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病 앓는 새 수도 베를린
  • 베를린ㆍ김호균 통신원 ()
  • 승인 199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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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파산ㆍ실업자 급증에 동독인 분노…동서 임금ㆍ생활격차도 심각

동서베를린은 장벽이 무너지면서 겉으로는 하나의 도시가 되었지만 속으로는 아직도 두 개의 도시, 그것도 서로 다른 나라의 두 도시나 다름없다. 장벽은 없어졌지만 두 도시의 격차는 주택과 도로상태에서 금방 눈에 띈다. 동서베를린을 잇는 전화사정은 멀리 떨어진 두 나라사이보다 더 나쁘다. 특히 근무시간중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또는 그 반대로 전화를 하는 것은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동베를린에 사무실을 낸 서독기업들도 전화신청을 해놓고 기다리다 못해 무선전화기를 사용하고 있다. 동베를린에서 가장 중요한 기구로 민영화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공영신탁기구의 데틀레브 로베더 위원장도 콜 총리에게 직접 청탁을 해 전화선을 배정받았다고 한다.

작년 10월3일 역사적 통일선언이 발표된지 6개월이 지난 지금 덤덤해진 서베를린 시민은 손해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동베를린 시민에게는 실망과 허탈감과 분노가 쌓여 있다. 통일의 열기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바이마르제국을 재생시키려는 꿈을 안고 출발한 ‘21세기 독일’의 첫 수도 베를린은 통일이 낳은 희망과 문제를 집약적으로 노정하고 있는 곳이다.

무리한 ‘동독잔재 청산’
동베를린과 동독에서는 지금 ‘동독잔재의 청산’이 한창이다. 구 동독의 모든 판검사들은 일단 대기발령 상태에 놓여 있다. 해고될 것이 확실한 이들 자리에는 정년퇴직한 판검사를 포함, 총 1천3백명의 구 서독 판검사가 파견될 예정이다. 동독방송은 폐쇄되거나 지방방송으로 축소되고 있다. 언론인으로 일하던 백커 박사는 “세계에서 유일한 청소년방송인 ‘청소년라디오’는 폐쇄되었고 동독 제1ㆍ제2라디오는 일단 통합되었는데 폐쇄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설명한다. 이 방송국 직원들도 대부분은 해고될 것으로 보인다. 두 텔레비전 방송은 지방방송으로 축소되었는데 이것도 동독의 모든 지역에서 시청되는 것이 아니다.

동독의 통신사였던 ADN도 위기를 맞고 있다. ‘노이에스 도이칠란드’의 라인하르트 괴체 부편집장의 설명에 따르면 호네커체제가 몰락하면서 “한때 서독통신사와 협력관계가 논의되기도 했지만 곧바로 대결관계로 들어갔다”고 한다. 서독통신사인 DPA는 일부 ADN 직원을 흡수하고 서독인을 파견하면서 동독에도 지사를 설치했다. 동독 출신 언론인들은 이들 서독 출신 언론인들에 대해 “동독인을 이해하는 심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동독의 대표적인 대학인 베를린 소재 흠볼트대학에도 ‘청산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베를린시 정부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물든’ 역사학과 법학과 경제학과 교육학과와 철학연구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이 실행에 옮겨질 경우 1천5백명의 교수와 조교가 해고될 것이다. 이 겨렁에 대해 흠볼트대학은 “개혁은 대학 자력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베를린시의 결정은 대학 자율권 침해이다”라고 반발하면서 최고행정재판소에 재정신청을 냈지만 기각당했다.

그렇다고 동독의 잔재가 모두 청산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체제하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던 동베를린 빈민가는 보존될 것으로 보인다. 알렉산더광장에서 5백m 정도 떨어진 뒷골목에는 동베를린의 도시빈민들이 모여살고 있다. 1백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헛간지구’는 12년의 나치통치를 넘긴 후 44년 동안 공산당의 정화사업에도 맞섰다. 주민들은 포크레인 앞에 드러누워 철거작업을 방해하면서 “헛간지구에 손을 대지 말라”고 외쳤다. 이들은 사창가로 쓰이던 집을 술집으로 바꾸고 또 다른 한 집은 화랑으로 개조하면서 <샤인슐락>이라는 신문까지 발행하기 시작했다. 민주화 바람과 함께 여론의 압력이 커지다 베를린시는 마침내 작년 5월 이 지역을 ‘평지 문화재’로 지정했다.

동서독인이 한 직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들 사이에는 상하관계가 조성되고 심지어는 ‘점령군 심리’마저 나타나고 있다. 동베를린에서는 동서독 출신 경찰이 한 조가 되어 순찰을 도는데 동독 출신 경찰은 서독 출신의 보조원 역할을 하면서 월급은 서독 출신의 3분의 1정도 받는다. 통독 이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공영신탁기구에서는 간부들을 제외하고는 한 방에 동서독 출신 여직원이 각각 한명씩 근무하고 있다. 서독 출신 여직원이 자리에 없는 동안에는 친절하게 답변해주고 외부로 거는 전화까지 연결시켜주던 동독 출신 여직원이 서독 출신 여직원이 되돌아와 “전화를 걸게 해주다니”라는 말을 중얼거리자 금방 얼굴색이 달라지면서 당황해 했다. 기자를 배웅하려고 사무실 밖에 나와서도 그녀는 공영신탁기구의 직원수를 묻는 질문에 대답을 회피했다.

통일발표 직후 서베를린에서는 한때 중고 자동차값이 20% 이상 올라 중고자동차상들이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이 수치는 다시 떨어지고 있는데,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동베를린 사람들의 수요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독에서 가장 값이 싼 슈퍼마켓 체인인 ‘알디’는 매상고가 10배까지 늘기도 했다. 택시운전사 하인리히 슈미트씨는 서베를린 물가가 “7~10%는 올랐다”고 말하면서 “동베를린 생활수준을 서베를린 수준까지 끌어올리려면 10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장벽이 무너진 직후에는 주말마다 장을 보러 몰려드는 동독인들 때문에 서베를린 사람들은 아예 외출을 삼갔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동베를린과 동독의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서베를린으로 오는 동독인들이 아직도 제법 있다.

금년말 동독 노동인구 절반 실업 예상
동베를린의 모든 상점은 서독상품으로 가득차 있고 시내 곳곳에는 신발ㆍ옷ㆍ전자제품 가게, 귀금속상 등 새로운 상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손님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 상점들이 겉으로 보여주는 산뜻함도 이들이 들어서 있는 집들의 우중충함 때문에 어색하기 그지없다. 동베를린 중심가인 알렉산더광장에도 간이음식점은 물론 옷ㆍ꽃ㆍ가정용품을 파는 행상들이 생겨났다. 한쪽 구석에서는 야바위꾼이 성냥갑 3개를 돌리면서 손님을 끌기 위해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을 찍으려하자 벌떡 일어나면서 욕설을 퍼붓는다.

금년 들어 베를린 전체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실업문제이다. 베를린에서만 금년말에는 실업자가 50만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동독 전체적으로는 동독 노동인구의 절반 수준인 4백~5백만명이 직장을 잃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업자가 늘면서 동베를린에는 택시가 부쩍 많아지고 있다. 그 만큼 택시운전사가 벌 수 있는 돈은 줄고 있다. 10년째 택시운전을 해왔고 통일 후에는 은행빚을 얻어 개인택시 영업을 하고 있다는 한 운전사는 “과거에는 하루에 25명 정도의 손님이 있었는데 지금은 10명 채우기도 힘들다”고 한다.

동베를린의 8천개 국영기업 중 지금까지 공영신탁기구가 성공적으로 매각한 기업은 7백개에 지나지 않는다. 성공률이 낮은 만큼 사방에서 공영신탁기구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빗발치고 있다. 서독기업가들은 공영신탁기구가 매각대상 기업에 관한 문의에 제대로 답변해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고 노조는 대량감원을 비판하고 있다. 공영신탁기구는 인원부족, 소유관계 미결 등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들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동독의 국영항공사였던 ‘인터플룩’의 파산이 결정되었을 때 노조는 크게 발발하고 나섰다. 이 항공사를 서독의 ‘루프트한자’항공사가 인수 하고자 했으나, 독과점 규제를 담당하고 있는 카르텔국이 이의를 제기하자 3자 사이에 여러 달에 걸친 협상이 벌어졌다. 협상이 성공하지 못하고 1천6백명이 해고가 결정되자 노조는 공영신탁기구가 협상에 불성실했다고 비판했다. 공영신탁기구도 마침내는 “소극적으로 협상했다”고 시인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비단 ‘인터플룩’뿐만 아니라 동독의 대표적인 자동차ㆍ광학기기ㆍ전자기기 공장의 파산선고를 둘러싸고 사방에서 비판이 빗발치자 공영신탁기구는 기업관리인이나 기업평의회 간부에게 함구령을 내리는 등 여론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공영신탁기구의 로베더 위원장과 구 동독 주 가운데 하나인 브란덴부르크주의 레기나 힐데브란트 노동장관이 지난 2월21일 텔레비전 대담에서 사회자를 제쳐두고 벌인 설전은 실업문제를 둘러싸고 모든 당사자들의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졌음을 보여준다.

독일정부는 파산에 직면해 있는 동독기업이라 해도 바로 문을 닫게 하지 않는다. 종업원의 일부를 해고하고 다른 일부는 단축노동을 하도록 하면서 재교육을 권장하고 있다. 그나마 근근이 판로를 유지하면서 생산을 계속하고 있는 동독기업들은 서독기업들이 ‘보다 나은 보수, 보다 좋은 작업환경’을 선전하면서 고급인력을 빼내가고 있기 때문에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이 부족을 메우기 위해 사내 직업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 교육이 대부분 ‘이주 후보생 양성’이 될 것이라고 자조적인 분위기에 쌓여 있다. 금년중으로 30만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이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비슷한 규모의 동독인이 서베를린이나 서독으로 일자리를 구해 출퇴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결국 동벨를린은 동독처럼 통일독일의 ‘빈민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동베를린 출신은 월급도 절반
운이 좋거나 재주가 좋아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동독인은 서독인이 받느 월급의 절반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동일한 노동에 동일한 임금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선거에 나섰던 베를린 기민당은 선거에 승리, 시정부를 구성하면서 동베를린 출신 3명을 입각시켰는데 이들 3명은 서베를린 출신 각료가 받는 월급의 절반을 받고 있다. 선거공약도 중요하지만 동서베를린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임금격차를 무시하는 것은 손가락질을 받을 위험이 있다. 동베를린의 한국기업에서도 동서독인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통일 전에 고용된 구 동베를린 사람은 통일 후 새로 채용된 서독인이 받는 봉급의 3분의 1을 받고 있다. 베를린노조연맹의 쿨레스 부위원장에 따르면 금년에는 동베를린의 평균임금을 서베를린의 65%로 올리는 것이 노조의 목표라고 한다.

통일과 함께 동독인의 생활도 크게 달라졌다. 작년 한해 동안 동독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3천3백30명에 이르렀는데 이는 89년에 비해 무려 75%가 증가한 숫자이다. 서독에서는 역사상 가장 적은 사망자 수가 기록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시속 1백km로 제한된 운전에 익숙해 있던 동독인들이 통일과 함께 속력이 빠른 서독차를 구입, 속도제한없이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나 연극관람은 매우 힘들어졌다. 우선 입장료가 옛날에 비해 5배 이상이나 올랐기 때문이다. 또한 통일이 되면서 범죄가 급증했기 때문에 노인이나 여자는 어두워지면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는다. 이미 실업자가 되었거나 실업의 위협을 받고 있는 가정에서는 박물관 관람마저 포기하고 있다. 낮에는 은행이나 세무서ㆍ노동국 등을 찾아다니는 데 시간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이 줄자 동베를린의 각종 문화시설운영도 마찬가지로 어려워지고 있다. 금년에도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연극이 주로 공연될 예정인데 수입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기업이나 노조가 단체로 예약하던 때에는 공연마다 좌석의 90% 정도가 팔렸는데 지금은 60% 내외가 팔릴 뿐이다. 국제적인 명성 때문에 서유럽관광객이 옛날보다 많이 찾아오는 것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동베를린에는 군데군데 섹스숖이 생겨 성업중에 있고 리니엔가에는 사창가도 생겼다. 구 동독하에서도 국제박람회 등의 국제적 행사가 있을 때에는 외국손님을 위해 국가가 매춘을 은밀히 방조했지만 상설적인 것은 아니었다. 동베르린의 서점과 문방구는 서독에서 발행되는 모든 섹스잡지ㆍ통속잡지들로 차 있다.

동독인 88%가 “나는 2등 시민”
≪슈피겔≫지가 1월말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인이 88%가 스스로 ‘2등시민’으로 느끼고 있다. 이들은 독일 정부가 걸프전쟁을 위해서는 요르단 이집트 시리아 등 인접국에 대한 경제원조까지 포함해서 3백억마르크를 선뜻 내놓으면서 동독지원에는 인색한 것을 납득할 수가 없다. 튀빙겐의  비케르트연구소가 2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인의 81.3%가 통일정부의 동독지원이 인색한 데 대해 실망하고 있다.

금년 들어 악화되기 시작한 동독 5개주의 재정상태는 2월 들어 극에 달했다. 동독의 지방정부는 공무원에게 2월분 월급 줄 돈마저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동독에서는 금년에 전체 예산의 절반이 넘는 5백40억마르크의 재정 적자가 생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마침내 연방정부는 유류세ㆍ소득세ㆍ보험세를 금년 7월부터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이 세금인상에 대해 독일인의 반응은 ‘올 것이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선거공약을 상기시키면서 “선거사기” “거짓말”이라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 평소에는 콜 총리에 대해 대단히 호의적인 <빌트>지조차도 그를 “급변하는 사나이”라고 비꼬았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콜 총리는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고 변명했다. 동서베를린은 통일이 되기 전에도 일정한 범위 안에서 협력하고 있었다. 동독이 붕괴되기 전에도 두 도시는 경제선이 꾸불꾸불하기 때문에 생겨난 공지를 서로 교환하기도 했다. 호네커체제가 무너지고나서는 두 도시를 통일시킨다는 목표아래 곧바로 상설협의회가 설치되었다.

이 두 두시가 진정한 하나의 도시가 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동서베를린의 생활수준 균등화는 고사하고 언제부터 동베를린 내지 동독의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할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집권여당은 당연히 가까운 시일 안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낙관론을 펴고 있고 야당의 예상은 항상 그보다는 비관적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그 시기가 자꾸 늦춰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작년 총선을 전후해서 금년 중반이 지나면 회복기가 시작되리라고 장담하던 여당은 금년 2월이 되면서는 금년말이면 동독의 경기는 밑바닥에 이를 것이라고 수정했다. 2월이 지난 지금에는 누구도 자신있게 이를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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