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같은 여가는 새로운 피곤함
  • 심광현 (《문화과학》편집동인·미술 평론가) ()
  • 승인 1993.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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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는 없다’.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누리며 에너지를 재충전한다는 의미의 휴가는 이제 사전 속에만 존재한 것 같다. 주말마다 교외로 빠져 나가는 도시인들은 집단적 강박증세를 보인다. 거기엔 왜 떠나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필요없다.

 곧 여름 휴가가 시작되는데, 주말 휴가에 비하면 여름 휴가는 긴 악몽이다. 교통난은 물론 휴가 비용도 몇 배로 늘어난다. 그런데도 여름이면 도시인들은 ‘주차장인 고속도로’를 타고 산과 바닷가로 몰려간다. 마치 광신도들의 성지순례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박증 환자나 광신도의 공통점은 자기행위에 대한 사유와 반성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명령’에 충실히 따를 뿐이다.

 여가나 휴가는 보드리야르가 말한 바와 같이 ‘비생산적인 시간 소비’로 변해 있다. 경제적으로는 비생산적인 이 시간이 사실은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의 차이를 강조하는 가치(일종의 문화적 효과)를 생산한다. 그리하여 주차장과 같은 도로 사정에도 불구하고 기를 쓰고 산과 바다로 차를 몰아댄다. 그리고 나서 자신은 최소한 문화적 중산층임을 입증했다고 자부한다. 이것이 명령을 수행한 결과 가운데 하나이다.

 노동 시간의 축소로 늘어난 여가 시간 자체는 사실 공짜가 아니다. 여가는 일종의 ‘번’ 시간이다. 시간 자체가 이제는 교환가치의 법칙에 따르면 희소한 상품이기 때문에, 여가에도 자연을 만끽한 ‘보람’이라든가, 놀이의 기쁨을 ‘생산’해야 한다는 강제의 법칙이 작용한다. 휴가중에도 일상적 경쟁과 똑같이 목표 달성의 집념이 엄존하며, 그 성취감을 ‘썬탠’과 같은 증거물로 과시해야 한다.

 바캉스라는 용어가 환기시키는 자유분방함이란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행락객들은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장소로 내몰리고, 휴가는 일상적 피곤함 위에 새로운 피곤함을 더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들은 휴가를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외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 휴가 현상으로 두드러지는 이같은 문제는 결국 자본주의적 팽창이 수반하는 일상 생활의 새로운 위기이다. 생산과 소비, 노동과 여가, 일상과 정치의 관계 등 기존의 관념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이 긴급하게 필요한 것임을 여름 휴가 현상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여가가 여가답지 못할 때, 노동 또한 노동일 수 없다. 노동 같은 여가, 여가와 같은 노동이란, 노동과 여가 둘 다의 죽음이고 곧 인간의 죽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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