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ㆍ탈선 시대의 삽화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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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우리는 중산층≫ 펴낸 朴榮漢씨

80년대 후반, 1천몇백만원에 분양받을 수 있었던 ‘장미연립’은 서울의 위성도시들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보편적 공간이다. 소설 속의 ‘안곡시’는, 집과 땅이 “현찰보다 더 확실한 현찰” 즉 절대적 가치로 부각된 오늘의 한국사회를 상징하는 ‘작은 한국’이다. 장미연립은 날림공사에 등기조차 안되어 있는 서민주택으로 그 안에 사는 소시민의 삶과 살림은 “정신적으로도 날림인 속류 중산층”의 의식과 세대를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다.

아파트 평수에 의해 계층이 규정되는 식의 천민자본주의 풍속이 비일비재한 가운데 사람들은 스스로를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불감증에 걸려 있다. 그 단단한 불감증의 벽에 작가 朴榮漢(44)씨는 ‘여성의 시각’으로 작은 틈새를 낸다. 최근 그가 펴낸 ≪우리는 중산층≫(전 2권ㆍ세계사)은 남성의 권위에 갈등을 느끼면서도‘자기’로서 살아가려는 살림하는 여자들의 세상읽기이다. 남성의 권위가 일상 속에 만들어놓은 혼미함과 그 혼미의 결과로 뒤흔들리고 있는 가정을, 피해자인 여성의 눈을 통해 파악하려는 것이다.

작가는 ‘작은 서울’ 장미연립을 향해 “우리는 지금 어디로 떠내려가는가”라고 절망한다. “집과 땅을 향하여 질주”하는, 그래서 “인간이 인간에게 짐승”이 되어버린 이시대의 풍속도는 웃음의 뒤끝이 무거운 블랙코미디이다. 대학교수 부부가 장미연립을 전세들면서 시작되는 이 장편은, 삶의 질에 이바지하기커녕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는 집과 땅의 이데올로기를 주로 다뤘다. 또한 결혼생활 10년이 넘는 중년부부의 위기, 공동체문화의 마지막 흔적, 부녀회장을 중심으로 한 이들의 정치의식 그리고 고층아파트 분양현장의 난장판 등 20개의 삽화를 세 여성의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비교적 균형감각을 가진 교수부인 이자옥이 전체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사이사이에 가정에서 자기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청년과 연애를 하는 장미엄마(세라), 며느리와 갈등을 벌이는 60대 영암댁의 시점이 자리잡는데 각 인물에 따라 문제가 달라져 소설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들의 삵과 의식은 사전적 의미의 중산층과는 거리가 멀다. 중산층에 막 편입하려고 하는 서민층인 것이다. 이때의 중산층이란 “건전한 윤리관과 바람직한 수준의 시민의식 대신, 오로지 배타적인 경제적 안정을 추고하고 관제 이데올로기와 파시즘에 동조하는 경향을 지닌 계층”이라고 작가는 보고 있다.

이 장편에서 대학교수의 비판적 현실인식은 배경으로 깔리고 전면에 세라 q부의 갈등과 탈선이 등장한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형성된 ‘증산층화 현상’이 속물주의를 대표하는 세라 남편과 그 피해자인 세라의 탈선을 바라보는 자옥의 시각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대량소비 사회의 소비주체이며 이른바 중산층 문화의 주역인 여성의 의식구조가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추세에 비해 아직은 바람직스런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우리는 중산층≫에는 작가의 체험이 배어 있다. 그는 8년간 서울의 변두리인 덕소 능곡 김포 안산 등지를 전전했으며 그 와중에 여성의 위치와 살림의 속내를 가까이에서 살필 수 있었던 것이다. ≪지상의 방 한 칸≫(왕릉일가) 등을 통해 도시 주변부의 삶을 천착해온 작가는 이 장편을 내면서 도시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이제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느껴지는 것을 탐색하는 간접화법의 소설을 쓰겠다. 그 가운데 하나는 예술가 소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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