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미는 勞 멈칫거리는 使 고뇌하는 政
  • 남문희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1993.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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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勞使政’시금석 현대 분규 막전 막후

울산 현대그룹 계열사 소속 노동조합들이 총파업을 결행한 지난 7월7일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비서관실의 한 관계자는 깊은 허탈감에 빠졌다. 사태 초기부터 기울여온 모든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느낌 때문이었다. 그는 이 문제는 이제 내 손을 떠났다는 절망감이 뇌리를 스쳤다고 했다.

 이번 현대 사태에 대해 그는 내심 많은 기대를 걸었다. 문민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노사관계의 전형을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기대였다. 이를 위한 객관적 조건도 성숙한 것 같았다. 우선 노사 양측이 그전에 비해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다. 노조측은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현총련)이라는 공동의 연대틀을 가지고 있었지만, 거의 모든 쟁의 행위가 합법으로 진행됐다. 회사측도 예전처런 구사대를 동원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 이인제 노동부장관을 중심으로 한 노사 양측의 활발한 막후 접촉 결과 양측의 입장이 상당히 접근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기대는 해결 일보 직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총파업 국면을 정점으로 청와대와 정부에서 이인제 노동부장관을 중심으로 한 대화파가 검찰과 경제부처 장관 등 강경파에게 배턴을 넘긴 이후, 울산은 노사간 대화 재개라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되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노사 양측이 총파업 전에 예정했던 수순을 밟는 것이기도 하다. 현총련측은 지난 7월6일 기자회견을 통해 “총파업은 그룹에 대한 경고 차원이지 정부에 대한 반대는 아니다. 파업 그 자체가 목적도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 그룹측에서도 정세영 회장이 7월7일 기자회견에서 “현총련하고 협상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단위사업장별로 교섭은 계속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렇다 해도 지난 7월10일 정세영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중공업과 미포조선 노조를 전격 방문해 노조위원장들에게 사업장별로 협상을 재개하라고 특별히 당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정회장의 노조 방문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현총련이나 노동계 관계자들은 정회장의 갑작스런 행동은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해석한다.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한 것은 현총련도 마찬가지다. 현총련에서 막후 협상을 맡아 왔던 한 인사는 “답답하다. 노사 양측 모두 파국을 막아야 한다. 잘못하면 서로 다친다”라고 매우 걱정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노조 먼저 치고 현대에 책임 묻겠다”
 그가 말하는 파국이 올 수도 있는 상황이란, 총파업을 전후로 숨가쁘게 진행된 청와대와 행정 당국의 움직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청와대의 분주한 움직임을 총파업으로 가는 길목에서 최대의 고비가 되었던 7월3일의 정세영 회장과 노조위원장 간의 간담회가 무산된 다음날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7월4일 청와대에서는 박관용 비서실장 주재로 내무.법무.노동부 장관 등이 참석한 관계장관대책회의가 열렸는데,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뭔가 단호하고 전격적인 조처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특히 7월5일 김영삼 대통령이 노총 산하산별노조위원장들과의 만찬석상에서 한 발언은 노사 양측을 긴장케 했다. 김대통령은 그동안 노사분규가 계속돼 경제가 어려워지면 뭔가 중대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되풀이해왔는데, 특히 이 날은 발언 말미에 ‘공장 한두개 문닫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폭탄 선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현재 청와대 수석비서관급들은 김대통령의 중대결심 내용이 노조측뿐만 아니라 회사측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현대그룹의 노사분규가 장기화하면 신경제정책 수행이 어려워질 것을 특히 염려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현총련 등 노조측을 먼저 치고 그 다음 현대그룹의 잘못된 노무관리 관행을 뜯어고치기 위해 현대측에도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관용 비서실장은 “폭풍은 언제든지 휘몰아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폭풍 직전의 적막. 현대 노사 양측은 이 적막 속에서 서로 적정한 수준의 명분과 실리를 구하는 선에서 사태 해결을 마무리 짓고자 상대방의 의중을 탐색하기에 바쁘다.

 사실 파업 직전까지 활발하게 진행돼온 막후 접촉 결과 양측은 이미 서로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다. 그러나 현재 문제는 현총련측의 창구 노릇을 했던 핵심 간부들이 제3자 개입금지 위반 혐의로 수배당한 상태이기 때문에 노사 양측이 협상 창구를 개설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는 데 있다. 울산의 한 소식통은 “현총련도 속으로는 막후 대화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현총련 내에는 긴급수배된 핵심 간부들만큼 막후 협상을 주도하면서 조합원에 대해 권위와 신뢰를 받는 인물이 없다. 더구나 현대정공 김동섭 위원장의 직권조인 때문에 위원장들이 직접 막후 협상에 나서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다”라고 관측했다. 7월5일 검찰이 현총련의 핵심 간부인 권용목 상임지도위원.오종쇄 정책기획실 차장.이수원 사무차장 등을 제3자 개입금지 혐의로 긴급수배했을 때 현총련의 내부 사정에 밝은 울산 지역 인사들은 타협을 통한 사태 해결이 이제 어렵게 됐다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몇년 동안 현대그룹 노사 양측의 입장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면밀하게 관찰해온 울산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그들의 전력 등을 문제삼아 수배령을 내린 것은 현총련 내부의 역학관계를 전혀 고려치 않은 피상적 조처이다”라고 비판했다.

노조 “정부의 개혁 돕는 싸움 돼야 한다”
 현총련 사정을 잘아는 울산 지역 인사들은, 긴급수배된 이 세사람이 현총련 내에서 현직 조합장들보다 훨씬 온건하고 합리적인 입장을 견지해왔고,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해왔다고 말한다. 수배령이 떨어지기 직전 그들을 몇차례 만난 적이 있다고 밝힌 한 소식통은 이번 사태 초기부터 이들은 “싸움만이 능사는 아니다. 서로 이기는 싸움이 돼야 한다. 그래야 이 싸움이 현정부의 개혁정책에도 도움이 되고 수구세력의 발호를 막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파업에 대해서도 “총파업은 서로에게 흠집만 날 뿐이지 노동자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고 한다.

 총파업이 결행된 지난 7월7일 울산의 한 재야 인사는 총파업이 있기 전까지 이인제 노동부장관과 정부측 개혁지향 세력의 중재로 이들 3인이 실제 현총련측의 막후교섭 창구 노릇을 해왔다고 밝혔다.

 올 4월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한 현대그룹 계열사 노사분규는 크게 단위사업장별 문제와 그룹계열사의 공통 현안을 쟁점으로 하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현재 핵심 쟁점이 되는 것은 노조측이 계열사 공통의 현안으로 지적하는 임금인상률 가이드라인 문제와 해고자 복직 문제,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대화의 형식 등이다.

 현총련 소속 현대그룹 계열사 노조들이 올해의 임금협상을 공동임투 형식으로 끌고가도록 촉발한 1차적인 계기가 된 것은 지난 4월초 경총과 노총이 올해 임금인상률을 4.7%로 억제한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에 전격 합의한 데서 비롯됐다. 이 안은 노동계 일반의 사전 양해 없이 전격 합의됨으로써 노동조합들의 반발을 불렀다. 또 해고자 문제는 87년 현대엔진 노조 출범 이래 매년 있었던 임금협상이나 단체협상 과정에서 핵심적임 노조 간부나 조합원이 수없이 해고됨으로써 현대그룹 노사관계의 누적된 현안으로 되어 있다. 현재 문제가 되는 해고자 수는 울산.경인 지역을 포함해 약 40명 선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권오사김정’이라고 부르는 5명과 학생운동 출신 4명의 복직 문제가 핵심 쟁점이다. ‘권오사김정’이란 권용목.오종쇄 씨와 현대엔진노조 전 사무장 사영운 씨, 그리고 현대중공업노조 부위원장 김진국.여성부장 정영빈 씨를 가리키는 말로 현대그룹 해고자 문제의 대명사처럼 돼 있다.

 이 두가지 문제가 공통 현안의 내용이라면 노조측이 주장하는 현총련 소속 노조위원장들과 정세영 현대그룹 회장 간의 직접 협상은 현안을 다루는 대화의 형식 문제다. 노조측은 각 단위사업장별 사장단이 협상에 대한 실질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룹 차원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노조측은 협상 권한이 정세영 회장 직할의 그룹 종합기획실에 의해 장악돼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단위사업장별로는 그룹 종합기획실과 직접 연계돼 있는 노무관계 전무 등이 실권을 장악해 전문 경영인인 사장단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룹측은 현총련과의 대화는 현재 법외노동단체로 돼 있는 현총련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모든 교섭은 단위사업장별로 이루어져야 하고, 사장단이 실권이 없다는 주장도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한다.

현총련, 협상안 제시해 대화 분위기 주도
 이인제 장관을 통로로 한 노사 양측의 막후 접촉은 양쪽의 이러한 첨예한 쟁점을 타협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데 맞추어져 있었다. 적극적으로 협상안을 제시해 대화 분위기를 주도한 쪽은 현총련측이었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특히 현총련측의 교섭 창구를 맡았던 3인은 울산에 내려온 이장관과의 직.간접 접촉을 통해 현총련측의 타협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이 소식을 전한 재야단체 인사는 “당시 이장관과 현총련측 교섭 창구 사이에서 해고자 복직 문제에 대해서는 결정적인 의견 접근이 이루어졌고, 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노조측이 4.7%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대신 성과급 등을 통해 나머지를 보전하는 방식에 거의 합의가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대화 형식에 대해서도 회사측이 현총련을 협상 상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대화 상대로 받아들이는 선에서 양해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인제 장관 등 ‘대화파’ 입지 잃어
 이장관과 현총련 교섭 창구 사이의 타협안은 이장관을 통해 현대그룹측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월4일자 <한겨레신문>은 노동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인제 노동부장관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해고자 복직, 계열사 모든 조합장과 그룹 차원의 간담회, 4.7% 임금인상을 전제로 하되 성과급을 통한 임금보전 등 3개항을 수락하라고 촉구했다. 정회장은 이에 대해 즉답을 하지는 않았으나 그룹 차원에서 이장관의 권유사항을 수용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대해 현대그룹은 즉각 사실무근이라며 한겨레측에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등 크게 반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계 관계자들은 어떤 경로가 됐던 이장관이 그룹측에 현총련의 타협안을 전했을 것으로 본다.

 그에 대한 방증이 7월2일 이루어진 계열사 노조위원장 5명에 대한 정세영 회장의 간담회 제의이다. 이 제의는 형식상으로는 6월30일 현총련측이 공동임투결의대회에서 그룹차원의 대화를 촉구한 데 대한 화답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나, 그동안 단위사업장별 교섭을 고집해온 그룹측이 5명으로 제한된 수이기는 하나 면담을 수락한 것은 획기적인 일로 비쳤다.

 7월3일 예정됐던 정회장과 현총련 소속 노조위원장 간의 간담회는 현대 사태의 분수령이었다. 노동부 내에서 중재역을 맡았던 최고 실무자는 7월3일 이 날의 간담회가 결정적 고비가 될 것임을 잘알고 있었다. 그는 매우 낙관적이었다. 공식적으로 5명만을 간담회에 초대하되, 나머지 사람들이 몰려가 합석을 요구하면 현장에서 수용한다는, 양쪽의 명분과 실리를 보장하는 타협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울산 현지에서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간담회가 무산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예상대로 5명을 초청한 간담회 자리에 노조위원장 14명이 몰려갔는데, 결국 양측이 실랑이만 한 채 내면적인 합의사항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청와대 교문수석실 관계자는 대화의 형식 문제와는 별도로 내용에 있어서도 “해고자 복직 문제가 끝까지 걸림돌이 되었다”고 말했다. 특히 ‘권오사김정’ 5명과 학생운동권 출신 4명 등 해고자 9명의 문제가 마지막까지 타결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총련 교섭대표들은 총파업 직전까지 이 문제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견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즉 문제가 되는 9명에 대해 “즉각 복직이 아니더라도 회사가 복직을 약속만 하면 시기.방법.절차에 대해서는 회사측에 일임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는 이 부분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해고자 복직 문제에서 회사측은 9명을 제외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괄타결 의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9명에 대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 회사측의 마지노선이었다”고 말했다.

 7월3일 간담회 무산은 노사 양측의 대화기류에 찬물을 끼얹었다. 현총련측에서는 총파업 하루 전인 7월6일 재차 만날 것을 촉구했으나 이미 회사측 태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다. 상황은 총파업을 향해 치달았다. 이와 함께 정부 내에서도 이인제 장관을 중심으로 한 대화파의 입지는 거의 사라졌다. 간담회가 무산된 다음날인 7월4일 청와대 관계장관대책회의의 결론도 같은 맥락이다. 더욱이 7월5일 검찰이 현총련내 협상 창구인 권용목 오종쇄 이수언 3인을 과거의 전력 등을 문제 삼아 제3자 개입 혐의로 긴급 수배령을 내리면서 그나마 협상 창구조차 봉쇄되는 상황이 초래됐다. 문민 시대를 맞아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새로운 노사관계 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모처럼의 좋은 기회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긴박하게 전개됐던 노.사.정 간의 막후 교섭 내용을 전한 울산의 재야 인사는 “현총련측 교섭 담당자들은 지금 무척 답답해하고 있다. 어떻게든 파국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손을 쓸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문민 시대의 새로운 노사관계 정착을 위해 정부나 회사가 노동조합에서 일정한 권위와 책임성을 가지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세력을 적대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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