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잇는 자퇴에 명문고'속수무책'
  • 성우제 기자 ()
  • 승인 1993.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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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교 3년 ㄱ군은 2년 전 이 학교에 입학할 때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른바 명문고 학생이라고 한껏 뽐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입시를 코앞에 둔 지금 그 자부심은 부담감으로 변해버렸다. 올해부터 내신성적 적용 비율이 40%로 껑충 뛰고, 내신성적의 불리함을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대학별고사는 9개 대학밖에 치르지 않아 불이익을 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수능시험 준비로 정신이 없는 요즘 ㄱ군은 자퇴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자기의 성적을 가지고 다른 학교로 전학하거나 검정고시를 치면 내신성적을 훨씬 높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계산을 끝내고 자퇴한 친구만 해도 벌써 27명에 이른다.

 이런 고민을 하는 고3생은 비단 안양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국 비평준화 지역 22개 고등학교와 서울 외국어고교의 교사들은'모교를 포기하는'학생을 설득하려고 갖은 애를 쓰지만 교사 스스로도'쇠귀에 경읽기'라고 느낀다. 수능시험에 맞춰 내신을 조정해달라는 진정서를 교육부에 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학부모들이 진학지도실에 와서 울고 있는 풍경도 낯선 것이 아니다.

 지난해 대학진학률이 90%가 넘은 부천고에서는 현재 5명이 자퇴했지만 고3생 5백84명 중 50명 가량이 자퇴 준비를 하고 있다. 경기도 교육감이'자퇴를 시키지 말라'는 공문을 보내와 자퇴를 허락하지 않자 무작정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변호사를 찾는 학부형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 대원외국어고는 8백40명 중 70여명이 자퇴를 원하지만"법이 허용하는 출석일수 안에 학교 시험을 다 치르게 하는 편법 이외에는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명문고 교사들이 크게 걱정하는 점은 지금보다 수능시험을 치른 이후이다. 나쁜 성적을 받은 학생들이 무더기로 자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부천고의 한 교사는"수능시험에서 1백40점을 받으면 평준화지역에서는 2등급 정도 얻지만 우리 학교에선 12등급밖에 안돼 전체 점수에서 25점이 깎인다. 25점이라면 대학을 두세 등급 낮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15등급이 자퇴를 하면 14등급 학생이 15등급이 되기 때문에 자퇴가 줄을 잇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한편 교육부는"내신은 89년에 예고된 것이기 때문에 해당 학생들은 이미 불리함을 다 알고 입학했다"며'편안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내신성적의 비중을 가름하는 대학별고사를 치르는 대학은 올 4월에야 비로소 확정되었다. 탁상과 현장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보이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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