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西’에 할복으로 항거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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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상씨, 의사당 가기 직전 ≪시사저널≫에 편지…고뇌 끝에 결단 내려

항거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죄악이다. 미국의 어느 대통령이 한 이 말은 정의감에 불타는 젊은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에 충분한 웅변이다. 불의에 맞딱뜨렸을 때 분연히 일어서야 하고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는 ‘선동’같기도 한 말.

그러나 항거는 의무로되 항거의 방법은 개인에 따라, 상황에 따라 신중하고 현명한 선택이어야 한다. 특히 생명의 고귀한 가치, 존엄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이 항상 따르게 된다.

지난주 초 전국적으로 확산된 수서비리 관련 규탄의 목소리와 몸짓 가운데 돌출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 3월5일 낮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제주도에서 상경한 한 청년이 지도층의 각성을 촉구하며 할복자살을 기도했다.

남제주화력발전소 운전원(한전 발전기계직 6급)으로 일하는 26세의 회사원 李俊相씨. 그가 지도층의 부패와 지식인의 침묵에 분노하면서 항거의 방법으로 자신의 배를 두 개의 과도로 갈랐다는 보도를 접한 사람들의 마음은 매우 착잡했다. 그러나 이씨 개인에 대한 관심은 처음부터 진지한 것이 못됐고 그의 행위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치부된 것도 사실이다.

그가 택한 방법에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전 우루과이 라운드 국제회의장에서의 한 농민단체장이나 가이후 일본 총리 방한 때의 독립운동가 후손이 그랬을 때처럼 사람들은 냉소를 짓지는 않았지만 ‘경의’를 표할 수도 없는 심정이었다고 할까.

하지만 정의로운 세상과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똑같이 갈망하였으되 ‘죽음에 성공한’ 이들은 ‘열사’로 추앙받고 ‘미수에 그친’사람들은 돌출분자나 정신이상자쯤으로 여겨진다면 죽음의 미화라는 측면에서도 형평성에 맞지 않는 점이 있다. 비록 행동은 결과적으로 비판받을망정 그러한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개인의 번민과 고통마저 한두마디로 폄하될 수는 없는 일이다.

독서ㆍ음악 즐기는 성실한 ‘청소반장’
직장에 휴가원을 내고 올라온 뒤 국회로 가던 날까지 머물렀던 경기도 광명시의 누나집에서 이준상씨는 ≪시사저널≫에 자신의 ‘성장의 고통’을 적은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서울공고 기계과를 나와 원광대 국문과에 들어갔으나 한 학기만에 중퇴, 제대후 한전에 취직한 이씨는 독서와 음악을 좋아하고 운동도 잘하는가 하면 승진시험을 대비해 영어공부도 틈틈이 한 독신자아파트의 요장(청소반장)이었다고 직장동료들은 전한다. 그의 편지를 간추려 소개한다.

“어려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나의 영웅이었습니다. 공장에 다니던 16세 때 광주의 폭도들을 소탕하고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낸 애국자가 자랑스러웠습니다…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영웅이 역적으로, 정의가 불의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들은 속고 또 속아서 정치란 으레 그런 거고 누가 해도 그 모양으로 도대체 희망이 없다고 체념해왔습니다. 그 체념고 무관심, 좌절감 속에 부패한 정치는 계속됩니다. 자유와 민주는 용기있는 국민이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우리 국토에는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생도 노동운동가도 투사도 아닙니다. …저 한사람의 무모한 피가 이 더럽혀진 땅을 어찌 다 씻을 수 있겠습니까마는 조금이나마 깨끗해지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일시적인 흥분이나 감정도 아닙니다. 이 나라의 정치인은 이미 저를 오래 전부터 죽여왔습니다. 이대로 침묵하는 것은 국민된 도리와 개인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희망에서 좌절로, 좌절에서 분노로, 분노에서 체념으로 언제까지 돌고 도는 줄로만 착각하고 있는 위정자들에게 일어서는 민심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씨는 현재 한전부속병원인 서울 쌍문동 한일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중이다. 중상을 입었으나 수술경과가 좋아 곧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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