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山마다 박힌 ‘저주의 못’ 뽑자
  • 충북 보은·허광준 기자 ()
  • 승인 1993.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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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풍수지리 좇아 70여 곳에 ‘쇠막대’…“민족 정기 말살용” 제거 움직임

국립공원 속리산의 문장대(1,033m)는 산세가 웅장해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다. 신비스러운 바위로 이루어진 문장대에 올라서면 이 일대의 크고작은 산이 일망무제로 시원하게 펼쳐진다. 지나가던 구름이 걸리기라도 하면 힘들여 올라와 땀을 들이던 등산객들은 신령스러운 느낌마저 갖게 된다. 바로 이곳 문장대 바위 군데군데에 일제 때 일본인들이 박은 것으로 보이는 쇠못이 발견돼 최근 이를 뽑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문장대 정상에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든 사다리를 옆으로 비켜 돌면 비스듬한 벼랑이 나타난다. 이 웅장한 바위 낭떠러지에 지름 1.5㎝쯤 되는 쇠못 4개가 1~1.5m 간격으로 나란히 박혀 있다.

 이 쇠못을 뽑으려는 계획을 추진하는 ‘우리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들에 따르면, 문장대 바위에는 이것말고도 4개가 더 박혀 있다고 한다. 바위를 타고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험한 곳으로 오르면 바위 위에 감로천이라는 신비한 샘이 있는데, 이곳 주변에 4개가 더 박혀 있다는 것이다.

 이 모임 회원들은 7월말 시험 삼아 쇠못 하나를 뽑아보았다. 20㎝가량 되는 쇠못은 서울 북한산에서 뽑은 것과 같은 형태와 재질의 철근 막대였다. 북한산에서 뽑은 쇠못 15개는 일제 때 일본인이 박은 것으로 확인돼 독립기념관 제3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측량·등산용 지지대일 가능성
 일제가 한민족의 기상을 꺾고 민족 정기를 누르기 위해 풍수지리설에 따라 한반도 곳곳 명소마다 갖가지 조처를 해 두었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져 왔다. 지맥이 좋은 곳은 허리를 잘라 도로나 철도를 내고, 명산 꼭대기에는 쇠말뚝이나 쇠못을 박았다는 내용이었다. 87년에 조사한 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70여 곳에 이같은 흔적이 남아 있거나 주민들의 증언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닌데 ‘전설’이 되어버린 것은 이를 입증할 만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이것을 증명하는 일은 두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는 쇠못 등을 파내 그 재질을 조사함으로써 실증적으로 증명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마을 노인들의 증언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를 생각하는 모임’이 문장대에 박힌 쇠못을 일본인이 박았다고 의심한 것도 마을 노인의 증언을 통해서였다. 남은 문제는 이 쇠못이 구전처럼 한민족의 기상을 꺾기 위해 몰래 박아둔 ‘저주의 못’인지, 아니면 측량이나 등산을 위해 지지대를 박은 흔적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속리산 문장대의 쇠못은 그 위치로 보아 측량용으로 보기 어려운 자리에 있다. 등반용으로서도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회원들의 주장이다. 이 모임의 구운서 회장은 “결정적인 자료가 없어 80% 정도 신뢰하며 신중하게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속리산 기슭 보은·상주 땅에는 문장대에 세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하며, 마을 주민들은 문장대 꼭대기의 감로천은 그 물이 한강 금강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신령스런 곳이라고 믿는다. 풍수지리상 문장대는 九宮龍頭穴의 요처라는 주장도 있다.

 신용하 교수(서울대·사회학)는 “일본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전통적 사고를 갖고 있으므로 우리 땅 요소요소에 민족 정기를 잘라버리기 위해 이같은 짓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한다. 현재 속리산을 끼고 있는 충북 보은군이나 경북 상주군의 郡史에는 이같은 사실이 나와 있지 않다.

 민족 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전문에서 쇠못을 뽑는 활동을 하는 ‘우리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들은, 문장대의 쇠못이 일제가 악의적인 의도로 박은 것이라는 점이 제대로 밝혀지면, 산 정상에서 ‘민족혼 대제’를 지내고 남은 못을 모두 뽑아버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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