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紙 비켜가는 ‘사이비 언론 정화’
  • 광주·김상현 기자 ()
  • 승인 1993.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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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 구속 등 지방 신문 25% ‘수난’ 일부선 “언론 길들이기 위한 표적 사정”의혹

 언론 길들이기인가, 아니면 엄정한 법 집행인가. 광주 <무등일보> 朴誠燮 사장(45)을 전격 구속한 검찰의 조처를 놓고 아직도 논란이 일고 있다. 광주지검 특수부(姜忠植 부장검사)는 지난 7월28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및 업무 방해, 건축법 위반 혐의로 박사장을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씨는 부친 朴哲雄씨가 조선대의 운영권을 잃고 서울고등법원에 ‘조선대 임원취임승인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낸 것과 관련해 전 조선대 이사 정진갑씨에게 협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그 보복으로 <무등일보>를 통해 정씨가 학장으로 있는 동신전문대에 대한 비방 기사를 6차례에 걸쳐 보도했다는 것이다.

 박성섭씨 구속에 대해 한국기자협회 <무등일보> 분회는 7월31일 성명서를 통해 ‘피해자 고소를 우선으로 적용하고 당사자의 화해를 유도하는 것이 관례인 명예훼손죄를 적용해 대표이사를 구속한 것은 현정부의 언론탄압’이라고 반박했다. 또 분회는 ‘<무등일보>를 마치 부도덕한 집단인 양 매도하는 것은 정부가 자치단체장 선거와 함께 지방자치시대를 앞두고 지역 언론을 길들이기 위한 예정된 수순이라는 강한 의혹을 떨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광주지검 특수부 曺碩鉉 검사는 “명예훼손죄는 친고죄가 아니어서 고소 고발 없이 인지수사만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문제의 기사를 읽어보면 누구라도 그것이 악의적인 비방 기사임을 인정할 것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하지만 검찰의 조처에 대한 언론계의 시각은 다르다. 광주대학 崔鍾洙 교수(62·신문학)는 “지방 언론에 대한 정부의 사정 여파 때문이겠지만 그동안의 관행으로 볼 때 명예훼손 혐의로 언론사 사주를 구속한 것은 퍽 이례적인 일”이라며 의문을 나타냈다.

 동신대 관련 기사를 읽어보았다는 광주 지역의 한 일간지 기자도 “동신대의 교원확보율이 가장 낮다든가 부동산 투기 혐의가 있다고 한 <무등일보> 보도는,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왜곡된 것은 아니다. 그 기사와 익명의 투서만으로 검찰이 사주를 구속한 것은 다소 억지스럽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적용한 업무방해죄 역시 별반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검찰은 <무등일보> 보도로 동신전문대 학장이 사표를 내는 등(뒤에 반려됐다) ‘막대한’피해를 입었다는 논리를 펴고 있으나, 정작 동신대측은 ‘법에 따라 처벌해달라’고만 했을 뿐 고소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정 이후 경영 압박 더 커져
 검찰의 강경함 못지 않게 주목되는 것은 <무등일보>측의 소극적인 대응이다. 이같은 태도는 ‘신문사측도 불법 행위를 인정하기 때문’이라는 검찰의 설명보다, 박사장이 박철웅 조선대 전 이사장의 차남이라는 점과 그로 인해 창간 당시 대대적인 불매운동에 시달렸다는 점 등 박씨 일가에 대한 광주 지역 주민의 미묘한 정서를 감안한 데서 나온 것이라는 의견이 더욱 설득력 있어 보인다. 崔炳涓 편집국장은 “신문사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사법 당국의 엄정한 수사를 기대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무등일보> 사장이 구속된 이튿날에는 <경기도민일보>의 실질적 사주이자 전 편집국장인 洪伯杓씨(53)가 기자를 채용하면서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로써 정부가 ‘사이비 언론 근절대책’을 발표한 4월12일부터 현재까지 검찰에 구속된 지방 언론 사주는 14명에 이른다(<대구일보> 박권흠 사장은 석방됨·표 참조). 공보처에 등록된 55개 지방 일간 신문사의 4분의 1이 ‘수난’을 당한 셈이다.

 공보처는 시·도와 합동으로 지난 5월9일부터 25일까지 17일간 지방 일간 신문사에 대해 실태 조사를 벌였다. 이번 실태 조사에서, 정간되거나 오랫동안 신문 발행을 중단한 신문사를 제외한 44개 사의 평균 부채비율(총부채/자본)은 1천4백95%에 달했다. 국내 제조업체의 평균 부채비율이 3백19.7%인 것과 견주면 지방 일간 신문사들의 재무구조가 얼마나 불안정한가를 알 수 있다. 이들 신문사 가운데 흑자를 낸 곳은 6개 사에 불과했고, 누적 적자로 자본을 완전히 잠식당한 신문사만도 21개 사에 달했다.

 또한 매일 발행하는 지방 일간지 총 3백90만여 부 가운데 28%에 해당하는 1백10만여부가 무가지였으며, 전량을 무가로 발행하는 곳도 있었다. 조사 대상 신문사의 절반 가까운 21개 사의 유가 부수가 5만부 이하였고, 그중에는 하루 6천5백부밖에 발간하지 않는 신문사도 있었다.

 한 언론 관계자는 “시장경제 기능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사이비 행위를 일삼은 일부 부실 지방 언론이 정부의 철퇴를 자초한 면도 있다. 아직도 기자에게 최저 생계비 이하의 보수를 주는 곳이 있다. 이는 언론사가 기자에게 사이비 행위를 하라고 부추기는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평가했다.

 지방 언론에 대한 새 정부의 사정 철퇴는 일단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공보처는 정부의 사이비 언론 실태조사 이후 ‘사이비 언론으로부터 괴로움을 받아 왔던 현지 주민이나 상공인, 관공서 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으며, 정부의 이번 대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기를 강력히 희망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대책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수원시청의 한 직원은 “공무원들에 대해 고압적이던 기자들의 태도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그같은 변화가 아직도 실감 나지 않을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광주의 한 은행원은 “기자들의 특권의식이 많이 줄어든 것 같긴 하지만 얼마나 오래 갈지는 두고볼 일이다”라고 다소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상공인과 공무원의 반응이 긍정적인 데 견주어, 정부가 유독 지방 언론에만 가혹한 태도를 보이는 데 대한 일선 기자들의 불만은 적지 않다. 경기도청에 출입하는 한 지방 일간지 기자는 “자본이 열악하면 사이비 언론이고 중앙 일간지면 정론지라는 이분법에 동의할 수 없다. 중앙 일간지 가운데는 매년 몇백억씩 적자를 내는 부실 언론이 없느냐”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정부가 표적 사정을 벌인다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자정 노력·지원 함께 해야”
 경인 지역에서 발행되는 <ㄱ일보>의 한 기자는 “정부가 사이비 언론 실태 조사를 벌인 이후로 광고 물량이 크게 줄어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 사정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말을 사주측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광고와 판매 두 부문에서 중앙 일간지들과 직접적인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경인 지역 일간지들보다 정도는 덜하지만 다른 지방 일간지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진다. 충북 지역에서 발행되는 한 일간지의 논설위원은 “충북은 본래 시장이 좁아 흑자 경영이 어렵다. 정부의 사정 바람이 그 시장을 더욱 좁혀 놓았다”라고 말했다.

 광고 수주량 감소, 매출액 감소 등 지방 언론들이 겪는 어려움은 언론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한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의 주장처럼 지방 언론이 겪는 경영 압박이 정부가 표적 사정을 한 결과이고, 그같은 표적 사정이 ‘언론 길들이기’의 한 방편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무등일보>의 한 기자는 “정부가 언론을 견제하기 위해 중앙 일간지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고리’인 지방 언론을 선택한 듯한 혐의가 짙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많은 지방 언론 기자들이 공유한 것이기도 하다.

 기자협회의 한 관계자는 “언론의 제자리 찾기도 좋지만 편집국을 압수 수색하는 등 강제력을 동원하는 정부의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자칫 새로운 언론 통제책으로 비판받을 수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기 전에 지방 일간 신문의 4분의 1이 사이비 언론으로 꼽힐 만큼 열악한 언론 풍토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수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지방지 기자들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길밖에 없다. 정부는 가혹한 탄압이나 사정보다 지원을 통해 지방 언론들이 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데 더 주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지방 언론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인 사정 작업이 지방 신문들의 무더기 폐간 사태를 몰고 올 가능성도 있다고 걱정한다. 자칫 건전한 언론을 만들어보려는 사주들의 투자의욕까지 꺾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사이비언론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李源宗 공보처 차관은 “언론의 자정 분위기가 정착하고 부실·불법 언론사가 근절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지방 언론을 감시하고 대책을 세워나가겠다”라고 밝혔다. 건전한 언론 풍토를 세워나가는 데는 지방 언론뿐 아니라 중앙 언론에도 감시의 눈길을 던지는 정부의 균형감각과, 정부의 강제력이 자칫 언론 탄합의 또 다른 방편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 언론의 견제가 필수적일 것이다. 언론의 치열한 자정 노력이 병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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