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핵 사찰 ‘재처리량’이 핵심
  • 피터 헤이즈 (노틸러스 퍼시픽 연구소장) (sisa@sisapress.com)
  • 승인 1993.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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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할 시간을 벌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의 특별 사찰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대통령 주장에 이견이 있다.

 원자로에서 태우고 난 ‘사용후 핵연료(spent fuel)'는 통상 5~6단계 공정을 거쳐 재처리된다.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는 영변의 두군데 핵시설에는  (근처 5MW짜리 연구용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후 연료를 재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온 핵폐기물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액체 혹은 고체 상태의 고·저준위 핵폐기물은 파이프나 밀폐된 용기에 담겨 이 두군데의 폐기물 창고로 옮겨지는 거 같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 폐기물에서 샘플을 채취하여 여러 가지 화학적·물리적 수단으로 방사능 수준을 측정할 계획이다. 측정 결과는 북한이 이미 신고한 것보다 사용후 핵연료를 얼마나 더 재처리했는지 밝혀준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이 핵폐기물을 감추기 위해 지연 전술을 쓰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국제원자력기구가 사찰 대상으로 이 두군데 시설을 선정한 이유는 북한이 그곳에 보관하고 있는 물질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방사성이 강하고 다루기 힘든 물질은 인공위성의 감시를 피해 재빨리 다른 곳으로 옮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설사 그 폐기물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 해도 그것에서 핵물질을 추출할 수는 없다. 그 폐기물 속에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의 방사성 물질이 들어 있지 않다.

 국제원자력기구는 폐기물에서 채취한 샘플을 조사함으로써 북한이 ’과거에‘ 얼마나 많은 양을 재처리했는지, 따라서 현재 북한이 얼마 만큼의 핵물질을 갖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폐기물이 어디에 있건 북한이 그것을 가공해 핵 능력을 더 가질 수는 없다. 즉 북한이 이 폐기물에 대한 사찰을 막는다고 해도 그것은 북한이 새로운 핵 능력을 가질 수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미 재처리가 끝난 핵물질을 특별 사찰하는 것으로 북한의 장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이미 신고한 시설, 특히 연구용 원자로에 대한 정기 사찰이다. 특별 사찰은 과거에 북한이 무슨 짓을 했으며, 지금 무엇을 갖고 있는지를 밝혀내는 수단일 뿐이다. 북한이 특별사찰을 거부한다고 해서 이미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핵물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군사적으로 별 의미 없는 재처리 핵 10kg

 지금 현안은 ‘북한이 연구용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후 연료를 얼마만큼 재처리했느냐’이다. 미국 정부의 유력한 소식통에 따르면, 그 양은 10kg 이하이거나, 1~2개의 조잡한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이것을 무기로 배치하면 반격 능력도 없이 상대편의 공격을 자초하기 때문에 북한에게는 군사적으로 오히려 불리하다.

 따라서 현재 북한의 핵 능력은 ‘정치적’ 무기일 수는 있어도 군사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북한이 연구용 원자로에서 나온 연료로 얼마나 많은 플루토늄을 추출했는지를 밝히는 방법은, 그 원자로에 있는 연료봉을 조사해 보고 그 결과를 북한이 서면으로 국제원자력기구에 보고한 내용과 비교해보는 것이다. 이것이 주된 과제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두군데 시설에 대한 특별 사찰 문제는 그 주요 과제에서 파생한 문제인 셈이다.

 연구용 원자로 연료봉에 대한 정기 사찰이 늦어진다고 해서 그 사이에 북한이 새로운 핵물질을 추출하기는 힘들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가 설치해 놓은 감시 장치를 피해 핵물질을 추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정기 사찰이 계속되는 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위한 추가적 능력을 갖기는 힘들다. 요컨대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확인하는 잣대는 특별 사찰이 아니라 연구용 원자로의 연료봉에 대한 사찰이다.

 따라서 북한이 특별 사찰을 거부하면서 시간을 끄는 이유는, 핵무기를 개발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 행적을 감추는 연막 작전을 펴서 정치적 효과를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개발할 의지를 갖고 있든 아니면 핵 카드를 쓰려고 하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북측이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김일성 정권은 아직 이를 결정하지 못한 것 같다. 북한 지도부는 정기 사찰을 4~6개월 정도 지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미국은 북한이 정기 사찰을 거부할 경우 9월을 넘기지 않고 제재에 들어갈 것이다. 따라서 북한 지도부는 멀지 않다 핵 무장을 통한 정면대결이냐 아니면 화해와 군축이냐를 놓고 분명한 노선을 선택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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