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자살’은 자존심 때문?
  • 워싱턴·김승웅 특파원 ()
  • 승인 199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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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통신

권총 자살한 아칸소 출신 빈센트 포스터 백악관 법률담당 부보좌관(48)의 정확한 사인이 사건이 발생한 지 열흘이 넘도록 규명되지 않고 있어 그의 단짝 친구인 클린턴 대통령이 자못 곤혹스런 입장에 빠져 있다.

 7월20일 워싱턴 시내 포토맥 강변 포트마시 공원에서 시체로 발견된 포스터의 자살 사건은 그가 클린턴과는 죽마고우인 데다, 대통령 부인 힐러리와 같은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한 단짝 변호사라는 점, 그리고 백악관에 발을 들여놓은 뒤에도 클린턴보다는 오히려 힐러리쪽과 어울리는 기회가 많았다는 점에서 사건의 배경상 갖가지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의 죽음이 새삼 뉴스를 타기 시작한 것은 당초 클린턴의 엄명에 따라 조사를 떠맡은 법무부측이 경찰의 약식조사에만 의존할 뿐 본격적인 사인규명을 포기하거나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면서부터다.

 포스터의 사인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법무부 산하 연방수사국(FBI)이 클린턴과 힐러리 내외를 상대로 탐문 조사를 벌여야 마땅한데도 이 조사 작업을 법무부가 포기한 것이다. 법무부 수석대변인 칼 스턴이 되풀이하는 답변은 경찰의 보고인 “타살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으로 일관한다. 계속해서 물고늘어지는 언론에 대해 그는 “수사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조사다. 모든 걸 수사 차원에서 보려 들기 때문에 의문이 생긴다”라며 기자들을 훈계하고 있다.

초일류 엘리트의 백악관 업무는 ‘실격’
 백악관은 자체 조사를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포스터의 차상급자인 너스바움 보좌관이 연방수사국 직원 2명과 법무부 형사 담당 변호사 2명을 개별적으로 불러 고인의 사무실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단서가 될 만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자체 조사는 백악관측 발표에 그친 것일 뿐 확인된 조사는 아니고, 자체 조사 과정에서 고인의 사무실에서 찾아낸 컴퓨터 디스켓이나 서류뭉치를 사물이라는 이유로 지우거나 소각한 너스바움 보좌관의 행위가 오히려 의혹을 더 불러일으켰다.

 사인이 될 만한 주요 단서를 찾기 위해 각 언론사의 일급 수사전문 기자들이 백악관 주변은 물론, 멀리 아칸소주 호프읍의 장지에까지 급파되어 이른바 ‘아칸소 사단’으로 알려진 클린턴 캠프 내에 자칫 만연돼 있을지도 모를 갈등이나 알력 여부까지 캐고 있다.

 열흘 넘게 치러진 집중 취재 결과 죽은 포스터의 내력 중에 자살로까지 치달을 어떤 이유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전 문제도 깨끗했고, 과거의 병력 중에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흔적도 없다. 아칸소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하고 기반을 잡은 포스터는 정상급 변호사로 아칸소주보다는 오히려 다른주에 있는 대기업, 예컨대 월 스트리트에서 최강의 투자신탁 은행으로 통하는 스테픈 인코퍼레이트와, 미 전역에서 가장 큰 양계업체인 타이슨 푸드, 역시 최대 규모의 소매업체인 월 마트 등이 그의 단골 고객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또 동창생인 클린턴이나 현 백악관비서실장 맥라티를 제치고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아칸소 대학 졸업 이후 변호사 시험에서도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났다.

 지금까지 나타난 가장 그럴듯한 자살 원인으로는 그가 백악관에 발을 들여놓은 후 되풀이되어 온 인사 정책의 실패를 들 수 있다. 그가 추진해 온 백악관 업무는 한때 법무장관으로 발탁됐다가 상원 인준에서 기각된 여성 후보인 조이 베어드나 법무차관 후보 래니 기니에, 뇌물수수 혐의로 쫓겨났다가 다시 임명된 백악관 여행과 직원들의 추천과 뒷수습이었다. 여기에 5백여명의 각 분야 전문가를 대동하고 의료제도 개선에 앞장서 온 힐러리를 측근에서 지원하는 작업 등이었다. 맡은 소임 하나하나가 클린턴 행정부의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일들이었으나, 의료제도 개선을 제외하면 모두가 실격으로 판정 받았다. 어릴 적부터 1등만을 도맡아 온 포스터의 자존심이 크게 손상당했으리라는 것이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의 일치된 견해다. 그러나 자존심 실추가 구체적 사인으로까지 연결되지는 않는다. 평소 그의 성격으로 미뤄 불만이 있다거나 요구 사항이 있다면 클린턴이나 힐러리한테 대놓고 털어놓을망정 자살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포스터에 대한 측근의 평가다. 한마디로 타살 혐의가 짙다는 추정이다.

 그렇다면 범인은? 이 대목에 이르면 추정은 다시 루머를 탄다. 관료적이고 뒷말 많고 모함하기 좋아하는 ‘워싱턴 생활’이 바로 주범이라는 품격 높은 루머도 없지 않지만 그다지 큰 설득력을 지닌 진단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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