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이냐, 2단도약이냐 막판에 몰린 고르비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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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국민투표 앞두고 사임압력 가중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포스트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의 소련의 운명을 걸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새 연방조약안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나 투표일인 3월17일이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모스크바 등 주요 도시에서 대대적인 국민투표 반대 및 반고르바초프 시위가 벌어지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지난 10일 크렘린궁 앞 마네즈광장에서는 급전개혁파인 보리스 옐친을 지지하는 수십만의 인파가 모여 고르바초프의 사임을 촉구했다.

이보다 하루 앞선 9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은 고르바초프와의 전쟁을 선언한 바 있다. 옐친은 그동안 고르바초프는 사임해야 하며, 15개 공화국이 포함된 연방협의회가 국가권력을 대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소련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11일 “예친이 국민의 복지보다는 개인적 야심을 앞세우고 있다”며 옐친을 정면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10일의 시위분위기는 국민투표에서의 승리를 자신하는 고르바초프에게 패배를 인겨줄 수도 있을 정도로 심각했다고 모스크바발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13일로 집권 6년째를 맞는 고르바초프에게 이번 국민투표는 ‘제2의 페레스트로이카 시대’를 여느냐, 아니면 도중하차하느냐를 가름하는 고빗길이다. 특히 고르바초프는 지난 수년간 끊임없이 그를 괴롭혀온 일부 공화국의 ‘탈연방 움직임’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다. 고르비는 이 골칫거리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심각한 경제난 등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에 짓눌려온 것이다. 이같이 골치아픈 연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 아닌 해답’으로 그는 국민투표를 택한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새 연방조약안을 내놓은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그러나 분리독립을 요구한 라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해 3국의 격렬한 반대 움직임에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몰다비아 공화국까지 가세,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지난 8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9개 공화국대표(15개 공화국중 6개 ‘반란공화국’ 수뇌는 불참)가 참석한 연방협의회가 새 연방조약의 초안에 동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러시아공화국을 비롯한 9개 공화국은 새 연방조약안에 잠정적 동의만 했을 뿐 아직 정식 조인은 하지 않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17일의 국민투표가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

새 연방조약안은 각 공화국을 주권국으로 인정하고, 각 공화국의 대외교역을 인정하는 등 기존의 연방조약안보다는 다소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이 연방조약안은 “연방탈퇴는 법률에 따른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탈퇴절차가 워낙 복잡해 연방탈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욱이 새 연방조약안은 △주권수호와 영토의 통합에 대한 주권이양 △국방 외교 군사전략에너지 예산 재정 등에 관한 권한의 이양 등 각 공화국의 통치에 필요한 ‘골자조항’을 모조리 연방정부에 귀속토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옐친은 연방정부는 국방 철도 에너지부문 외에는 간섭하지 말 것과 예산ㆍ재정 등 경제권을 공화국에 이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전국에 방영된 텔레비전회견을 통해 고르바초프의 사임을 촉구한 이후 정치적 궁지에 몰린 옐친은 심지어 “3월이 가기 전에 (소련)민주주의가 사느냐 죽느냐가 판명날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고르바초프를 공격하고 있다.

소련문제 전문가들은 현재 소련 정국이 혼돈에 빠진 것은 단순히 개혁파와 보수파간의 정면충돌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좀더 복잡한 사정에서 연유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소련문제 전문가인 일본 법정대 시모토마이 노부오 교수는 “고르바초프가 포스트 페레스트로이카를 단념한 채 위기관리적 체제구축을 시도함으로써 개혁파는 쇠퇴한 대신 보수파가 대두했다”고 진단한다. 그는 △당의 하부조직까지 완전히 장악했던 당서기장과는 달리 대통령의 권한이 空洞化했으며 △경제문제 해결의 실패로 급진개혁파에 대한 여론이 반전됐고 △이를 틈타 군과 국가보안위원회(KGB) 등 강경보수파가 대두, 혼란이 더욱 가중되었다고 주장했다.

여하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반대파들이 그의 6년 통치에 대한 ‘신임평가’로 규정한 이번 국민투표에서 승리한다면 그 여세를 몰아 각 공화국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고르바초프는 군부 등 보수강경파와 제휴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투표 결과에 상관없이 대중적 지지가 많이 감소된 고르바초프가 새 연방조약안과 같은 새로운 제도만으로 오늘의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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