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者에 쫓겨난 신학자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2.05.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회 밖에도 구원 있다"



감리교 종교재판…‘종교다원주의' 주장 두 교수 黜敎
 지난 5월12일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에 자리 잡은 감리교신학대학(이하 감신대).시계 바늘이 정오를 가리키자 이 대학 방송국 ‘예언자의 목소리??는 화요일 정규 프로그램 ??기자수첩??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감신대 전통과 명예에 먹칠을 한 교단은 이제부터 우리의 적이다. 그리고 이미 적과의 싸움은 시작됐다.?? 점심시간의 한가한 풍경과 달리 교내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일반대학가의 구호를 연상시켰다. 같은 시간, 대학원생들은 본관 2충에서 비상총회를 열고 무기한 수업거부를 결의했다.

 

1백7년 역사상 첫 재판…최고형 선고

 사랑과 화해를 앞세워야 할 신학대학에서 패 교단과의 싸움 이야기가 나오고 수업거부가 결의됐는가. 앞으로 긴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감리교 내부 분쟁은 한국 감리교 1백7년 역사상 최초의 종교재판이 도화선이 됐다.

 지난 5월7일 서울 망우동 금란교회(담임 金弘燾 목사)에서는 감신대 현 학장인 卞鮮煥 교수(65)와 그의 직계 제자인 이 대학 洪丁洙 교수(46)에 대한 종교재판이 열렸다. 판결은 감리교 재판법에 따라 서울연회 회원15명으로 구성된 연회재판 위원회 (위원장 高在英 목사)가 맡았다. 재판절차의 부당함을 항의하려고 ‘법정??으로 몰려 들어간 감신대생 1백여명과 재판장소를 제공한 교회측 남자신도들이 맞붙어 한차례 몸싸움을 치르는 등 극도의 소란 속에 열린 이 재판에서, 두 신학자는 ??이단사상을 가르쳐왔다??는 이유로 감리교 교회 법상 최고형인 ??黜敎??를 선고받았다. 교리 해석상의 이유로 종교재판이 열려 출교처분이 내려지기는 1884~1885년 미국선교사 메클레이와 아펜셀러에 의해 감리교가 이 땅에 전파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두 신학자를 정죄한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교리수호??를 외치며 종교재판을 이끈 郭典泰 목사(60)가 감리교 조직상 최고위직인 감독회장에 올라 교권을 잡은 지난 90년 10월의 정기총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감독회장에 선임된 곽 목사는 우선 1905년 설립된 이래 가장 전통 있는 교역자 배출기관이 돼왔고 감리교의 진보세력이 집결해 있는 감신대의 학풍을 개혁하고자 했다.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해온 변선환 학장은 이들에게 ??눈엣가시??가 되기 시작했다. 종교다원주의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듯이 다른 종교의 신자들도 각자 그들 나름대로의 신을 섬길 수 있으며 구원에도 여러 가지 길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91년 3월 홍정수 교수가 (크리스챤 신문)에 발표한 짧은 기고문 ‘동작동 기독교와 망월동 기독교??는 내연하던 교단과 신학대학 사이의 평평함에 기름을 부었다. 홍 교수는 이글을 통해 ??생물학적 죽음의 극복과 육체의 부활을 믿는 것은 이교도의 어리석음??이라는 독일 신학자 칼 바르트의 말을 인용하며 ??한국 교회는 부활에 관한 한 무신론자들??이라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또한 ??기독교가 혼란에 빠진 이유는 성서의 언어세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에서의 ??부활??이란 정의의 심판이 시작됨을 뜻하는 것이지 결코 문자 그대로 인간의 무궁한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포스트 모던 신학'으로 통칭되는 홍 교수의 신학적 방법론이 단적으로 표현된 이 기고문은 즉각적으로 교단측의 거부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기고문이 발표되자 홍교수는 곧 심사 대상이 되었다. 지난해 9월20일 종결된 1차 목사자격심사 결과는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해명서를 공개하고 그 결과에 따른 여론을 주시한다"는 식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일부 교역자들은 기독교교리수호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위원장 김홍도 목사)를 구성해 이들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지난해 10월 개최된 제19차 특별총회에서는 이들에 대한 징계건의가 정식 결의됐다. 징계 이유는 두 신학자가 "그리스도만이 보편적으로 유일한 구속자가 아니라고 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무시했고 예수의 부활을 부정함으로써 反성서적인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통일교의 요직에 있는 인사가 감신대에서 5년 동안 수학하고 졸업할 수 있도록 홍 교수가 비호했다"는 '혐의'도 덧붙여졌다. 대책위는 이와 함께 징계 이유를 낱낱이 적은 성명서를 일간지 광고란에 게재해 대대적인 여론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지난 5월7일 출교선고 이후 재심청구·상고 등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홍 교수는 "종교재판은 우리를 교회에서 내몰기 위해 대책위가 꾸민 자작극"이라며 재판무효를 주장한다. 홍교수는 그 근거로 판결을 담당한 재판위 위원 15명 가운데 13명이 모두 고발자 단체인 대책위 사람들로 구성됐으며, 재판이 대책위의 안방인 금란교회에서 이뤄졌을 뿐 아니라 기소장 역시 대책위측의 제출자료만을 근거로 한 사실을 들고 있다. 더욱이 홍교수는"지난해 정기총회의 징계결의도 정족수 미달로 법적 효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홍 교수의 적극적인 태도와 달리 변선환 학장은 현재 자유로운 처지가 아니라며 종교재판 이후의 사태에 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종교재판의 학문 자유 침해 도구화는 곤란

 종교재판은 표면적으로 신학적 쟁점을 둘러싸고 진행됐으나 관계자들은 감리교 내 보수파와 진보파, 교단과 신학대학 사이의 알력이 얼키고 설켜 발생한 일로 본다. 지난해 연말 감리교 특별총회에서 징계가 결의되자 전 고려대 교수 金容沃씨는《TV저널》칼럼을 통해 "교권을 장악한 목원대 계열 교역자들이 오랫동안 감리교의 주도권을 행사해온 감신대를 누르기 위해 일을 꾸몄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90년 총회에서는 감리교 최고 임원인 감독 7명 가운데 5명이 목원대 계열로 채워짐으로써 교권의 판도가 바뀌기도 했다.

 서울연회 사무실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감신대 총학생회는 종교재판에 대해"교권을 잡은 일부 보수적 정치 목사들이 교단 분위기를 완전히 자기 쪽으로 몰고 가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다"고 비난했다. 농성을 주도하는 감신대 禹三悅 총학생회장(신학 4년)은 "종교재판은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교세를 확장해온 일부 보수파가 진보적신학자의 숨통을 막으려는 폭거"라고 규정하며 "보수파의 준동에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을 주도한 곽감독회장은 재판 직후 미국으로 떠난 것으로 알려켰다.

 감리교 관계자들은 변·홍 두 신학자의 출교처분 사태가 "신학적 입장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종교재판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도구로 쓰이는 전례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중견 목회자 20여명과 함께 재심청구를 준비중인 '감리교를 걱정하는 기도모임'의 尹炳相 목사는 "재판이 공정하려면 우선 그들의 주장이 '이단'인지 여부를 먼저 판정해야 한다"면서 "이러한 작업은 재판이 아닌 토론을 통해 이뤄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교계의 월로 金燦國 교수(연세대 ·신학)는 "학자에게 학문의 자유가 소중한 것이 사실이지만 교단 밖에서 자신의 주장을 말할 때는 오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종교재판이후 확산일로를 치닫고 있는 감리교단의 분열사태에 우려를 표시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