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어깨동무 새로 시작
  • 본ㆍ김호균 통신원 ()
  • 승인 1991.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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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조약기구 해체…협력관계 재정립 노력

바르샤바조약기구에 속해 있는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소련의 외무ㆍ국방장관들은 지난 25일 부다페스트에서 만나 군사동맹체로서의 바르샤바조약기구를 4월1일자로 해체하고 당분간 이 기구를 정치협의기구로서만 존속시키기로 공식 합의했다. 에첸스키 헝가리 외무장관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정치협의기구도 늦어도 내년 봄까지는 해체될 것이다. 이 시한은 새로운 유럽집단안보체제에 관해 협의할 유럽안보협력회의 후속회의에 맞추어 정해진 것이다.

바르샤바조약기구 해체에 관한 이러한 합의는 고르바초프의 제안에 따른 것으로 사실 사후 승인절차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55년 서독이 나토에 가입하자 그 대응책으로 창설된 이 기구는 나토에 대응하는 강력한 군사동맹체의 역할을 해왔으나 동유럽과 소련의 변혁이 잇따른 89년말부터 더 이상 군사동맹체로서의 실질적 기능을 할 수 없었고 통합사령부도 해체된 상태였다.

이번의 공식적인 해체선언이 있기까지 회원국 사이의 관계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소련은 이 기구의 군사적 기능을 강화하고자 했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도 소련과 같은 입장이었다. 그러나 다른 회원국은 경제난국 해소에 서방의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소련으로부터 멀어지려 했다.

국경문제가 걸려 그동안 중립자세를 취해왔던 폴란드는 최근 독일과 국경조약을 맺으면서 소련군의 신속한 철군을 요구하고 있으며 바르샤바조약기구로부터의 일방적 탈퇴도 고려한 바 있다. 폴란드는 또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완전 해체를 요구하는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헝가리는 이미 오래 전에 통합사령부에 파견했던 대표를 소환했고 소위 ‘전방 방위 전략’으로 이행하면서 군대를 전국 사방에 분산 배치하고 있다. 또한 헝가리는 통일독일로부터 동독인민군이 사용하던 무기를 사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독일 정부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 세 나라는 경제개혁에서뿐만 아니라 소련에 대해 공동전선을 펴는 데 있어서도 협력하고 있었다. 딘스트비어 체코슬로바키아 외무장관과 예첸스키 헝가리 외무장관은 2주일 전에 조인된 세 나라의 협력협정이 있기 때문에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해체가 동유럽의 군사적 균형에 공백상태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체코슬로바키아와 헝가리 정부는 나토와 제휴관계를 맺을 것도 검토하고 있었다. 또한 이 두 나라는 유럽공동체에 이르는 발판을 마련하고 독일을 견제한다는 공동의 이해를 바탕으로 유고슬라비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협력할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스쿠비제프스키 폴란드 외무장관은 군사조직 없는 정치조직이란 ‘빈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고 표현, 정치협의기구의 실효성에 의문을 보였다. 이에 반해 다른 나라들은 이 기구를 적어도 유럽 전체의 집단안보체제가 구성될 때까지는 ‘집단적 토론 메커니즘’으로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군사력의 상한선에 과난 빈 협상이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밖에 동유럽 국가 사이의 국경문제와 소수민족문제는 정치협의기구의 필요성을 높여주고 있다.

국경에 관한 한 소련 불가리아 체코는 현상유지를 원하는 데 반해 폴란드와 루마니아는 서부국경은 그대로 놔둔 채 소련과의 동부국경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루마니아의 역사학자들은 이미 차우세스쿠 시절부터 몰다비아공화국이 루마니아에 속한다고 주장해왔던 것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토가 가장 많이 줄어든 헝가리도 무력에 의한 국경변경을 금지하는 헬싱키협정에 마지못해 서명했다. 차우세스쿠는 집권 당시 루마니아에 사는 헝가리족을 탄압해 이로 인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호만 루마니아 총리가 헝가리를 방문함으로써 매듭풀기의 첫발이 디뎌졌으나 아직도 상황은 유동적이다.

소련과 동유럽 모든 나라들은 쌍무관계를 발전시킨다는 데에는 이해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특히 동유럽 국가들이 대부분 에너지와 천연자원을 소련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군사적 관계의 종식에도 불구하고 경제관계는 실질적인 상호이익에 기초해서 오히려 확대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소련이 주도하던 각종 우호협력협정이 근본적으로 개정돼야 할 것이다. 이점에서 헝가리와 소련 사이에는 이미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져 있어 앞으로 이 지역의 기존 협력관계는 많은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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