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당 앞길 첩첩산중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2.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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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표 대권가도 첫고비 돌파···상대는 4인의 高手



처음 나온 ‘집권당 민간인 후보’···결국 양김의 ‘마지막 일전’될 듯

 민자당 재집권 가도에 빨간 불이 켜졌다. 경선 전당대회장에는 김영삼 후보 혼자만 걸어들어가 참석 대의원 66,3%의 지지를 얻었다. 겉모양새는 경선이었지만 과거 집권 여당의 대통령 지명대회처럼 대통령 후보를 한사람만 추대한 모양이 되었다. 경선은 여권 핵심부가 차기 대통령 만들기의 주 전략으로 추진했던 것이다. ‘제2의 6?29??로 효과를 극대화시켜 보자는 것이 당초 구상이었다. 경선 시나리오가 산산조각 난 마당에 여권 핵심부는 애초에 구상했던 정치일정을 다시 짜야 한다.

 축제와 잔치 분위기를 유도했던 민자당의 전당대회장은 대회가 치러진 6시간 내내 착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침울하기까지 했다. 대통령후보 수락 연설문을 읽어 내리는 김영삼 대표의 표정에서는 승자의 환희보다는 무기 없는 병사를 이끌고 출전하는 장수의 착잡함이 더 짙게 풍겼다. 더구나 이종찬 후보는 대회장에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33.2%나 되는 지지를 얻었다. 33.2%의 ‘주인없는 표??는 민자당 핵심부의 아픈 가슴을 더욱 후벼팠을 듯하다.

 李鍾贊 의원은 어떤 방법으로든 민자당과 결별할 것이 확실하다. 남은 것은 시기뿐이다. 그는 이미 행동을 통해 정계개편을 예고했다.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후보가 된 金泳三 대표최고위원에게는 커다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 의원은 또 독자출마 쪽으로 방향을 굳혀가고 있다. 이 의원이 규합할 정치세력이 과연 어떤 모습을 갖출 것인가, 김 후보는 어떻게 정치적으로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다.

 이 의원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치세력은 양김 구도가 청산되기를 바라는 정치인들이다. 경선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이 의원은 줄기차게‘새 정치 새 인물??을 외치고 다녔다. 정치권의 세대교체다.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널리 퍼져 있다. 민주당 李基澤 공동대표조차도 따지고 보면 같은 범주에 든다. 민주당 金大中 대표나 김영삼 후보에게서 소외당한 이른바 양김 시대의 희생자인 구 야권의 일부 원로 인사도 포함될 수 있다. 더 넓게는 6공에서 소외당한 일부 5공 인사가 정계개편에 가담할 수도 있다.

 이 의원이 이런 세력을 얼마나 규합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세력의 강약에 관계없이‘30년 묵은 정치??의 청산을 내세워 강도 높은 공세를 펼 경우 그 파급 효과는 의외로 눈덩이 불어나듯 커질 수도 있다. 3당 합당 후 김영삼 대표를 선택했던 세력의 논리는 ??양김시대는 양김의 손으로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양김씨 중 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야 양김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는 논리였다. 물론 양김 구도를 반대하는 세력은 이 논리를 반박한다. 견강부회라는 것이다. 대안이 마련된 마당에 굳이 양김씨 구도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이의원 동조세력의 주장이다.

 

33.2%의 ‘이종찬 표?? 부담

 이의원이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세력은 그의 대통령후보 선거대책본부였던 광화문 사무실에서 같이 일해온 朴泰俊 최고위원 등‘광화문 사람??들이다. 대부분이 현역의원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경선 파국의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는 여권 핵심부는 이미 이들에게 손을 댔다. 광화문 사람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전열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李漢東의원과 朴俊炳의원은 이미 결별 의사를 비쳤고, 흔들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국민당이나 신정당과 이의원의 제휴설도 끊이지 않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의원이 신당을 창당할 경우 그의 경기고 52회 동창이며 긴밀한 사이인 대우그룹 金宇中 회장의 지원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가 더 무성하다.

 민자당은 이미 차기 대통령후보를 만들어 냄으로써 구심점을 형성했다. 더구나 그 구심점은 세몰이를 주특기로 하는 김영삼 대표다. 盧泰愚 대통령은 이의원을‘배신자??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이런 정치상황을 감안할 때 여권 생리상 얼마나 많은 여권 인사가 민자당을??거부??한 이의원을 선택할지 의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이의원은 정계개편의 핵으로 부상했다. 그의 민자당 내 위상이나 독자적인 세력은 민자당을 위협할 만한 것은 아니다. 이의원이 민자당을 ‘거부??했다는 상징성이 그의 행동을 주목하게 만든다. 전당대회를 이틀 앞두고 이의원이 경선을 거부하고 나서자 노대통령은 ??통탄할 일??이라고 했다. 이의원의 경선 거부는 벌집 쑤시듯 민자당을 뒤흔들어놓았다. 노대통령을 비롯한 민자당 핵심 세력이 경선에 걸었던 기대가 그만큼 켰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러나 경선 구상은 깨졌고 정계개편의 경보음도 올렸다. 남은 것은 집권을 눈앞에 둔 김영삼 대통령후보의 정치력이다.

 김후보와 이의원이 전국을 누비며 개인연설회를 할 때 김영삼 대표의 한 핵심 측근인ㄱ씨는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사상 최대의 도박이 벌어지고 있다. 김영삼 대표가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김 대표가 대통령후보 티켓을 따낸다면 그는 위대한 도박사이며 승부사로 기록될 것이다. 호랑이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아가지고 나오는 엄청난 일을 해내는 것이다. 김대표가 처음 호랑이 굴에 들어갔을 때 (3당 합당)누구든지 호랑이에게 잡혀 먹힐 것으로 보았다. 호랑이를 잡아가지고 나오리라고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5월19일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민자당 전당대회에서 김대표는 마침내‘호랑이??를 잡아냈다. 한판의 정치 도박이 막을 내리는 순간 김대표는??큰정치의 승리??와??문민정치의 도래??를 선언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단상에서 민자당깃발을 흔드는 김대표를 보며 이 측근은 또 이런 말도 했다. “그는 지금 지쳐있다 피곤해한다. 합당 이후 국정 전반의 운영에 대해 살필 경황이 없었다. 여권에 몸을 담은 2년 동안 여권의 생리를 파악했을지는 모르지만 국정 운영의 구상을 가다듬을 기회는 전혀 가지지 못했다. 그만큼 당내 권력투쟁이 치열했다는 말이다. 7개월 후면 그는 대통령이 된다. 국정 전반에 대한 구상을 가다듬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지만 어쨋든 7개월 후면 그는 대통령이 된다.??또 한 측근 ?의원은??김후보가 대통령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이 된 다음이 문제다. 임기 중반에 15대 총선을 치르게 된다. 최대의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앞으로 남은 7개월 동안 김영삼 대통령후보가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그는 연말까지??2백일간의 대통령 수업??을 받게 된다. 그러나 대통령선거 준비가 우선이고, 더 시급한 것은 예고편 정계개편의 회오리에 대처하는 것이다.

 역대 집권 여당은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두고 정치상황의 변화를 용납하지 않았다. 87년 대통령 직선제 수용이라는 피치 못할 상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민의라는‘외압??에 의한 것이었다. 여권 내에서 자가 발전된 돌발 사태는 절대적인 금기사항이었다.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이종찬 의원과 그의 추중세력이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경선 전략이 무산되었던 것처럼 똑같은 상황이 재현되지 말란 법이 없다.

 

출마 5인 이합집산 가능

 경선 전략에 차질이 빚어진 것은 朴泰俊최고위원이 이종찬 의원을 민정계 단일 후보로 내세우면서부터였다. 김후보 진영은 긴장했고, ‘대세몰이??에 박차를 가했으며, 결국 이의원을 자극했다. 이의원의 경선 거부가 예상되긴 했지만??설마??가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앞으로의 정치상황은 불투명하다. 김후보가 또 한번 오판하거나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

 이의원의 독자출마를 전제할 때 연말의 대통령선거에서는 다섯 명이 맞붙는다. 김후보 입장에서는 어느 한 사람도 가볍게 볼 수 없다. 가장 벅찬 상대는 역시 김대중 대표다. 김대중 대표는 이미지 쇄신 작업을 착착 진행시키면서 연말의‘마지막 결전??에 대비하고 있다. 대접전을 앞둔 여권의 분열과 3?24총선에서 확인된 반민자당 기류 등으로 볼 때 김대중 대표 입장에서는 놓치기 아까운 호기다. 14대 국회가 개원되면 공격거리도 많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만큼은 대통령선거 이전에 기필코 치르겠다는 배수진도 쳐놓았다. 이종찬 의원의 등장도 김대중 대표에게는 해롭지 않다. 김영삼 후보를 반대하는 이의원과 이의원 동조 세력이 대통령선거 진전 여하에 따라서 김대중 대표 편에 설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김대중 대표로서는 세대교체 바람을 피하는 것만이 요주의사항이다.

 이종찬 의원이 대선에 나설 경우 김영삼 후보의 여권 표는 잠식당한다. 이의원 지지세력은 여권 성향이라기보다는 기존 야권성향의 반김영삼 세력이 주중을 이룬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의원이 대동령선거를 염두에 두고 가동해온 조직은 주로 여권 성향표를 겨냥하고 있다.

 신정당 朴燦鍾 대표는 이미 대통령후보출마를 선언했다. 박대표는 정치권 내의 위상에 비해 대중적인 지지도면에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인물이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유권자 선호도에서 국민당 鄭周永 대표를 앞지르기도 했다. 박대표는 8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 후보가 단일화되지 못한 것을 줄기차게 맹공격해온 당사자다. 지금까지 그가 내세워온 야권후보 단일화 주장에 변함이 없다면, 사태 진전에 따라서는 야권의 어느 한 후보를 거들어주는 상황도 전개될 수 있다.

 국민당 鄭周永 대표의 발걸음이야말로 김영삼 후보가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변수다. 김후보가 민자당 대령후보로 정해지면서 경선 정국 직전까지 거론되었던 김후보의 민자당 탈당과 정대표와의 제휴설은 일단 낭설이 되어버렸다. 이 관측은 김후보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정대표를 중심으로 볼 때 그가  김후보를 필요로 한다고 판단될 경우 두 사람의 제휴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김후보 측에서도 그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인하지 않는다.

 대통령선거까지는 7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남아 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김영삼?김대중 양김씨의 맞대결 구도는 또 한번 재현된다. 한 시대 상황에 종지부를 찍는 동시에 새로운 정치 상황의 밑그림이 이미 그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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