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電子 생명은 역시 기술개발”
  • 김재일 경제부차장 ()
  • 승인 1991.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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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금성.대우 등 ‘연구개발’에 노력 집중 … 투자액은 일본 40분의 1 수준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매탄동의 50여만평 부지에 삼성의 거대한 전자공업단지는 자리잡고 있다. 컬러텔레비전을 생산하는 영상사업본부에 들어서면 온갖 기계소리에 음악소리까지 가세해 매우 시끄럽다. 우선 로봇이 부품들을 인쇄회로기판에 자동 삽입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로봇에 의해 90% 가까이 채워진 인쇄회로기판은 수작업을 위해 다음 공정으로 넘어간다.
 
17개의 생산라인 앞에 유니폼을 입고 앉은 여직원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간간이 남자직원도 보인다. 라인 뒤쪽으로 가면 컴퓨터로 제품을 검사하면서 텔레비전화면으로 모니터하는 사람수가 많아진다. 완성된 인쇄회로기판을 브라운관?외주부품과 결합시키고 덮개를 씌워 색 순도 등을 조정하는 공정이다. 1개 라인에 80여명의 직원이 배치돼 하루 9백~1천대를 생산한다. 전체 라인의 생산량은 하루 1만5천대. 시간당 1백대, 1분에 2대꼴로 나오는 셈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컬러텔레비전 물량의 70%정도가 수출되고 나머지가 내수용이다. 지난해 해외공장의 물량까지 합쳐 4백만대(5억8천만달러어치)가 수출됐다. 최근 2~3년간 우리나라 전자제품은 대부분의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급격히 잃어가고 있으나 컬러텔레비전의 경우 아직 경쟁력이 있다고 삼성 관계자는 말한다. 컬러텔레비전은 연간 매출액이 약 7천억원 규모로 현재 삼성전자 전체 매출액에서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상품이 국내시장이나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가. 이 물음에 답한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는 길일 것이다. 정부는 최근 노태우 대통령 주재로 ‘제조업 경쟁력강화 대책 보고회의’를 열고 전자부품?반도체분야 등 모두 9백여개의 첨단기술 개발을 위해 오는 95년까지 1조5천여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기술개발은 경쟁력 강화에 과연 얼마만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가. 첨단기술을 요구하는 전자업계의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이에 대한 해답을 모색해보기로 한다.

 우리나라 3대 전자제품 제조업체라면 삼성전자?금성?대우전자를 꼽는다. 58년 설립된 선발업체 금성은 설립 바로 다음해에 진공관 라디오를 생산했고 60년대에는 선풍기 자동전화기 냉장고 흑백텔레비전 등을 국내 최초로 생산하면서 종합전자업체로서의 위치를 굳혀갔다. 삼성전자는 금성보다 11년 늦게 설립돼 흑배텔레비전 제품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생산소재?부품의 국산화를 꾸준히 추진하면서 금성을 추격해 갔다. 71년 설립된 내쇼날의류를 모체로 한 대우전자는 83년 대한전선의 가전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매년 60% 이상의 신장세를 기록하는 발전을 보였다.

 3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삼성이 4조5천1백억원, 금성이 2조9천8백억원, 대우가 1조4천억원이다. 어느새 선발업체인 금성과 후발업체인 삼성의 순위가 바뀌어 매출액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83년만 해도 금성이 매출액은 7천5백억원으로 7천70억원의 삼성을 앞섰다. 그러나 84년 삼성은 매출액 1조3천5백20억원으로 1조2천9백60억원의 금성을 근소한 차이로 누르기 시작, 이후 격차를 넓혀갔다. 경쟁력에서 우위를 지키게 된 것이다.

첨단제품 개발에 기여하는 ‘고문의 아들’
 경쟁력 강화에는 경영전략 등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나 특히 전자산업의 경우는 기술개발이 회사의 존폐를 좌우할 정도로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삼성이 선두주자로 나서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도 기술개발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섬성전자의 金永斗 사업부장은 “국내외 경쟁이 격화되고 수출장벽이 높아지면서 기술개발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그래서 기술과 인력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한 것이 주효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삼성전자는 기술개발을 위해 ‘고문의 아들’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해외에서 영입한 기술고문에 기술자 한사람씩을 붙여 기술전수는 물론 말씨?태도?사고방식까지 그대로 닮는 수제자가 되도록 하는 제도다. 5년 전부터 활성화된 고문제도는 첨단제품 개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삼성전자측은 밝혔다. 삼성전자가 일본 미국 유럽에서 영입한 고문은 80여명. 이중 50명 정도가 일본인이다. 은퇴한 일본인 고문을 초빙한 경우는 은퇴 전 일본봉급의 70% 정도를 급료로 지불한다. 일본인 현직 과장의 경우는 이사급으로 데려와 한국인이상봉급 3배 정도의 높은 급료를 지급하고 있다. 삼성처럼 외국인 고문이 많지는 않지만 금성과 대우전자도 고문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사의 기술개발 노력은 연구개발(R&D)부문에 대한 투자액을 비교해보면 대충 알 수 있다. 금성은 81년 2백19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한 이래 매년 투자액수를 늘려 지난해에는 2천2백억원을 투입했다. 삼성은 81년부터 86년까지는 가전부분의 연구개발에만 총 8백17억원을 쏟아넣었다. 삼성의 경우 86년까지 반도체 통신분야 연구개발 투자는 집계가 안돼 금성과의 평면 비교는 어렵다.

 3사는 3년 전과 비교, 연구개발 투자를 2~3배씩 늘렸다. 삼성은 89년 2천4백억원에서 올해 4천6백억원으로 ,금성은 1천30억원에서 3천5백억원으로, 대우는 6백60억원에서 1천3백억원으로 투자액을 늘려 연구개발 부문을 대폭 강화시킨 것이다. 87년부터 올해 투자계획까지 최근 5년간 연구개발 투자 누계는 삼성이 1조3천50억원, 금성이 1조45억원, 대우는 3천9백10억원이다. 3사는 현재 매출액의 7%에 해당하는 연구개발 투자를 93년에는 매출액의 10%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전자제품은 수명주기가 짧다. 짧게는 6개월, 길어야 1년6개월이면 한 제품의 수명은 끝난다. 전자부문에서의 경쟁력이란 어느 업체가 빨리 히트상품을 만드느냐에 의해 판가름난다. 소비자의 필요를 제때에 맞추기 위해서 기술개발은 갈수록 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은 8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신제품이 전제품의 40% 이상을 차지했고 현재는 신제품 비중이 60%선이다.

 삼성이 75년 개발한 히트상품으로는 절전형 ‘이코노’텔레비전을 들 수 있다. 스위치를 켜자마자 브라운관의 예열없이 곧장 영상을 볼 수 있는 이코노텔레비전은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판매대수는 전년의 2배에 달하는 18만대를 기록했다. 최근 가장 성공한 사례로는 ‘히트잠잠세탁기’를 들 수 있다. 밤에 사용하기에 편하도록 소음을 현격히 줄여 주부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데 매월 3만대 이상씩 팔리고 있다.

 금성은 한국소비자보호원의 평가를 들어 자사의 컴팩트디스크플레이어(CDP)가 국내에서 생산되는 CDP중 품질이 가장 우수하다고 자랑한다. 금성은 이밖에 전자식VCR, 오븐전자레인지, 음성다중 컬러텔레비전, 균일냉각방식 냉장고, 인공지능세탁기등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금성은 현재 고화질텔레비전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 부문에서 다른 두 회사를 앞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우는 IC냉장고 ‘투투’, 16비트교육용 컴퓨터, ‘요요’카세트, VHS VTR등 많은 신제품을 개발했다. 89년에는 움직이는 텔레비전, 음성인식 전자렌지, 회전튜너방식오디오, 자동 진공청소기, 90년에는 유아교육용 컴퓨터 ‘코보똘똘이’, 인텔리전트 리모콘, 노인용 전화기를 개발, 전자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핵심부품은 일본에 전적으로 의존
 기술개발은 생산성 품질 생산비용 가격 소비자요구를 만족시켜야 한다. 즉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경우에라야 개발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것이 핵심부품의 개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 부분이 약하다. 대일 경쟁력 약화의 근본원인도 따지고 보면 핵심부품 개발의 취약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자업계는 주요 기술이 일본에 비해 3~5년 뒤졌다고 보고 있으나 그것은 일본의 기술이전을 전제로 한 것이다. 裵洵勳 대우전자 사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10~15년간 이를 악물고 기술개발을 밀어붙여야만 일본의 핵심부품 개발수준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 의존하는 핵심부분은 텔레비전의 경우 일렉트릭 건과 33인치 이상 대형 브라운관 등이고 전자제품의 기본요소로 집적회로 부품인 커스텀 IC와 전기부품인 디펙션요크 같은 부품도 일본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밖에 디지털 신호처리, 레이저 응용장치, 액정표시, 소형 정밀모터, 소프트웨어 설계기술 등이 우리 전자업계가 큰 애로를 느끼는 핵심기술들이다. 실제로 일본업체에 물어야 할 로열티만 해도 엄청난데 VCR은 특허료가 7%이고 컴퓨터도 판매액의 10%를 로열티로 지불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는 것 없는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기술격차는 양국의 연구개발 투자액을 비교해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산업연구원은 한 보고서에서 개별 가전업체를 기준으로 한 투자의 절대규모는 일본기업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마쓰시타의 경우 89년 연구개발 투자는 1조원에 이르고 있다. 두 나라 전체 전자산업계의 연구개발 투자를 비교하면 우리는 일본의 40분의 1 수준이다.

 연구개발 인력 또한 숫자나 질적인 면에서 크게 뒤져 있다. 3사의 연구개발 인력은 8천여명으로 전체 종업원의 7%를 조금 상회한다. 반면 일본 주요 전자업체의 연구개발인력은 전체 종업원의 27%에 해당한다. 게다가 일본의 기술인력 평균경력이 12~15년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3~5년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핵심부품 개발과 주요 기술부문에서 우리가 일본에 뒤진다는 것은 연구개발 투자부족에 따른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경쟁력있는 전자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발 이전 단계인 상품기획이 매우 중요하다. 1년후에 판매될 상품을 만들어야 하므로 소비자의 필요, 경쟁사의 제품, 소비자가격 등을 보다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상품기획의 관건이다. 여기에는 소비자 생활양식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으로 따라야 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맞벌이 부부와 독신자의 증가, 고령화, 복지화,정보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변화에 맞춰 상품을 개발해야 경쟁력이 있다. 소위 ‘在宅문화’에 부응한 가정용 팩시밀리, 프린터, 데이터 디스플레이어, 무인자동 가전제품, 집에서 검진할 뿐만 아니라 주식관리와 쇼핑정보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 등의 상품과 장비가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생활양식의 변화를 예측한 상품기획 광고 판촉 유통전략은 좋은 품질의 제품과 함께 히트상품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이 기술개발임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길게 보면 기술은 투자한 만큼 개발되고 회사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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