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 民 귀담아 들어야”
  • 박상기 사회ㆍ문화부차장 ()
  • 승인 1991.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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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오찬회서 원로들 盧대통령에게 촉구

위기 해소의 지혜를 얻기 위해 盧泰愚 대통령이 여론수렴의 귀를 열었다. 지난 26일 노대통령은 광주의 洪南淳 변호사, 李兌榮 가정법률상담소장, 金俊燁 전 고려대 총장, 崔錫 전 MBC 회장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들며 혼미를 겁하고 있는 시국 전반에 관해 이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원로들은 국회의원 뇌물외유사건, 水西 특혜분양사건 등으로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비등하고 있음을 강도 높게 전달하고 정치ㆍ사회부문의 개혁에 대통령이 앞장서줄 것을 촉구했다.

수서사건으로 드러난 정치부패는 돌출성의 1회적 사건이 아님을 강조한 이태영 소장은 “노대통령은 옛 풍토에 물든 정치인 출신이 아닌 만큼, 구국의 결단을 내리는 심경으로 돈을 안 쓰는 정치풍토가 이뤄질 수 있도록 과감한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고 충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석채 전 회장은 “수서사건은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이 엄청나게 높아진 국민수준과 민주의식을 뒤따라가지 못해 발생한 것”으로 진단하고 “정치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 국회의원을 영국에서처럼 ‘명예직’으로 만들자“는 의견을 개진했다.

김준엽 전 총장은 ‘대학의 위기’를 지적했다. “우리의 대학이 미국ㆍ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현격히 뒤떨어진 수준”임을 예로 들면서 “대학교육의 질을 높여 여기서 배출된 인물들이 나라의 장래를 떠맡을 수 있도록 각별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광주에서 상경한 홍남순 변호사는 광주문제와 관련하여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내란죄 등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폭동으로 규정됐던 광주사태를 ‘민주화운동’으로 명예회복시키고 보상법을 만들도록 한 사람이 노대통령이었다”고 상기시킨 홍변호사는 “대통령의 재임기간중에 광주 관련 피해자들의 ‘유죄’부문을 벗겨서 실질적인 명예회복을 이뤄줄 것”을 요구했다.

그 방안으로 홍변호사는 현행 형사소송법의 내용을 개정해 재심의 범위를 확대, 판결 자체를 무효화하거나 특례법을 제정해 구제하는 길을 제시했다.

또 영ㆍ호남의 지역감정 문제가 거론되자 “지역간의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빈부격차와 인재 등용의 편재현상이 지역감정을 심화시켜온 것”이라고 지적한 홍변호사는 그 해소책으로 정부가 “낙후된 지역에 집중투자해서 경제성장의 혜택과 부를 고르게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제시했다. 아울러 군ㆍ경제ㆍ행정부ㆍ국영기업체 등 사회 각 분야의 요직에 출신지역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면 지역적 소외감이 불식될 것이므로 “먼저 청와대에서부터 호남인사 등용의 폭을 넓혀달라”고 건의했다.

‘원로와의 오찬’은 상당히 진지한 분위기에서 약2시간20분 동안 계속되어다. 이 자리에 초청된 한 인사가 “말을 아끼거나 윤색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위기상황을 심도있게 전달했다”고 밝혔듯이, 경직되기 쉬운 공식채널보다 때로는 비공식적 채널이 권력 상층부에 여론의 실상을 더 유연하게 전해주는 통로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여ㆍ야 정치권과 행정부 등이 부패의혹을 받고 있는 ‘체제관리의 혼돈기’에서 재야원로의 ‘뼈있는 충고’는 상당한 약효를 발휘할 수도 있다. 노대통령이 그의 ‘큰귀’로 수렴한 이들의 목소리를 얼마나 ‘국면타개책’에 반영할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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