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짜집기’로 연방붕괴 고비 넘겨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1.04.0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분열 주범… 요비치 대통령 복귀로 일단 진정

 “유고슬라비아의 사회주의는 아직 패배하거나 무릎을 꿇지 않았다. 사회주의 유고는 지금껏 반공산주의의 물결을 잘 헤쳐왔다.”
 
금년 초 유고언론에 의해 폭로된 유고 군중앙정치위원회의 비밀정보분석보고서는 민족분규와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는 유고의 향후 정국동향에 대해 이같은 낙관적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민족분규 등 요즘 유고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심상치 않은 사태는 이 분석이 빗나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3월9일 부크 드라스코비치 세르비아 쇄신당 당수가 주도한 야당연합과 학생의 반공시위 이후 파국으로 치닫던 유고의 정국은 보리사브 요비치 대통령이 사임 엿새 만인 20일 복귀함으로써 일단 진정국면에 들어선 것 같다. 그러나 1918년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라보니아인 등 3민족이 모여 출발한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은 그동안 눌려왔던 민족갈등의 본격적인 표출로 인해 73년간 아슬아슬하게 지탱해온 연방체계의 위기를 맞고 있는 느낌이다.

 요비치 대통령은 지난 15일 연일 거듭되는 반정부시위의 진압을 위해 군을 투입하자는 자신의 제안이 연방간부회의에서 부결되자 전격 사임했었다. 그러자 찬성표를 던졌던 3명의 다른 위원도 함께 사임함으로써 8명으로 구성된 연방간부회의 정족수가 미달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6개 공화국 2개 자치주 대표로 이루어진 연방간부회는 외교정책과 국방을 관장하며 군의 통수권을 쥐고 있는 최고 헌법기구이다.

 요비치 대통령의 복귀는 일단 정족수 미달로 기능마비에 빠졌던 연방간부회를 재가동시킴으로써 각 공화국간의 타협을 통한 사태해결의 길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족갈등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세르비아공화국과 크로아티아공화국간의 반목으로 인해 문제해결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르비아 대 반세르비아진영 갈등 첨예화
 현재 유고연방은 공산주의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세르비아진영과 反세르비아진영으로 나뉘어져 있다. 몬테네그로공화국과 보이보디나자치주가 세르비아진영인데 반해 북부의 슬라보니아 크로아티아 등 4개 공화국이 반세르비아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반세르비아전선이 형성된 것은 연방정부의 중앙집권식 정치?경제체제에 대한 반발에도 원인이 있으나 근본적으로 세르비아공화국 측의 ‘大세르비아 민족주의’정책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세르비아 대 반세르비아진영간의 갈등이 첨예화된 것은 각 공화국에 자유총선 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난해 슬라보니아 크로아타아 등 반세르비아진영 공화국의 공산당이 선거에 참패하면서부터이다. 더욱이 작년 12월 총선에서 극단적 민족주의자인 밀로세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이끄는 사회당(구공산당)이 승리하자 무려 60만명이나 거주하고 있는 크로아티아공화국과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됐다.

 특히 20만명의 세르비아인이 거주하고 있는 크로아티아 남부의 크라이나市는 언제든 민족분규가 터질 수 있는 화약고로 존재해왔다. 크라이나시는 최근 크로아티아공화국 정부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최근 자치선언을 하고 말았다.

 이미 작년 8월과 10월 두 번에 걸쳐 자치 움직임을 보인 바 있는 크라이나시와 크로아티아공화국간에 분쟁이 터질 경우 연방군 내의 세르비아공화국소속 군대가 개입할 것이 뻔하다. 이 경우 밀로세비치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은 아예 이 지역을 세르비아의 영토로 선포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조치는 연방 내 여타 민족분규지역에 엄청난 여파를 미치게 되며 최악의 경우 내전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치분석가들은 오늘의 유고위기의 원인을 대체로 △ 다민족으로 구성된 유고연방의 내재적 한계 △ 일부 공화국에서 일고있는 민족주의 물결 △ 밀로세비치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의 실정 등 3가지를 꼽고 있다.

 인구 2천4백만명의 유고는 2개의 문자?3개의 종교?4개의 언어 및 5개 민족이 6개 공화국과 2개 자치주에 산재해 있는 복잡 다단한 국가다. 또한 6개 공화국 가운데 로마 가톨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북부 슬라보니아공화국 및 크로아티아공화국과 이슬람교 및 그리스정교 문화를 많이 흡수한 남부 세르비아공화국간에는 문화?종교적 차이로 인한 갈등의 소지가 계속 남아있다.

 이같은 갈등은 1918년 유고연방 출범시에도, 또 2차대전 중 나치의 점령하에서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게다가 國父로 추앙받고 있는 요시프 티토가 45년 사회주의 유고를 건설한 뒤로 표면화되지 않고 있던 민족분규마저 80년 그가 사망하자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민주주의 물결 거스른 세르비아공화국
 민족갈등은 특히, 지난해 각 공화국별로 실시된 자유총선에서 세르비아공화국과 몬테네그로공화국을 제외한 4개 공화국에서 모두 공산당이 참패하면서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슬라보니아공화국의 민주야당연합(DEMOS)이나 크로아티아공화국의 크로아티아민주동맹(CDU)이 선거에서 압승한 데는 민족주의의 물결도 큰 몫을 했지만 무엇보다 ‘연방탈퇴’공약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두 공화국은 작년 12월 공화국법률이 연방법률에 우선하도록 공화국헌법을 개정함으로써 사실상 연방탈퇴의 법적절차를 끝낸 셈이다.

 북부 공화국들의 탈공산주의 무드와는 반대로 세르비아공화국에서는 작년 12월 총선에서 집권 사회당이 70% 이상의 득표로 승리했다. 특히 민족주의자인 밀로세비치 대통령이 ‘대세르비아 민족주의’를 기치로 재당선됨으로써 연방 내 분리파 공화국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일례로 밀로세비치는 인구 1백90만명 중 무려 1백70만명의 알바니아인이 거주하고 있는 코소보자치주에 대해 소수 세르비아인만을 위한 정책을 취하는 등 파시스트적 기질을 보여 여타 공화국민의 분노를 샀다.

군 개입하면 파국 자초할 수도
 한편 현재의 위기상황이 계속될 경우 한때 동유럽 국가 가운데 남부럽지 않게 번영을 누려온 유고슬라비아의 경제는 자칫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베오그라드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작년의 인플레율이 120%에 달했고 생산성도 전년대비 35%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더욱이 연방정부가 외국으로부터 들여오기로 한 25억달러의 차관도 국제통화기금(IMF) 측에서 제동을 걸면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 IMF 측이 이 차관의 제공과 유고의 개혁조치를 연계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국민의 관심은 사태가 악화될 경우 군이 과연 개입할 것이냐에 집중되고 있다. 현재 유고군부는 “내전이 발생하면 군이 개입할 것”이란 입장을 천명해놓고 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유고 연방군 규모는 약 18만명으로 이 가운데 육군이 13만8천여명이라고 한다. 일반 병사는 각 공화국 출신별로 고루 분포돼 있으나 장교의 60% 이상이 세르비아공화국 출신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일부 정치분석가들은 연방군이 여러 민족출신의 병사로 이뤄진 만큼 설령 발포명령이 내려지더라도 같은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누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세르비아 출신의 병사와 장교만 따져도 그 규모가 엄청나 군동원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군부는 유고 내에서 특권층에 속한다. 국방비가 전체예산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장교들의 월급이 일반 국민의 평균 월소득 4백달러보다 무려 6배나 많다. 현재의 위기상황이 계속될 경우 이런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군부가, 피해를 볼 여지가 가장 많다는 점에서 사태해결을 위해 언제든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그러다 슬라보니아의 젤토 카친 국방차관이 “만일 군이 개입한다면 유고는 물론 군도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지적했듯이 군의 개입은 사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파국을 자초할 가능성이 높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