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은 절대 안전해야”
  • 박순철 편집부국장 ()
  • 승인 1991.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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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식품주식회사 全仲潤 회장

 우리나라 사람은 지난해 37억개의 라면을 먹었다. 한 사람이 한해에 90개 정도를 먹은 셈이다. 그러고 보면 라면을 ‘제2의 쌀’이라고 하는 표현도 터무니없는 과장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삼양식품주식회사의 全仲潤 회장은 한국에서 라면을 처음으로 생산한 사람이다. 1963년 9월의 일이다. 그로부터 4반세기의 세월이 흐른 89년 ‘라면 우지파동’의 시련을 전회장은 침묵으로 견뎌냈다.

 그의 사무실에는 ‘人生百懷 千歲憂’라는 글이 적힌 액자가 걸려 있었다. “사람은 백살밖에 못살지만 천년 뒤를 염려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어떤 일을 하든 목전의 이익에 급급해하지 말고 천년 뒤에도 인류에게 공헌이 될 일을 하자는 얘기입니다.” 그는 칠순 노인답지 않게 짜랑짜랑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최근 삼양식품그룹이 대관령목장에서 일할 50세 이상의 부부 10쌍을 모집했는데 7백여쌍이 몰려들어 관심을 모았다. 대관령목장부터 화제에 올렸다.

● 목장에 자주 가시는지요?
 2주일에 한번 정도는 주말에 꼭 가지요

● 가시면 주로 무엇을 하십니까?
 소 사료도 주면서 부지런히 일합니다. 거기 가는 것이 낙이죠. 해발 8백50~1천4백m나 되어 한 여름에도 모기가 없습니다.

● 최근 대관령목장의 일손 모집에 수많은 사람이 찾아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 노년층의 직장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60세를 정년이라고 하지만 요즘은 60세라도 건강해 청장년과 다름없습니다. 또 일하는 것은 건강과 장수의 비결입니다. 매일 자식과 며느리한테 치이면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봉급과 아파트를 줍니다만 50~65세까지라는 조건을 붙였지요.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랬더니 의외로 많이 왔습니다.

● 20년 전 대관령목장을 처음 시작할 때 학자들이 고냉지에서는 목장하기 어렵다고 했다는데, 그래도 밀고 나가셨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학자들은 거의 안된다고 했지요. 풀도 문제지만 소가 추워서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추위는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강원도 금화군 출신입니다. 어렸을 적 집에서 농사를 지어 보았지만 소가 잘 자랐습니다. 또, 추운 만주나 함경도에서도 모두 소를 기르고 있지 않습니까.

● 삼양식품하면 우선 생각나는 것이 라면입니다. 60년대 초에 처음 라면을 생산하게 된 동기를 말씀해주시지요.
 그 당시 우리나라는 식량이 모자라 미국에서 잉여농산물, 특히 밀가루가 무상으로 들어왔지요. 남대문시장에서는 미군이 먹다 남은 것으로 국을 끓여 한 대접에 5전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식량문제가 심각했지요. 밀가루를 잘 가공해서 맛 좋고 영양가도 있는 식품을 개발할 수 없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그러니까 58년 일본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일본에서는 간간히 라면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지요. 일년 후에 다시 갔을 때 라면이 생산되고 있어 맛을 보았더니 훌륭하더군요. 이것 같으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요즘도 라면을 자주 드십니까?
 일주일에 최소한 5개는 먹습니다.

● 주로 언제 드십니까?
 점심 식사로 먹기도 하고, 저녁 때 집에서도 먹습니다.

● 소비자 사이에서 라면이 유해하다는 인식이 적지 않게 퍼져있습니다. 집에서도 제가 라면 자주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라면의 원료로 20여가지가 들어가는데 유해물질은 일체 없습니다. 우지파동이 났을 때 쌀과 라면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보내서 함께 분석을 했습니다. 쌀에서는 수은이 많이 나왔으나 라면에서는 97가지의 분석을 했는데도 유해물질이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라면은 절대 안심하고 먹어도 됩니다. 라면은 영양가도 풍부합니다. 올해 9월이면 우리 회사가 창립30주년이 됩니다. 30년 동안 애들과 나는 1주일에 다섯개 이상 라면을 먹어왔습니다. 그렇지만 73세인 나도 이렇게 건강합니다. 옛날일입니다만 하루는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 양반은 술을 잘 드시니까 라면을 즐겨 먹었는데 “라면에 고춧가루 좀 넣으시오. 그러면 잘 팔릴거요”해요 라면은 기름에 튀긴 것이라 느끼하지 않습니까. 과연 고춧가루를 넣으니까 느끼한 맛이 가셔요. 고추는 식욕을 증진시키고 혈액순환을 좋게 하는 영양제입니다.

● 사건 나기 전에 삼양식품에서 제공한 라면은 인체에 절대 무해했다는 말씀이신데 그때 떠돌던 루머와 관련, 속시원히 털어 놓으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 관료들의 독선이었지요. 식품과학에 대해 잘 모르면서 일방적인 얘기만 듣고 판단을 한 겁니다. 게다가 유지를 전공하지도 않은 교수까지 나와서 “그거 안됩니다”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비전문 지식인이 망발을 한거죠.
 언론도 마찬가집니다. 큰 언론사 같으면 식품과학 전공한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전공한 사람도 없이 사실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막 써댄 겁니다. 일부 저질 언론인이, 과학을 잘 모르는 기자가 막 써댄 겁니다. 물론 업계 쪽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도덕성이 결여된 기업이 존재해선 안되는데 그런 기업이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수서사건 같은 것도 그 일례고, 기업이란 크나 작으나 공적인 것입니다. 소유는 자기가 하고 있을지 몰라도 국민전체를 위해 존재해야 하고, 이익이 나면 세금내고, 사회에 공헌하고 주주도 보호하고 … . 이것이 기업의 사명인데 서로 중상모략이나 하고 있습니다.

● 우지파동이 있은 뒤, 삼양식품에서는 라면에 우지를 쓰지 않고 팜油를 쓴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보사부에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우지는 쓰지 말자고 했고 우리도 좋다고 했습니다.

● 팜유만 써서 만든 라면을 계속 먹으면 뇌졸중에 걸린다는 말도 있습니다.
 식물성 팜유만 쓴 라면을 오래 먹은 사람은 콜레스테롤이 많아지고 그로 인해 혈관이 좁아져 뇌졸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논문이 많이 나와있습니다.

● 그렇다면, 라면이 결국 건강에 해롭다는 얘기가 되지 않습니까?
 하루 세끼 계속해서 라면만 먹으면 그렇게 되겠지요. 그러나 불고기도 먹고, 나물에 참기름도 먹고 …. 우리가 고기를 안먹는다면 모르지만 우리는 고기를 먹습니다.

● 만일 보사부 방침이 잘못된 것이라고 공인이 된다면 다시 우지를 섞을 생각이신지요?
 물론 그럴 생각입니다. 나는 식품을 생산하는 사람으로서 식품은 절대로 안전해야 하며 맛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라면 얘기를 좀더 여쭤보겠습니다. 현재 라면을 늘 먹는 나라가 몇 개국인가 궁금하군요.
 세계의 약 1백10개국에서 라면을 먹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미국과 중국에 라면공장을 지었습니다. 미국 공장은 3개 생산라인으로 되어 있는데 생산된 전량을 미국 사람이 사 먹습니다.

● 북한의 경우는 어떤지요?
 공군 대위가 라면봉지를 보고 귀순을 결심했다고 했는데 …. 중국 청도에 공장을 지으니까 평양에도 공장을 짓자고 제의가 들어온 것을 거절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을 통해서 그런 제의가 왔더군요. 할 생각이 없다고 거절했지만 나중에 자세히 알아보니, 제일교포들이 4년 전 김일성 생일을 기해 약 5백만달러짜리 최신자동시설을 선물했다고 합니다. 평양에 라면공장을 차려 일본인이 시운전을 하면서 생산한 라면에 ‘국민라면’이라는 이름을 붙여 전국에 보냈다더군요. 그런데 2주일 후에 일본인이 철수했더니 바로 기계가 돌아가지 않았답니다. 평양당국에서 대로하여 일본업자에게 빨리 고쳐달라고 항의를 했답니다. 그래서 업자가 평양에 가서 보니까 전부가 못쓰게 돼 있었더랍니다. 면대가 나오다가 중단되면 가동을 멈추고 전부 긁어내 청소하고 기름을 발라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지요. 또 전압이 일정치 않아 컴퓨터가 다 고장이 나버렸습니다.

● 우리 라면의 생산기술과 라면의 질을 세계수준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물론 손색이 없습니다. 세계에서 라면을 제일 많이 생산하는 곳은 일본입니다. 라면의 기원은 중국이지만 인스탄트 라면은 일본에서 만들었습니다.

● 새로운 제품개발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계십니까?
 사람의 생명은 농업과 의학에 의해서 유지됩니다. 의학이 많이 발전했다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건강은 식품으로 조절해야 합니다. 요새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기능식품을 많이 연구합니다. 우리 연구소도 혈압이 정상으로 되고 당뇨가 치료되고 성인병이 예방되는 기능을 가진 식품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 삼양식품은 지난해 원주에 종합식품단지를 만들었지요?
 서울 도봉동에 있던 공장이 전부 그쪽에 갔습니다.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간다는 것은 인구분산의 효과면에서도 기여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사람 구하기도 어렵고 인건비는 올라가고 해서 차제에 공정을 자동화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 삼양은 식품전문업체로 성장해왔습니다. 재무구조가 튼튼한데도 사업을 크게 벌리지 않았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습니까?
 나는 삼양이 이익을 내면 재투자, 재투자해왔습니다. 모든 걸 회사를 통해서 합니다. 내 개인 재산은 사둔 집 하나밖에 없습니다. 전문화해야 합니다. 모든 종류의 사업을 다 한다는 건 욕심입니다. 일을 넓게 벌리려면 정치권력과의 연결이 필요합니다. 권력과 연결돼야 은행돈도 꿔 쓰고, 이권도 얻고, 좋은 업종도 차지할 수가 있는데…. 그걸 난,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탓도 있지만, 할 생각이 없어요. 특정기업이 권력과 결탁해서 많은 특혜를 받으면 반대로 구멍나는 기업이 생깁니다. 공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균형있는 발전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소득의 격차가 크다는 것인데 난 그걸 절실히 느낍니다. 일본은 국민의 76%가 스스로 중산층이라로 생각하고 있으며 절대 상류층이란 계층도 없습니다. 선진국은 노후보장제도가 잘돼 있습니다만 우리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조건이 맞는다면 기업이 나서서 해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년부부를 목부로 모집한 것도 그런 취지입니다.

● 우리사회에는 재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있습니다. 특히 최근 부동산투기에 따른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분노의 감정까지 있는 듯한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우리 회사의 경우를 말씀 드리자면 정상적인 운영방법 아니면 안합니다. 또한 같은 업종끼리도 시기하지 않습니다. 절세는 하되 탈세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중진국이지요. 중진국에서 재벌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 아닙니까. 그러나 도가 지나치면 안되지요. 학생들이 주장하는 것도 결국 정계와 기업에서 원인을 제공한 겁니다. 불의를 보고 가만있으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부동산투기의 경우, 일본에서는 땅값이 떨어져서 부동산회사 1백70개가 도산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토지가격이 오르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지하경제가 문제입니다. 지하경제가 성행하는 나라에서는 경제가 제대로 발전할 수 없어요.

● 최근 언론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큰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얼마전 <일본경제신문>의 사시를 읽어보니까 99%가 정확해도 나머지 1%를 발로 뛰어 확인하라는 말이 있었습니디. 언론의 힘이 크다고 해서 무책임한 얘기를 함부로 써서는 안되겠지요.

● 고희를 넘으셨는데도 매우 건강하십니다.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라면도 많이 먹고(웃음)…. 저는 자연을 사랑합니다. ‘靑(푸른 것)이 약’이라고 하잖습니까. 목장에 가서 푸른 자연을 보면 마음이 참 편해집니다. 일생 동안 죄의식을 갖지 않고 산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몇해 전에 일본 식품업계 회의에서 이런 보고가 있었습니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대도시에서 3대를 계속 살면 그 후손들의 건강이 약해지고 생식력이 떨어지고, 수명이 단축된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그럼 대안이 뭐냐. 최소한 일생의 4분 1은 산수좋고 공해없는 곳에 가서 살아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래 이 3도시의 인구가 매년 2~3%씩 줄어 들잖습니까. 교외로 나가 사는 겁니다. 일본에서는 큰 기업의 회장을 해도 1백평 정도의 밭과 집 하나를 사는데 그칩니다. 그게 표준이예요. 8,90세가 된 사람들이 밭을 가꾸고 하면서 살아갑니다.

● 독서를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책을 읽으시는지요?
 주로 경제라든가 식품, 또는 사회와 종교관계 책을 읽곤 합니다. 정치쪽은 전혀 읽지 않습니다.

● 경영철학이라고 할까요. 사시는 무엇입니까?
 매년 신입사원들에게 말합니다만 정직하게 살아가라고 당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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