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돈+권력=경악
  • 파리·양영란 통신원 ()
  • 승인 1993.08.1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랑스 축구팀, 승부 조작 파문…타피 전 장관 관련 여부 촉각

스포츠·돈·권력 간의 함수관계는 어떤 것일까. 최근 연일 프랑스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일부 프로축구단 비리 사건은, 상대편 선수를 매수했다는 혐의만으로도 물의를 빚고 있지만, 이를 넘어서 정치 권력이 개입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까지 낳고 있어 더욱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수사 대상이 되고 있는 경기는 지난 5월말에 치러진 마르세유 대 발랑시엔느의 게임.프랑스 선수권대회 경기 가운데 하나인 이 시합이 있기 전날 마르세유측에서 상대편 팀 선수 3명에게 ‘돈을 줄테니 대충 뛰라’고 제안했다. 전화로 이런 협상이 오고간 후 실제로 돈봉투가 전달되었고, 매수 대상이었던 3명 중 처음부터 거부한 한 선수가 이를 폭로함으로써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본격 수사는 프랑스축구협회의 자체 진상조사가 있고난 뒤 시작되었다. 축구계 일각에서는 과거에도 심심치 않게 있어 왔던 일을 가지고 뭐하러 새삼 자기 무덤을 파는 행위를 하려고 하느냐고 반발을 하기도 했으나 결국 이 기회에 그러한 파행을 청산하자고 의견이 모아졌으며, 프랑스축구협회 회장이 앞장서서 이 사건을 법정에 세웠다. 그 결과 현재 마르세유팀의 매니저 및 선수 1명은 ‘적극적 매수 혐의’, 현금을 받은 발랑시엔느팀 소속 2명은 ‘소극적 수뢰 혐의’로 각각 구속된 상태이다.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최고위직 간부들에게까지 구속 범위가 확대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당사자인 마르세유나 발랑시엔느 팀은 물론 프랑스 축구계 전체가 발칵 뒤집히리라는 전망이다. 80년대에 이미 비슷한 추문을 겪었던 이탈리아의 경우, 뇌물을 준 팀은 2부 리그로 강등하고 팀의 구단주는 축구협회에서 영원히 제명되었으며 문제를 일으킨 선수들은 3년간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었다.

미테랑, 공개적으로 타피 두둔
 그렇다면 프로축구계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는 이번 사건에 이처럼 매스컴의 관심이 대대적으로 집중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마르세유 축구팀의 구단주인 베르나르 타피라는 인물의 지명도와 무관하지 않다. 마르세유팀의 매수 혐의가 발표되었을 때 프랑스의 한 유력 주간지는 ‘또 타피 이야기인가?’라고 시작하는 사설을 실었다 그 만큼 타피는 프랑스 언론에 자주 구설수가 오르는 인물이다.

 빈민가에서 태어난 타피는 맨주먹으로 출발해 도산 위기에 놓인 기업을 헐값에 인수해서 다시 팔아넘기는 방법으로 사업 기반을 다진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같은 축재 방식이 세간의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기업을 사기만하면 단시일에 흑자 경영으로 바꿔놓는‘원더 보이’ 타피의 놀라운 이재 능력과 모험심은 프랑스 젊은이들을 매혹시티기에 충분하다.

 그와 마르세유 축구팀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85년. 타피는 당시 프랑스 축구클럽 18위, 만성 적자로 허덕이는 마르세유 팀을 인수한 뒤 거액을 들려 우수한 선수들을 대량 확보해 프랑스 선수권은 물론 유럽선수권까지 연달아 따냈다. 마르세유팀의 경기가 있으면 수입이 30% 이상 는다는 새로운 전통도 세워졌다.

 마르세유팀이 상승세를 타면서부터 타피는 서서히 정계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프랑스의 여느 도시에 비해 이민노동자들의 비율 및 실업률이 월등히 높은 마르세유에서 축구가 주민들의 거의 유일한 도피처임을 감안하면, 마르세유팀의 승전 소식이 들릴 때마다 구단주 타피의 발언권이 거세지는 것은 당연하다. 높은 인기 덕분에 타피는 92년 사회당의 베레고부아 내각에서 도시문제 장관에 임명됐다. 사회당으로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상징이다시피 한 인물을 기용한 모험적인 인사 조처였다. 그러나 사업상의 분쟁 때문에 소송에 휘말리게 되자 장관직에서 사퇴하고 제소자와 타협을 본 후 장관직에 복귀함으로써 또 한번 물의를 빚었다.

 이처럼 타피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시끌벅적한 가운데 지난 7월14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타피는 훌륭한 장관이었으며 마르세유팀의 탁월한 축구팀”이라고 치켜세웠다. 기름 위에 성냥불을 그어댔다고 할까. 여하튼 마르세유 축구팀 추문은 이제 스포츠와 돈이라는 당초의 2중 구조에 권력이라는 제3의 요소가 추가되어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