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상 유죄, 그러나…
  • 김 당 기자 ()
  • 승인 1993.07.1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서대필사건 대책위"역사의 재심 이제 시작됐다"

"이제 유서대필 사건의 판결을 당신에게 맡깁니다. 그 뜨겁던 91년 5월 수십만 군중의 시위가 잇따르는 가운데 검찰은'전민련'으로 상징되는 재야운동의 이른바 부도덕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한 젊은이를 제물로 삼았습니다. 그로부터 2년. 법의 판결은 끝났지만 역사의 판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기 여러분의 판결을 기다리는 유서대필 사건의 모든 자료가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판결 할 차례입니다."

 지난 7월2일 정식으로 출간된 《유서사건 총자료집》(전3권 2천7백쪽)을 소개하는 문안이다. 2년전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이 발생한 이후 줄곧 한 젊은이의 결백을 주장해온'유서사건 강기훈씨 무죄석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 위원장 함세웅 신부)에서는 자료집 출간에 앞서 위와 같은 취지의 소개문을 유서 사건에 관심을 가질 만한 각계 인사들에게 보냈다. 거기에는 이 사건에 대한'법의 판결'에 관여했던 변호사나 판사뿐 아니라 검사까지도 포함되었다. 말하자면 검찰과 서법부에'무엇이 진실이었고 무엇이 거짓이었는지'되묻는 도전장인 셈이다.

 처음부터 이 사건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불렸다. 드레퓌스 사건이란 1백년전 프랑스 정부가 국가 이익을 명분으로 드레퓌스라는 한 유태계 청년 장교를 간첩혐의로 몰아 종신형을 선고받게 했으나 에밀 졸라 등 지식인들의 진상규명 노력으로 12년 만에 무죄가 입증된 사건이다. 그 한국판이 프랑스판과 다른 점은, 국가 안보가 아닌 정권 안보를 위해 한 재야 활동가를 희생양으로 삼은 점이라고 공대위는 주장한다. 검찰로 상징되는 국가의 공신력과 재야의 도덕성 대결로 번진 이 사건은, 1년 2개월 간의 법정 대결과, 그보다 더 치열했던 법정 밖 여론재판에서 유서 대필자로 지목된 당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총무부장 강기훈씨가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징역 3년)이 확정됨으로써 일단 검찰의 승리로 끝났다.

검찰과 김형영의'협조 관계'확인
 그러나 이 사건은 2년 만에 반전 기미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매듭 풀기는 우선 관견 당사자들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지난 6월28일 공대위 사무실(서울 종로구 돈의동)에서 공대위 집행위원장 서준식씨는 이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인물 2명을 비밀리에 만났다. 한 사람은 홍성은씨이고 다는 한 사람은 이영미씨였다. 홍씨는 사건 발생 당시 언론에 분신자살한 김기설씨의 여자 친구로, 이씨는 강기훈씨의 여자 친구로 알려졌다. 절친한 대학 동기인 두 사람은 죽은 자와 혐의자와의 관계 때문에 이 사건에 휘말려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또 법정에서 증언했다. 특히 공판기일 전 증거보전 절차를 밟은 5월17일 홍씨의 진술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1심에서 상고심까지 일관된 재판부의 유죄판결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홍씨는 사건의 재심을 청구하는 데 영항을 미칠 중요한 진술을 했다. 홍씨의 발언 요지는"유서는 김기설씨가 쓴 것이 확실하고 강기훈씨가 대필하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홍씨는 당시 검찰 조사과정(5월13~18일)에서 그렇게 말하지 못한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홍씨는 5월13일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나흘 뒤에는 대부분 번복했다).

 "검찰에서는 주로 새벽에 조사를 받았다. 처음에는 검찰의 태도가 호의적이었으나 내가  몇가지 사실을 숨긴 것이 화근이 돼 나중에는 태도가 돌변했다. 조사가 거듭되면서 극도의 피로감에 휩싸였고 유서와 혁노맹 문건을 본 이후에는 심리적 혼돈상태에 빠졌다. 두 필적이 너무 똑같아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강씨의 집에서 압수한 혁노맹 문건은 재판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쓴 것으로 판명되었다). 또 검찰은 이미 5월15일부터 강기훈씨를 유서대필자로 지목해 놓고 있었다(그러나 검찰이 강씨를 유서대필 혐의자로 보고 있다는 최초의 보도가 나온 것은 5월18일 석간 신문에서이다). 따라서 내가 다른 진술을 해도 믿으려하지 않았고 강씨가 대필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때부터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검찰의 의도대로 답변하게 되었다."

 홍씨는 또 자기의 심리상태에 대한 배경으로 당시 사건 주임검사였던 신상규 검사에게 조사받는 과정에서 강신욱 검사(시 서울지검 강력부장)가"48시간을 넘기면 구속할 수 밖에 없다. 협조하지 않으면 자살방조죄로 구속하겠다"라고 협박성 발언을 한 것을 예로 들었다. 여섯 시간을 넘기지 않게 돼 있는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된 홍씨는 피의자에게 적용되는 48시간 시한을 훨씬 더 넘기며 강압적인 조사를 받았다. 홍씨는 재판 과정에서 검찰에서의 진술 내용을 대부분 번복했으나 당시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강씨의 변호인측은 항소심에서 홍씨를 증인으로 신청했으나 출석하지 않았다. 홍씨는 당시 송명석 검사가 집에 전화를 걸어"변호인측 증인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으며, 출두 의사를 비치자 검찰 수사관을 집으로 보내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밝혔다.

 홍씨와 마찬가지로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받은 이영미씨도 검찰에서 비슷한 불법 수사를 당했다. 이씨는 당시 강력부 임 철 검사가"48시간을 넘겨 계속 붙들어두기 위해서는 구속할 수밖에 없다"라고 협박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재심 철구를 하게 될 경우 검찰에서 강압적인 수사를 받은 다른 참고인들과 함께 검사들을 집단으로 고발하는 문제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씨는 서준식씨에게 공대위가 재심을 청구할 경우 다시 법정에서 진술할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으나, 진실을 밝히는 데 자기의 진술이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협조할 뜻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김형영씨(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분석실장)일 것이다. 김씨는 당시 유서와 김기설씨의 필적은 다르다고 감정한 반면에 강기훈씨의 필적과는 같다고 감정했고,'국립'과'공신력'으로 포장된 김씨의 이같은 감정결과는 재판부가 채택한 유일무이한 증거가 되었다. 김형영씨는 항소심 과정에서 다른 사건으로 고소(뇌물수수 및 허위감정 혐의)되었으나 그 결과는 기묘하게도'돈을 받았으나 허위감정은 안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료집(제3권)은 유서 사건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김씨가 사설 감정인들과 결탁해 돈을 받고 허위로 감정한 사례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짐작케 해준다.

소장 판사들"유서산건은 대표적 정치 판결"
 공대위측은 김씨가 필적 감정과 관련해 검찰측과 어떤'협조 관계'에 있었는지를 밝혀주는 증거를 추가로 확보해 놓고 있다. 함세웅 신부는 오는 8월 우선 김형영씨를 위증죄로 고발한 뒤, 이 문제를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소하거나 직접 관련 검사들을 고발할 계획임을 밝혔다. 또 국제 앰네스티에 이어 최근에는 미국 로버트 케네디 인권센터의 실무자인 아비게일 아브라쉬씨가 서준식씨를 만나 이 사건 관련 자료를 수집해 가는 등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어, 유서 사건은 국제적인 인권 문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전대미문의 이 사건이 법의 판결로 반전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러나 당시 강기훈씨를'악마'로 몰아세웠던'역사의 판결'은 이미 반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시 이 사건을 총지휘했던 전재기 전 법무연수원장(당시 서울지검장)이 이른바 슬롯 머신 사건에 연루되어 옷을 벗은 것은 이미 검찰에 불길한 그늘을 던져 주었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지금도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증거상으로는 유죄였다"라고 말했다. 또 최근 서울민사지법 단독판사들이 사법부의 부끄러운 과거를 회개하면서'정치 판결'의 한 예로'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유죄판결'을 든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한 사람 중에는 유서 사건1심 재판부의 배석판사도 끼여 있다. 강기훈의 유죄를 거들었던 언론의 고백도 이어지고 있다. 김중배 <한겨례 신문> 사장은 자료집 발간 격려사에서 이렇게 밝혔다.

 "나는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절'김기설씨 유서 자필 확실''검찰, 대필주장 후퇴'라는 기사를 1면에 내걸었던'일대 오보'사건의 편잡자였음을 고백한다. 물론 그 기사는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말미암아 움직일 수 없는'오보'로 확정되고 말았다. 그러나 91년 5월25일 그 날 나에게 확신을 토로하던 젊은 기자들의 눈동자를 잊지 못한다."
 유서대필 사건 변호인단이 대법원에 제출한 상고이유 보충서의 맨 마지막 문장은'진리는 죽지 않는다'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