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에도 파벌 있다
  • 모스크바·김종일 통신원 ()
  • 승인 1993.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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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 서유럽파에서 동네파까지 바캉스 천차만별

일을 우선하는 한국인에 비해 러시아 사람들은 휴가 우선주의다. 러시아어 연수차 모스크바에 온 한 캐나다 여학생은, 러시아 사람들은 휴가를 생산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그는 “러시아 사람들은 어디서 돈이 생겨 그렇게 잘 여행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인 유학생 정석배씨는 “간단한 키오스크(노점)를 벌리면 연 20만달러는 손쉽게 버는데 그 돈을 다 어디에 쓰겠는가. 노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한 것이 러시아 사람들이다”라고 촌평했다.

실속 해외여행파는 아시아로
 러시아 사람들의 휴가는 일반적으로 해외파와 국내파로 갈라진다. 해외파는 다시 서유럽파·아시아파·미주파·아프리카파로, 국내파는 흑해파·다차파·인근 동네파로 나뉜다.

 서유럽파는 주로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 파트너들이 상업적 차원에서 초청해 그곳으로 여행하는 러시아인을 말한다. 이 경우 서방측 파트너들은 보통 숙박·교통 등 체제비 일체를 지불한다고 한다.

 아시아파들은 주로 값싼 휴가를 즐기기 위해 스리랑카·태국·베트남·중국 등을 자비로 여행한다. 이들은 비행기를 전세내어 현지에 도착하면 짧게는 1주일, 길게는 3주일동안 바다와 산에서 휴가를 즐긴다. 러시아 국영 관광회사인 인투어리스트의 한 관계자는 한국행이 많지 않다고 지적하자 “대전 엑스포 입장료만으로도 스리랑카 1주일 체제비가 되기 때문에 한국에 가는 사람이 드물다”라고 말한다.

 인투어리스트사 관계자에 따르면, 미주파는 약 3주일 가량 걸려 받는 비자를 일단 얻기만 하면 휴가후 아예 현지에 눌러앉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미주행을 택하는 사람 대부분은 전직 고위 공산당 간부들이다. 이 중 몇사람은 마약을 가지고 나가려다 적발되기도 하며 순수하게 휴가를 위해 떠나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한다.

 흔히 문명권 밖의 나라라고 인식돼온 아프리카로 떠나는 사람들은 가족을 만나러 가는 게 주목적이라고 한다. 나이지리아에 딸이 있다는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브나씨(59·교사)는 자기말고도 20여 명이 같이 떠난다고 말했다.

 나타샤 콘스탄치브나씨(49·주부)는 “생각했던 것만큼 아프리카가 개방된 것은 아니나 러시아보다 훨씬 살기 좋다. 사위가 원하면 남아서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한편 경화가 없어 국내 휴양지를 찾아 떠나는 국내파들은 주로 흑해 연안을 찾는다. 흑해 쪽으로 떠나는 쿠르스키 철도 역은 연일 인산인해를 이룬다. 여행 경비는 1인당 대개 50달러쯤으로 계산하고 있으나 현지의 바가지 요금 때문에 걱정이라고 아나톨리 보리스비치씨는 말한다.

다차파, 주말농장에서 농사겸 휴식
 또한 다차(주말농장 겸 별장)파 가운데 농사도 지을겸 아예 가족이 모스크바를 떠나 다차에서 상주하는 사람도 있다. 더욱이 올해는 이상 기후 때문에 흉작이 예상되어 다차에서 농사겸 여름 휴가를 보내려는 사람이 많다.

 인근 동네파들은 돈도 다차도 없는 영세민들로, 주말에 모스크바를 가로지르는 볼가강에서 수영을 한다는 게 올가이 바노브나양(24·학생)의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하외이 해변에서 휴가를 즐겨야만 만사가 형통하리라는 신문 광고는 현 러시아 경제 사정과는 동떨어진 얘기다. 한국계 여행 업체 직원은 금년 여름 휴가를 즐기러 해외로 떠난 러시아 관광객 수를 3백만명쯤으로 추산한다.

 옴스크에서 상권을 쥐고 있는 이그리 드미트리비치씨는 독일로 떠나기 직전에 이런 말을 들려 준다. “놀면서 먹고 즐기던 사회주의 관습은 러시아를 좀먹는 원인이다. 그런 생각은 바뀌지 않고 국가에 대하여 무한적으로 사회보장을 요구하는 현실이 외국인들에게는 이상하게 비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러시아가 점점 자본주의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레닌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모스크바·金鍾一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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