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에 유머 겹친 오락물
  • 이세용 (영화평론가) ()
  • 승인 1991.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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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저리 감독:로브 라이너 주연:제임스 칸, 캐시 베이츠

 로브 라이너 감독은 산뜻한 코미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로 우리에게 친숙해진 사람. 오락성이 충만한 영화를 솜씨있게 만들어낸 그가 이번엔 공포영화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의 원작을 영화화한 <미저리>는 일종의 ‘뉴로틱 필름’(신경에 이상이 있는 인물을 다룬 영화)인데 공포와 유머를 뒤섞으며 서스펜스를 고조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폭설이 퍼붓는 콜로라도의 깊은 산속. 자동차 사고를 낸 소설가 폴 셸던(제임스 칸)이 애니(캐시 베이츠)라는 여인에게 구조된다. 애니는 간호원 출신의 이혼녀. 폴의 열렬한 팬으로 그가 쓴 ≪미저리≫라는 소설의 여주인공에게 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 그녀는 폭설을 핑계되며 폴을 집에 가두다시피 잡아놓고 헌신적으로 간호한다. 어느날, 애니는 폴의 원고를 읽고 미저리가 죽는 결말을 알게 된다. 정신의 평형을 잃은 애니는 폴에게 미저리를 살려낼 것을 강요한다. 진정제도 끊어버리고 음식도 주지 않은 애니. 중상을 입은 폴이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애니의 뜻대로 소설을 쓰며 탈출을 기도하자 이를 눈치 챈 애니는 폴의 발목을 부숴버린다. 원고를 끝낸 날, 폴은 애니와 생사를 건 사투를 벌인다.

 <미저리>의 공포감은 가둔 자가 행사하는 무한대의 힘(자유)과 갇힌 자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억압)에서 비롯된다. 이제는 고전이 된 윌리엄 와일러의 <콜렉터>를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주인공 남자가 부상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점에서 위기에 따르는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서스펜스는 애니의 앨범 삽입에서 시작된다. 애니는 폴이 요구하는 타이프 용지를 사러 읍내로 외출한다. 이 사이에 폴은 그녀의 앨범을 들춰보다가 애니가 연쇄살인을 저지른 정신 병자임을 알게 된다. 이 장면 이후 관객은 폴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가슴을 졸이기 시작한다.

 서스펜스란 관객이 뭔가 분명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믿게 하는 추리영화의 기법인데, 이 영화에서는 애니가 들뜬 채 지껄이는 대목에서 암시를 주고, 폴이 애니의 앨범을 들추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

 간단한 줄거리, 등장인물도 몇명 안되지만 클로즈 업과 삽입의 효과를 효과적으로 살린 연출과 더불어 출연진의 연기가 뛰어나다. 그러나 마을의 행정관인 버스터가 폴을 발견한 순간, 애니가 뒤에서 총을 쏘아서 죽이는 장면에서는 좀더 계산된 연출이 필요했다고 본다. 나는 물론 크게 놀랐다. 그러나 이 놀라움은 상황에서 우러나오는 놀라움이 아니라 대포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리는 총소리 때문이었다.

 이 영화를 수준급 오락물 정도에 머물게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그것은 영화의 감상을 방해하는 지나치게 큰 음향이다. <미저리>가 상영되는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마다 늘 느끼는 터이지만 이 극장의 음향은 필요 이상으로 크다. 최근 영화, 특히 미국영화가 음향으로 한몫 보고 있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귀에 신경 쓰다가 눈이 볼 것을 놓치는 일은 영화를 위해서 매우 불행한 일이다. 쾌적한 음향은 결코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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