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공행상 ‘낙하산’ 탄 민주계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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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투자기관 간부로 대거 기용돼…“문민 출신은 다르다”는 평가도

정부투자기관이 중요한 이유는 국영기업의 사업 규모가 전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막강하기 때문이다. 92년 기준으로 23개 정부투자기관의 매출 규모는 41조5천억원, 정부 예산 33조2천억원을 훨씬 넘어선다. 이만한 사업 규모인 국영기업체가 민간기업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제껏 국영기업은 일반의 관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민간기업과 경영비교가 잘 되지 않아 특혜를 누려왔다. 이들 기관의 사장이나 이사장의 대부분이 전문성과 전혀 상관없는 군·정치인 출신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투자기관 인사가 이뤄질 때마다 ‘낙하산 인사’ ‘퇴물들의 안식처’라는 불명예스런 뒷말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金泳三 정부는 출범 초인 지난 3월 개혁 차원에서 정부 투자기관의 이사장 제도를 폐지하기로 확정짓고, 이 문제를 골자로 하는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 개정안을 마련키로 했었다. 그러나 새 정부의 이런 개혁 방침은 불과 닷새가 지나지 않아 바뀌었다. 입장을 바꾼 이유는 ‘이사장제 자체는 투자기관 경영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다만 소속 기관의 업무와 관련이 없는 이사장은 전원 교체하고, 이사장들에게 제공하는 월 2백만원 가량의 판공비와 승용차·비서를 예산절감 차원에서 모두 없앤다는 방침이 세워졌다. 이에 따라 3월26일 정부투자기관장에 대한 대폭적인 경질 인사가 단행됐다.

 그러나 이 인사와 각 행정부처 산하 관련 기관의 후속 인사에서도 ‘비전문인 배제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진 것은 아니었다. 과거정권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비율은 줄었지만 기관의 전문성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기관장에 중용되는 현상은 그대로 유지됐다. 특히 민자당내 민주계 인사들, 그 중에서도 김영삼 후보의 선거조직이었던 ‘민주산악회’와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 출신들이 대거 임원으로 기용되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 趙鍾益씨(민주산악회 부회장출신. 11·12대 의원) △토지개발공사 사장 金佑錫(민주산악회 부회장·김영삼 대표 비서실장 출신. 13대 의원) △농어촌진흥공사 사장 趙洪來씨(민주산악회 부회장 출신. 8·10·12대 의원)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朴 楠씨(민주계 13대 의원) △근로복지공사 사장 박용식씨(‘나사본’ 노동담당) △석유개발공사 감사 林井圭씨(민주산악회 출신) △한국 마사회 업무이사 盧秉九씨(민주산악회 연수원장·민자당 광명시 지구당 위원장 출신) △체육진흥공단 상임 감사 柳在浩시(풍산금속 사장·‘나사본’ 조직담당 출신) △체육진흥공단 전문위원 孫正博씨(‘신한국 창조를 위한 시민연합중앙협의회 의장’출신) 등이다.

민주산악회 출신이 대다수
 이밖에도 한국마사회의 경우는 金龍角 총무이사(민주산악회 출신)와 박욱재 감사(민추협 출신)가 진작부터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마사회는 양대 이사(총무·업무)가 모두 민주산악회 출신으로 채워진 셈이다. 또 체육진흥공단은 ‘신민주계’로 분류되는 민자당 사무처 당료 金賢根씨(교무·종교국장 출신)와 田鍾沃씨(홍보·국제부장 출신)를 전문위원으로 각각 임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과거의 그릇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업무의 지속성과 전문성에서 문제되는 외부 인사들이 임명되자 해당 기관이나 부처의 반발은 심했다. 한국마사회 노동조합은 ‘낙하산 인사 발령 철회를 위한 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신임 업무이사 발령에 극력 반대하고 나서기도 했다. 마사회 노조는 지난 4월19일의 성명을 통해 ‘신임 업무이사는 한국의 민주화 발전에 몸바쳐온 지조있는 인사라고 알고 있다. 따라서 논리와 상식이 통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문민 정부의 개혁 주도자요, 전국민적 존경을 받는 김대통령의 업적에 흠과 누를 남기지 말 것을 바란다는 맥락에서 자발적인 용퇴로 금번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기대한다’고 요청했다.

 노조의 반발로 인해 민주계 인사의 기용이 무산된 경우도 있다. 지난 3월 정부는 김대통령 측근에 속하는 沈完求 전 의원을 한국전력 고위직에 임명하려 했으나 ‘전국전력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전국전력노동조합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걸핏하면 낙하산식 인사를 함으로써 우리의 울분을 자아낸 바 있었으나 지금의 문민 정부에서는 그러한 악습이 되풀이되지 않을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또다시 그러한 일들이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어 실망과 의아함을 금치 못한다. 우리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이에 대응할 것을 천명한다’고 3만 조합원의 이름으로 성명서를 냈다.

 토지개발공사에서도 이런 반발이 일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토개공’을 포함해 건설부 산하 4개 공사는 신임 김우석 사장을 임명한 데 반대하는 공식 항의 성명을 냈다. 김사장은 ‘추후 어떠한 형태의 낙하산 인사도 다시는 없다’는 약속을 노조에게 확실하게 전달한 다음에야 취임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신임 사장이나 고위 간부들이 모두 심한 저항에 부딪혔던 것은 아니다. 내려오는 신임 사장들마다 거의 군 장성 출신이었던 농어촌진흥공사나 대한광업진흥공사의 경우는 신임 조홍래 사장이나 조종익 사장이 문민 출신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반겨하는 분위기였다. 농어촌진흥공사 관계자들은 조홍래 사장이 6·3세대이면서 국회 농림수산위원시절에 날카로운 질문을 퍼부어 정부 당국자들을 애먹였던 당사자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공사의 자체 개혁에 상당한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대한광업진흥공사 역시 전임 사장(국방대학원장 출신)과 이사장(합참의장 출신)이 모두 군 출신 인사였기 때문에, 경제 분야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조종익 사장이 다소 의외로 발탁되었지만 후유증은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특히 조사장이 민주산악회의 중심 인물이었다는 ‘전력’을 높이 샀다는 후문이다.

 조사장은 취임한 뒤로 구내 식당의 간부 전용석과 일반 사원석의 구분을 없애고, ‘사원 소리함’을 만드는 등 과거 권위주의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또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19개 부서를 16개로 줄이고, 50여명에 달하는 인원을 감축하는 등 내부 혁신에 앞장서서 관계자들로부터 ‘민주투사 출신은 역시 다르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과거 동지를 뿌리치기 힘든 측면도 있다”
 이런 경향은 근로복지공사에서도 나타났다. 근로복지공사의 朴範贊(46) 노조위원장은 “그동안 사장으로 온 사람들은 모두 노동부 관리들이었다. 따라서 관료 특유의 행태로 말미암아 실제로 근로자의 복지를 위한 행정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신임 박사장은 노총 출신이고 재야활동을 했던 사람이니만큼 뭔가 다른 측면이 있지 않느냐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달했다. 박위원장은 또 “근로복지공사가 이름 그대로 1천5백만 근로자를 복지 차원에서 대변하는 기구가 되려면, 공사부터 먼저 개혁을 이루어 위상을 높여야 한다. 사장도 뭔가 한번 해보자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사는 근로복지 증진이라는 공익 목적과 투자기관이라는 영리성을 양립하고 있는 것이 제일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따라 근로자를 위한 편의시설이 돼야 할 7층 사옥 중 2개 층만 본사 사무실로 쓰고 나머지는 모두 임대해주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투자기관의 간부에 관연 어떤 사람들이 임명될 것이냐 하는 문제는 김영삼 정부의 개혁의지를 시험하는 하나의 척도로써 주목을 받아왔다. 김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인사는 만사’라고 강조했기 때문에 인사 정책에 관한 한 새 정부는 조그만 수구적 관행일지라도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정부투자기관에 민주계 인사들이나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공을 세웠던 사람들이 대거 등용된 사실만을 놓고 본다면 논공행상의 정도가 지나치다는 비판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자당 민주계의 한 당직자는 “어차피 단칼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개혁도 민주계에 힘이 모여야 가능한 것이지, 힘이 분산되면 수구 세력의 반동이 언제라도 가능하다. 바로 그런 점에서 과거 함께 고생했던 동지들을 매몰차게 뿌리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래서 혁명보다 개혁이 어렵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趙瑢俊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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