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비밀 풀어야 복원 가능
  • 김상현 기자 ()
  • 승인 199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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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피를 빨아먹은 모기가 수액이 흐르는 나무에 앉았다가 수액에 갇힌다. 수천만년이란 세월이 흐르도록 모기는 수액에 갇힌채 공룡의 피를 간직하고 있다. 일군의 생명공학자들이 그 수액의 화석인 호박(琥珀·amber)을 캐내어 그 안에 든 모기의 뱃속에서 공룡의 피를 추출한다. 그 피에는 공룡 유전자의 디옥시리보 핵산(DNA) 구조가 숨어 있다. 컴퓨터가 유전자 지도를 검색해서 결손 부분을 찾아낸 뒤 거기에 개구리의 디옥시리보 핵산을 채워 넣는다. 완벽해진 염색체 세트를 악어의 난자에 이식한다. 그 다음 필요한 영양소가 모두 함유된 인공 알 속에 집어넣는다.

 영화 <쥬라기 공원>의 공룡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현재에 부활한다. 생명공학자들은 이러한 아이디어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현재의 생명공학 수준이 멸종 생물은 고사하고 완전한 유전자 코드를 알 수 있는 살아 있는 동물의 무성생식에도 성공하지 못한 상황임을 지적한다. 존재하는 생물체를 ‘변형’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를 ‘창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인 것이다.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분교의 조지 포이나 교수팀과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과학자들은 4천만~2천5백만 년 전의 화석으로부터 디옥시리보 핵산을 얻는 일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포이나 교수는 “호박에서 공룡의 디옥시리보 핵산을 얻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기가 공룡의 혈액 세포를 분해하기 전에 호박 속에 갇혔을 때의 얘기다. 그에 따르면, 고대의 뼈나 피부에서 공룡의 디옥시리보 핵산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 극단적인 鑛化작용으로 세포가 치환돼 버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유전공학연구소의 李大實 박사(44)도 공룡 화석에서 디옥시리보 핵산을 추출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제대로 보존된 화석이 있다면, 부분적이지만 현재의 유전자 증폭·복제 기술로도 디옥시리보 핵산을 추출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 전체를 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공룡을 복원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공룡의 디옥시리보 핵산을 추출해 전체 유전자 코드를 해독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현재의 생명과학 수준으로는 유전자의 기능을 극히 부분적으로밖에 모르기 때문에 유전자 발현을 통제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복제된 디옥시리보 핵산을 다른 생체의 세포에 넣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반응도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라는 것이 이박사의 설명이다.

 그러나 <쥬라기 공원>의 이야기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왓슨과 크리크가 유전자의 이중나선 구조를 처음 밝혀낸 것이 겨우 40년 전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디옥시리보 핵산의 염기 배열을 밝혀내려는 초대형 프로젝트가 90년 10월1일부터 선진국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2005년까지 염기 서열 30억개를 모두 밝히겠다는 이 야심찬 계획으로 21세기에는 현실에서 쥐라기 공룡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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