들지요. 연기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논리를 설명하고, 연기시기에 대해서는 A · B · C안 등 각 안에 대한 장단점을 충분히 검토해서 보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상되는 모든 부작용과 단점을 어떻게 명확하게 설명드리느냐 하는 것이 제가 한 일의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설명 드리는 데 항상 미흡했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우의 성향의 강성인물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인정하십니까?
당에 있을 때도 언론의 그런 평가가 있었지요. 저는 중도우익이지, 결코 극우가 아닙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진보적 중도우파란 말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청와대 참모들 사이의 갈등, 공적 다툼이 심하지 않습니까?
시각에 따라서 틀리겠습니다만 대통령의 온화한 성품과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으시고 장고하신 후 결정하는 통치 스타일 속에서 수석비서관들의 충돌 같은 것은 지도력에 묻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바깥에서는 어떻게 보는지 모르지만.

 가까이서 본 노태우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요?
최고 통치권자는 크게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재임중에 높게 평가받고 퇴임 후 평가절하되는 경우와, 재임중에는 비판의 소리가 높으나 퇴임 후 점점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노대통령께서는 퇴임한 이튿날부터 나날이 높게 평가받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 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 선도적 역할을 해오셨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 약한 대통령으로 평가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지도력의 형태라고 봅니다. 그 분의 정치철학과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여유있는 자세에서 나온 지도력이지요. 참모로서 정책을 건의할 때 편안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우유부단하고 음흉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많은 사람의 의견을 폭넓게 듣는 가장 민주적 통치방식에 덜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노대통령의 정치행태 중 두드러진 것이‘의도적인 애매모호성'인데요.
어떤 결정을 할 때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하는 스타일이 모호성으로 잘못 비쳐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바탕은 자신감입니다. 모호성은 많은 의견을 듣고 거기에서 최대공약수를 추출해내는 여유있는 지도력을 오해한 것이라고 봅니다.

 대통령과의 인연을 말씀해주시지요.
60년대 초반 국방부를 출입할 때 우연히 알게됐지요. 당시 소령이었습니다. 그후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가족 사이의 교류가 꾸준히 계속돼왔습니다. 10 · 26사건 이후 9사단장하실 때 서울에 나오셔서 시국에 대한 언론계의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어요. 저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을 조사대상에 넣어 국민의 의혹을 풀어줘야 한다고 건의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런 건의를 드린 최초의 민간인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저는〈중앙일보〉사회부장이었습니다. 그 분과는 무슨 기연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분은 12대 총선이 민정당 패배로 끝난 후 민정당 대표로 기용됐습니다. 그때 저는 관훈클럽 총무였는데 노대표를 관훈클럽 초청연사로 모셨습니다. 정치인으로서 국민 앞에 첫선을 보이는 행사였습니다. 일부러 만들려 해도 만들기 어려운 기연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보도를 보면 지난해 가을께부터‘반김영삼' 입장에서 선회, 김대표쪽으로 기운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저는 참 묘한 입장이었습니다. 김대표의 부인 손명순 여사는 제 사촌누나 아닙니까. 그런데 13대 대통령선거 때는 민주당 김영삼후보를 도운 것이 아니고 민정당 노태우 후보를 도왔습니다. 정무수석이 되고 난 후에 김대표측으로부터'남보다도 못한 사람이다' '못살게만 군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또 민정계쪽에서는??저 사람 청와대 내에서 김영삼 대리인 역할을 하는 위장 취업자다'라는 혹평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통령의 국정참모 ? 보필자로서 가장 공정하게 역할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양심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요. 이번 경선의 와중에 한 후보가 저를 지칭해서'트로이 목마'라며 혹평하는 것을 신문에서 보고 서글픈 감정을 가졌습니다. 혈연이란 것은 지울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천륜의 사연까지 들먹이면서 정치공세를 펴는 데 비애를 느꼈습니다. 한편으로 국민이 그런 평가를 하는 지도자를 어떤 시각으로 볼까 하는 데 대해 동지적 입장에서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그런 것도 비서실장이 저의 사퇴를 계속 만류했으나 그 만류를 수용하지 않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임기 말입니다. 청와대에서 나오기 전에 레임덕 현상을 느꼈습니까?
최고 통치권자의 힘이 임기종료가 가까워지면서 약화된다는 것은 일반론으로 말하면 자연현상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어요. 작년 지방의회선거에서 압승한 다음부터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 연속선상에서 우려할 만한 레임덕 현상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대통령감으로서 김영삼 대표를 평가해주시지요.
일부 국민이 김대표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양김??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상당한 세력을 형성한 채 엄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나 인정해야 하고 수용해야 할 정치현실인 것입니다. 두 김씨 중 어느 한 분이 지도적 ? 역사적 역할을 맡음으로써 이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종찬 의원을 평가해주시지요.
그 분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권에 인재가 많지 않은 가운데 우리가 키우고 가꾸어야 할 재목입니다. 다만 경선 과정에서 좀더 의연한 모습을 기대하는 국민이 많지 않겠느냐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의회주의를 부르짖으면서 비의회주의적으로 행동하고, 민주주의 ·새 시대 · 새 정치를 외치면서 가장 권위적이고 가장 구태의연한 정치행태를 보이는 모순적 이중성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빨리 극복해야 합니다. 이는 특히 정치권의 지도부 인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언론계로 돌아가 정치권의 경험을 언론의 전문성 향상에 이바지하는 데 썼으면 합니다. 이 시대의 언론은 단순한 사실 전달의 매체가 아니라 가장 힘센 통치기구의 하나입니다. 그만큼 언론의 사회적 책임은 막중한데 그 부문에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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