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표 한 장도 받아선 안된다”
  • 워싱턴ㆍ안재훈 객원편집위원 도쿄ㆍ채명석 통신원 ()
  • 승인 199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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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엔 ‘출입기자단’없어 … 일본 ‘기자클럽’은 정보ㆍ취재 독점이 목적

어떤 부처의 출입기자단이 집단으로 부패했다는 것은 언론사끼리의 경쟁을 포기하고 풀제와 같이 적당한 선에서 협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경우 사주와 경영진 및 편집국측은 좋은 기사로, 좋은 신문을 만들어 공개경쟁을 하기 때문에 출입기자단제도가 없다. 미국 기자들은 출입처로부터 대접을 받았다 해고당하는 등의 예는 몇십년 전 이야기라고 말한다. 기자의 금품수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출입기자증은 원칙적으로 기자 개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언론사에 주는 것이다. 가령 백악관에서 스포츠팀의 환영파티가 열리면 스포츠부 기자가 참석하며, 퍼스트 레이디의 패션파티가 열리면 문화부 패션담당기자가 취재한다. 물론 상주 파견기자가 있지만 고정적인 기자단 소속의 경직된 운영이 아니고 경우에 따라, 뉴스의 내용에 따라 외신부 국내부 경제부 등의 담당기자가 파견될 수 있는 것이다.

워싱턴 근교 몽고메리 카운티는 <워싱턴포스트> 수도권부로서는 중요한 뉴스가 많이 나오는 행정지역이다. 그중 록크빌이란 도시에는 카운티 행정부 건물과 시의회 건물에 각각 기자실이 있다. 기자실에는 책상이 7개 정도 있고 전화가 있다. 이시설은 기자가 본사에 기사를 송고하는데 편리하도록 설치한 것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책상을 사용할 수 있다. 책사을 사용한다고 시비를 거는 기자도 없다.

기자실은 송고ㆍ통신 위한 ‘방’일 뿐
기자실이 이렇게 운영되므로 특권의식 속이 기자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4년6개월동안 <워싱턴포스트>의 몽고메리 카운티 지국장을 지냔 클라우디아 레비는 기자실에 얼씬도 안했다 한다. 신문사가 그 근처 빌딩에 별도로 사무실을 가지고 있으므로 지방정부가 제공한 기자실을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저널리즘 교과서에서 기자의 윤리에 관련된 뇌물이란 단어는 이미 쓰이지 않는다. 뇌물수수는 사법 당국이 즉각 형사상 입건조처를 취하는 언론 이전의 문제이다. 윤리강령에서 문제가 되는 사례는 술 한병, 과일 바구니, 극장표 정도이다. 기자는 선물을 철저히 해겨, 거절해야 한다.

20여년 전 <더 세인트 피터스버그 타임스> 편집국장은 다음과 같은 지침을 내렸다. “규칙은 간단하다. 전직원은 예외없이 아무에게로부터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기자라는 직책 때문에 혹시 덕을 볼 수 있는 아무 짓도 안되고 아무 짓도 못하며 아무 것도 소유할 수 없다. 우리 것은 우리가 낸다. 못내면 안간다.” 이 사람은 영화표, 음악회표도 거부하라고 했으며 연회석 취재 때 식사하는 것조차 금지시켰다.

각 언론사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이같은 규정의 골자는 비슷하다. <워싱턴포스트>는 취재원으로부터 선물을 받을 수 없으며 공정한 보도에 조금이라도 저해되는 모든 일을 회피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개인의 도덕관에 따라 부패한 언론인은 어느 사회나 있을 것이다. 1985년 <월스트리트저널>의 포스터 와이난스 기자는 증권에 관해 쓴 자신의 칼럼 내용을 친구에게 누설했기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은 범법자가 되고 말았다.

미국 언론은 언론의 부패를 ‘정치적 매춘’이라고 표현한다. <워싱턴포스트>의 리차드 하우드씨는 언론의 불편부당한 객관성이란 언론인이 상식적인 윤리강령을 지킬 때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ㆍ영국 등에서는 언론이 취재원과 금품을 수수함으로써 크게 말썽이 나는 경우가 간혹있다. 단 이 경우는 기자가 뉴스를 찾기 위해 뇌물을 제공하는 ‘逆 수서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연예계의 뉴스, 주요 저명인사의 사생활 등 황색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슈퍼마켓 가십잡지들이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 잡지들은 자동차 제조업체와 늘 ‘동침’하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폭로했다. 새로 나온 자동차의 시운전이라는 핑계의 지방여행, 선물공세 향응 등이 관례였는데 ≪카 앤드 드라이버≫는 선물거부운동을 시작했다.

미국 언론사의 발전 역사를 귀감으로 한다면, 비리 기자는 공개적으로 사법처리하고 이와는 별도로 사주는 즉각 해당 기자를 해고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만 언론은 공신력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정보조작 위해 기자클럽 조직
한국 ‘기자실’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 ‘기자클럽’은 1백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1백여년 전,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국회가 개원한 해에 일본 기자클럽의 효시인 ‘공동신문기자구락부’가 생겼다. 신문기자가 자유롭게 국회에 출입해 의회정치를 감시한다는 명분에서였다. 그러나 ‘국민의 알 권리’를 주장하며 탄생한 이 기자클럽은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크게 변형돼왔다.

일본의 각 관청에까지 기자클럽이 조직된 것은 청ㆍ일본전쟁이 일어난 이후부터라고 한다. 군국화의 길을 걷던 일본 정부가 기자클럽을 이용해 정보를 조작하기 위해서였다.

기자클럽을 통해 전해지는 정부의 왜곡, 조작된 정보만을 보도했던 일본의 언론에게는 “대륙침략의 또 다른 첨병”이었다는 꼬리표가 붙어다니고 있다. 또 제2차세계대전 중 대본영의 앞잡이가 되어 엉터리 전황만을 보도한 일본 언론은 지금까지도 “전쟁협력자였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패전 직후 일본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언론도 기자클럽을 통한 취재활동을 반성하기 시작한다. 49년 일본신문협회는 “기자클럽은 각 공공기관에 배치된 기자들의 모임에 불과하며 상호친목을 위한 조직으로서 취재상의 문제에 일절 관여해서는 안된다”고 성명했다.

그러나 ‘특종’은 할 수 없지만 ‘기사누락’도 생길 수 없는 편리한 체제에 길들여져온 일본 언론은 아직도 그 체질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외국특파원들이 ‘기쿠(菊)의 커튼’이라고 부르는 기자클럽의 폐쇄성, 이로 인한 보도의 획일성 등이 큰 문제점을 제기되고 있다.

일본의 기자클럽은 현재5백여개. 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이 수상관저의 기자클럽이다. 여기에는 약 90개 언론사 소속기자 4백50여명이 가입하고 있으며 상주기자만 약2백여명에 달한다. 기자회견 때 질문권이 주어지지 않는 준회원도 1백20여명(약60개사)에 이른다.

기자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은 일본신분협회에 가입한 일간지와 방송사 담당기자로 엄격히 한정된다. 주간지 월간지 등의 기자는 정회원이 될 수 없으며 외국 특파원의 가입은 원칙적으로 봉쇄돼 있다.

기자클럽의 가장 큰 문제는 폐쇄성이다. 각 기자클럽의 출입문에는 반드시 “회원이 출입금지”라는 종이가 붙어 있으며, 회원 언론사 기자라 할지라도 그 클럽 소속이 아니면 관련자료 입수가 불가능하다.

한국의 경우와 다른 점은, 한국 ‘기자실’의 폐쇄성이 촌지의 독점적 분배에도 그 목적이 있는 반면 일본 ‘기자클럽’의 경우에는 주로 정보나 취재의 독점에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기자클럽을 통해 제공되는 ‘관제정보’에 매달리기 쉬운 일본 언론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높다. 발로 뛰는 취재보다는 기자클럽을 통한 안이한 취재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각 신문의 지면내용이 너무 획일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자의 질도 날로 저하되고 있다는 비난이  많다.

‘아사히신문’은 취재원과의 식사도 금지
일본 기자클럽이 운영방식은 한국 출입기자단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윤번제로 맡는 간사가 운영을 담당하며 각 회원사는 ‘흑판 협정’이라고 불리는 엠바고 협정을 준수해야 한다. 이 협정을 깨고 사전에 보도했을 경우에는 제명 등의 처벌을 받기 때문에 결속력이 강하며, 이것이 기자클럽의 폐쇄성을 조장하는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론 언론계에도 한국과 같은 촌지문화가 존재하고 있는가. 재작년 이른바 ‘사회당의 빠찡코 의혹사건’을 파헤친 ≪주간 文春≫은 <아사히신문> 기자 2,3명이 조총련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보도는 확증이 엇는 추측기사였다.

리쿠르트사건 때는 <닛게이신문> 사장과 <마이니치신문> 편집국장이 리쿠르트사로부터 받은 주식의 매각과 관련하여 사임하는 소동이 있었다. 유력 정치가는 그를 전담하는 이른바 ‘기자’가 해외출장이나 전근을 가게 되면 금일봉을 쥐어준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아사히신문>과 같은 권위있는 신문은 취재원과의 식사도 금할 정도로 ‘기자관리’가 철저하다. 3월2일자 <아사히신문>은 수서사건을 ‘한국판 리쿠르트사건으로 규정짓고 ’한국의 토지의혹 언론계로 비화‘라는 제목으로 비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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