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가도 모를 수수께끼들
  • 박권상 (편집고문) ()
  • 승인 199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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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알다가도 모를 수수께끼 같은 일이 꼬리를 물고 있다. 그것도 범속한 서민층의 일상사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대사를 책임맡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일어나고 있으니 그것이 곧 국가적 의혹이요, 정부에 대한 불신이요, 사회불안의 원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막 막이 오른 시ㆍ군ㆍ구의회 선거만 해도, 왜 황급히 실시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30년간 군사독재가 앗아간 이 땅의 ‘풀뿌리민주주의’가 소생하는 마당이므로 온 국민이 얼싸안고 춤을 추는, 그런 축제 속에 치러야 마땅하겠는데, 현실은 어떠한가. 재야권은 아예 보이콧을 선언하였고 제도권 야당들도 이번에 실시하는 기초의회와 6월에 있을 광역의회 등 두 선거의 분리실시를 규탄하고 나섰다. 지난해 12월11일 여야 총무간에 천신만고 끝에 이루어진 지자제협상에 따르면, 두 선거를 가급적 동시에 실시한다는 것이었고 지난 2월8일 여야는 5월 이후의 ‘동시선거’에 합의했다. 또 4월 임시국회서 동시선거를 전제로 선거법상 미비한 점을 수정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국민적 합의의 ‘선거망국론’ 나올 지경
그러나 한달이 못돼 정부 여당측은 야당의 극력 반대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기초의회선거 실시에 나섰다. 그나마 그것이 수서사건의 ‘축소은폐’ 수사가 끝난 것과 때를 같이한 것이다.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 것이다. 야당측은 수서사건으로 국민의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고 그 파문이 권력 핵심부로 옮겨가자 정부 여당이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실시하려는 공작차원의 조기 분리선거라고 지탄하고 있다. 사실인즉, 분리선거에서 오는 국민적 부담이나 국가적 손실을 고려할 때 그런 비난을 받으며서까지 분리선거를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기초의회선거에 즈음하여 지방 관청은 행정마비상태에 빠졌다. 선거에 관계없이 국민들까지도 내력없이 마음이 들떠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선거에 불가피한 현상이지만, 지역사회가 사분오열되어 공동체의식이 산산조각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전국적인 선거 한번 치르는 데 몇조원의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선거 때마다 으레 껑충뛰는 물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의회선거를 분리 실시하게 돼 있으니 1년 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도 분리한다면 1년 안에 네 번이나 지방선거를 치른다. 또한 14대 국회의원선거도 명년 연초에 있다. 정말 이러다가 ‘선거망국론’이 국민적 합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기왕 30년이나 늦었으니 충분한 준비와 계몽절차를 거쳐 명년초에 다섯 개 선거를 한꺼번에 치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굳이 나라를 연중 선거열풍 속으로 몰아넣어 혼란ㆍ타락ㆍ무질서를 야기, ‘선거망국론’을 고취하고 ‘민주주의무용론’까지 유도하자는 권위주의적 발상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국회는 의회민주주의를 포기하려는가
수서사건만 해도 그렇다. 릴레이식 지방의회선거 열풍으로 잠재울 수 있다고 믿는다면, 실로 하나는 알고 둘, 셋은 모르는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 분명히 6공 최대의 비리사건인데 청와대의 일급 비서관 한 사람이 ‘권리 남용’으로 이 어마어마한 특례 부정이 결정되었다고 보는 국민이 과연 몇이나 될까.

행정부가 짜맞추기식 축소은폐로 수사를 종결시켰다면 마땅히 국회가 나서 국정조사권을 발동하여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더구나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여야 국회의원이 더섯명이나 연루되어 쇠고랑을 차고 있는데 국회의 권위와 명예를 위해서도 국회가 직접 나서 玉과 石을 가려야 한다. 그러나 수서사건이 터졌을 때, 국회를 열자는 주장에 “검찰의 수사가 진행중이므로 기다리자”는 것이 민자당 입장이었는데, 숱한 의혹을 남기면서 수사가 끝났고 야당측에서 국회를 소집했는데도 지난 7일 개회식만 열렸을 뿐 ‘지방의회선거’가 있으니 국회를 열 수 없다는 것이다. 역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모든 것을 원내의 토론을 통해 수렴하고 해결지어야지, 원외로 끌고나가지 말자는 것이 정부 여당의 일관된 논리가 아니었던가. 더구나 기초의회선거에 정당의 개입이 배제되고 민자당의 경우 ‘방임’하겠다는 방침인데도, 여당의 보이콧 때문에 국회가 의회민주주의를 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하겠다는 것인지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또 한가지 알다가도 모를 중대한 일이 있다. 수서비리에 ‘언론인 수뢰’설이 파다하고 “언론사 간부 10여명이 한보에서 2천만원 이상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검찰은 3월초에 그들에 대한 소환수사 방침을 비친 바도 있었다. 그러나 끝내 용두사미로 끝났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역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결과는 언론계 전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증폭시킬 뿐이다. 그런 설이 사실이라면 ‘검은 돈’을 먹은 자들이 언론계 요직을 계속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단견이다. 그것은 전국 언론을 간접적으로 몰락시키는 것으로 자유의 체제를 붕괴시킬 수도 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수수께끼 같은 사건들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이러다가 세상이 어떻게 되고 국가가 어디로 표류할는지 역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저 장탄식을 금할 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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