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결에 밀수꾼 될 수도
  • 신기남 (변호사) ()
  • 승인 199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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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할 때 휴대품 정확히 신고해야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해외여행자가 우리나라에 입국하려면 휴대품을 신고해야 한다. 관세를 매기기 위한 것이다. 신고를 하지 않고 물건을 들여오다 적발되면 관세를 포탈하려한 죄로 처벌된다. 이것이 바로 밀수이다. 공항에서 세관당국이 아무리 감시의 눈을 부릅떠도 크고 작은 밀수가 수없이 행해지고 있을 것이다. 다음은 관세법 위반혐의로 법정에 기소된 어느 피고인의 예.

피고인은 홍콩에서 산 에메랄드 등 다수의 보석을 비닐봉지에 이중으로 담고 겉을 테이프로 감은 다음, 일반 신변 휴대품처럼 보이도록 의류ㆍ화장품 등의 물건과 섞어서 여행가방 속에 넣었다. 그는 이 가방을 아는 사이인 제3자에게 주면서 한국까지 운반해달라고 부탁했다. 부탁을 받은 사람은 안에 보석에 들어 있는 줄 모르고 여행자 휴대품 신고서에 이를 기재하지 않은채 가방을 세관검사대 위에 올려놓았다가 세과원에게 적발을 당했다. 이 경우 제3자는 사정을 몰랐으므로 죄가 되지 않는다. 당연히 제3자를 이용한 피고인이 정범이 된다. 소위 간접정범이라는 것이다.

간접정범인 피고인은 타인을 이용하여 밀수를 한 셈이므로 검거되어 법정에 서게 됐다. 관세법은 ‘詐僞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관세를 포탈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피고인의 행위는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을 동원한 것이라는 검사의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제1심 법원은 별 고심없이 유죄를 선고했다. 일견 당연한 듯 보이는 판결이었다.

그러나 피고소인의 항소로 열린 고등법원의 판결은 당연시되던 관점을 엎어버렸다. 고등법원이 무죄를 판결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휴대품을 신고서에 기재하는 것은 법적으로 기재의무를 부과한 것이 아니라 휴대품 검사를 신속히 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를 어긴 것이 곧 부정행위는 아니다. 둘째 세관검사대 위에 가방을 올려놓은 것 자체를 일종의 신고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피고인의 행위는 관세부과 및 징수를 현저히 곤란하게 만든 사위 또는 부정한 행위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만만했다가 한방 얻어맞은 검사가 다시 상고를 제기하여 무대는 최종심인 대법원으로 옮겨졌다. 이 사례를 관세포탈로 다스리지 못한다면 밀수행위를 막기는 지난한 일이라고 검서는 생각했을 것이다.

90년 12월26일 대법원은 검사의 기대에 걸맞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위 또는 부정한 행위라는 것은, 적극적 행위는 물론 소극적 부작위도 포함함으로 신고서에 기재를 고의로 누락시킨 행위는 관세를 포탈하려는 하나의 징표로 볼 수 있다. 둘째 보석을 들여오기 위해 피고인이 꾸민 해태를 참작하면 검사대 위에 가방을 올려놓았다는 것만으로 신고를 했다고 볼 수 없다. 결국 피고인은 관세포탈 의도를 가지고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을 동원했다고 보는 것이 사회통념상 타당하다는 것이다.

야밤에 밀수선으로 실어오는 것만이 밀수가 아니다. 백주에 공항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가방을 검사대에 내미는 방법으로도 밀수는 가능한 것이다. 신고를 하도록 돼 있으면 할 일이다. 그렇지 않다가는 밀수꾼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음을 대법원은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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