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民엔 팽팽 官엔 느슨
  • 박상기 사회ㆍ문화부 차장 ()
  • 승인 1991.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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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조사없는 지정으로 주거주민 20년째 불이익…공공기관은 ‘합법적으로’ 잠식

그린벨트 구획선으로 한 동네가 둘로 갈라져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개발’과 ‘미개발’의 두 얼굴을 가진 곳이 있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 266번지와 225번지에 해당하는 ‘새말’마을.

이곳은 지난 69~71년 사이에 철거민 이주단지로 조성된 마을인데, 전체 5백여세대중 266번지에 속하는 40세대가 그린벨트에 묶여 있다. 225번지는 2~3층짜리 양옥이 즐비한 전형적인 중산층 주택단지의 면모를 띠고 있으나 이에 맞닿아 있는 266번지는 허름한 단층집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어 기묘한 대조를 이룬다. 포장이 되지 않은 좁은 도로, 낡은 대문과 담장 등으로 을씨년스런 인상을 주는 166번지는 그린벨트구역으로 지정된 이래 20년 동안 누더기옷을 걸치고 있는 격이다. 266의 8호에 사는 朴文圭(59)씨는 “멀쩡한 주거지를 그린벨트로 묶어놓는 바람에 주민들이 겪는 불편이 한두가지가 아니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266번지에 거주하는 주민 1백50여명은 한결같이 “불합리하게 그어진 그린벨트 경계선을 재조정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제땅을 가지고 살면서도 법에 묶여 60년대식 낙후된 주거환경 속에서 살 수밖에 없고, 인근 땅값ㆍ집값이 엄청나게 뛰는데도 앉아서 불이익을 당하는 ‘불평등’을 더 이상 감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담 하나 두고 한 마을이 두 동강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는 지난 71년 도시계획법에 근거하여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고 자연환경을 보전하여 도시민의 건전한 생활환경을 확보하기 위하여” 서울외곽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처음 지정되었다. 이후 77년까지 단계적으로 8차례에 걸쳐 추가지정 되어 남한면적의 5.5%인 5천3백97.1㎢(16억3천3백만평)에 해당하는 면적이 그린벨트지역으로 묶여 있다. 현재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은 1백17만명(총인구의 2.7%)에 이르고 있으며 그 안에 들어 있는 건물은 주택 36만채를 포함하여 51만9천동이다.

그린벨트로 지정되면 그 안에서는 토지의 재산권 행사나 이용이 엄격히 제한된다. 즉 허가나 신고없이 건축물을 짓거나 工作物을 설치하거나 토지의 형질변경 등의 행위를 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으며, 위반행위가 산림법 건축법 등 다른 법률에도 저촉되면 형량이 가중된다. 그린벨트는 경계선을 따라 1백m마다 흰색 標石이 박혀 있고, 10㎞마다 감시초소가 설치되어 있어 감시원 2명이 매일 순찰을 돌고 있다. 또 정부는 매년 1회 이상 항공사진을 촬영해 그린벨트내의 불법건물을 엄밀히 체크한다.

그러므로 그린벨트에 자기 땅이 묶인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재산권 행사에 결정적 타격을 당할 수밖에 업었다. 만일 朴正熙 대통령의 철권통치 기간이 아니었다면 주민의 반발에 부딪혀 그린벨트제도는 시행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녹지대를 보호하여 대도시에 산소를 공급하는 ‘생명벨트’로서 그린벨트가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린벨트는 환경오염을 방지하는 기능 못지 않게 대도시의 무차별한 평면적 확산을 막아주는 방패구실도 톡톡히 해왔다. 수서지구나 신도시 개발에서 보듯이 그린벨트에 묶이지 않은 수도권의 녹지대는 손쉽게 허물어져 ‘도시팽창의 먹이’로 전용 되어왔기 때문이다.

대도시에서 발생하는 아질산가스ㆍ이산화황ㆍ탄산가스 등의 오염물질을 정화하려면 도시면적의 3배에 달하는 숲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의 녹지대는 40% 정도밖에 담당하지 못할 만큼 빈약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현재는 단한 그루의 나무나 한 평의 녹지라도 온전히 보존해야만 1천만 서울시민이 그나마 숨을 쉬고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린벨트를 구성하고 있는 지목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우리나라의 그린벨트 면적 중 나무가 우거져 있는 임야는 절반을 약간 상회하는 57.4%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농경지(28.2%), 기타 잡종지(9%) 등이고 주민 거주지도 5.4%에 달하고 있다. 이탓으로 그린벨트에 포함된 집단주거지역의 주민들은 “녹색(Green)이 아닌 주거지마저 그린벨트로 지정돼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린벨트를 지정할 때 사전에 충분한 현지조사를 하지 않았던 탓이다. 박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갑작스럽게 경계선이 그어졌기 때문에 기존마을이 포함되기도 했고 어떤 마을은 그린벨트선으로 두 동강 나기도 했다.

서울 성북구 정릉4동의 정릉주공아파트의 경우는 아파트의 일부 동이 그린벨트안에 포함된 난센스가 빚어져 있다. 그린벨트 제도가 도입되기 전인 68년에 완공된 이 아파트단지에는 3층아파트 8개동이 들어서 있는데, 그중 2개동이 그린벨트선 안으로 들어가있다. 아파트 주민들은 “20년이 지난 노후 건물이라 곧 재건축이 될텐데, 그린벨트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불안하다”며 행정당국의 조처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그린벨트내에 거주하는 전국의 주민들은 더 이상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재산권 행사의 제한과 생활상의 불편을 주는 그린벨트제도를 시정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89년8월 결성된 ‘전국그린벨트주민회’가 이들의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대전시 유성구 대정동 金炳轍(54ㆍ농업)씨는 “그린벨트제도를 규정한 현행 도시계획법 제21조는 사유재산권을 제한할 경우 用사용과 마찬가지로 정당한 보상을 하도록 한 헌법 제23조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그린벨트에 대한 위헌심판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등 현재 6건의 위헌소송이 헌법재판소에 계류중이기도 하다.

또 그린벨트 보존을 주장하는 환경보호론자가 일부 격앙된 주민들에 의해 집단 항의를 받는 일도 빚어졌다. 지난해 7월 대한녹색당 창당준비위원장 安淳昌(52)씨가 대구에서 관광버스로 상경한 그린벨트 거주민들에게 뺨을 맞는 등 폭행을 당했다며, 공해추방운동연합(회장ㆍ최열)과 몇몇 환경관련 학자들도 항의를 받았다.

그린벨트의 주무부서인 건설부는 지난해 10월말 그린벨트 거주민들의 민생해결을 앞세워 ‘그린벨트 규제완화 조치’를 발표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민원해소는 겉치레 명분일 뿐 정부 부처간에 官願을 해결하기 위한 조처”라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해당 주민들의 간절한 희망이었던 주택증축은 30평에서 35평으로 5평을 늘려주는 데 그친 반면 시ㆍ군ㆍ구의 공공청사 신축(내무부), 구치소 시설 신축(법무부), 보훈병원 신축(보훈처), 체육시설 확대(체육부), 시내버스 차고 설치(교통부), 토석채취 허용(경기도) 등 그동안 각 부처가 요구해온 큼직큼직한 사항은 거의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결국 정부가 그린벨트내의 건축행위를 주민쪽에는 엄격히 제한하고 공공기관에는 느슨하게 풀어주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취했다는 비난의 여론이 들끓었다.

그렇지 않아도 5공 이후 신축된 대형 공공건축물 중에는 그린벨트땅을 잠식한 것들이 적지 않았다.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자리잡은 한국교육개발원은 전체 부지의 3분의 2가 그린벨트에 속해 있다. 그린벨트를 훼손하면서까지 건물면적의 42배나 되는 부지를 깔고 있을 필요성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도봉구 수유동 북한산 국립공원내에 완공된 국토통일원 산하 통일연수원은 전체 부지 1만6천여평 중 절반 가량인 7천7백평이 그린벨트이다. 이 연수원은 5공시절 국토통일원장관이던 許文道씨가 이미 확정된 국립공원 계획을 변경하면서까지 全斗煥 전대통령의 재가를 받아내 착공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노원구 공릉동의 한국전력 연수원, 경기도 시화공단, 과천의 남서울대공원과 승마경기장, 미사리 조정경기장 등 굵직한 공공건물이나 시설들이 그린벨트의 속살을 파고든 것들이다. 더구나 강원도 춘성군의 춘천골프장, 경남 창원의 창원골프장이 그린벨트지역에 허가된 것은 정부의 그린벨트 보존의지를 의심케 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이렇듯 필요할 때마다 도시계획법에 딸린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합법적으로’ 그린벨트를 잠식한 것이다. 게다가 지난 10월30일의 완화조치로 공공기관의 ‘그린벨트 삼키기’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공공기관 ‘그린벨트 삼키기’ 더 심해질 듯
그러면 민생을 크게 배려했다는 정부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그린벨트 거주민들이 10월말의 완화조치에 시큰둥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정부는 30평까지만 가능했던 증축면적을 5평 더 늘려주며 “방1칸(3평)과 부엌1개(2평)가 들어설 수 있는 면적” 이라고 설명했다. 결혼한 자녀가 한집에서 부모를 모시고 살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린벨트 동네마다 입지조건이 다르고 생활형편도 천차만별인 탓으로 실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강동구 하일동의 중부고속도로변에 있는 마을은 황량한 벌판에 게딱지 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67년 용산구 서부이촌동의 철거민이 이주해온 마을로 당시 불하받은 6평짜리 집들이 1천5백가구나 된다. 정부의 배려대로 5평을 더 증축하고 싶어도 이웃집을 부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지역이다. 만일 이곳이 그린벨트가 아니라면 마을 부지 3만2천평에 작은 평수의 서민아파트를 짓는 주택재개발 사업을 벌이기에 좋은 곳이다.

마을주민 鄭成?(58)씨는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싶어도 그린벨트법에 묶여 있어 방법이 없다. 장마철에 여러번 침수되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들인데도 손을 못대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그린벨트내 마을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서 그에 알맞은 완화책을 강구해주지 않으면 이 마을과 같은 곳은 언제까지나 변두리의 슬럼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린벨트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법제상 가장 강력한 토지이용 규제 수단으로 자리잡혀 있다. 특히 민간부문의 건축행위는 서슬 푸르게 통제돼왔으므로 거주민들은 지난 20년 동안 官에 눌려 벙어리 냉가슴을 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린벨트 주민회장 金正吉(59)씨는 “우리도 그린벨트, 즉 녹지대가 잘 보존되기를 바란다. 다만 이 제도의 강압적인 시행으로 억울하게 피해를 보고 있는 주민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또 비합리적으로 그어진 그린벨트를 정부가 재조정해서 실질적인 주거개선이 되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측은 아직까지 이들의 요구에 응할 태세가 아니다. 그린벨트는 재산권의 본질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 ‘현상을 현저히 바꾸는 행위만을 제한한 것’이므로 보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시의 허파’인 그린벨트가 철저히 보전되어야 한다는 데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공공기관이건 민간이건 환경보전의 마지막 보루인 그린벨트를 침해할 수 없다는 원칙만은 분명하게 지켜져야 한다. 이와 함께 사회적 형평의 차원에서 20년 묵은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는 거주민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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