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팀은 ‘합작 가능’의 본보기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1.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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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차원 교류에 큰 영향 끼칠 듯…정치분야 ‘교착상태’ 돌파구 마련엔 회의적

 온 겨레의 소원인 통일의 물꼬가 마침내 체육교류에서 터지는가. 4월24일부터 일본의 지바현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합동훈련이 한창인 남북대표선수들을 바라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던지는 희망섞인 질문이다. 이번 탁구대회는 작년 11월29일 판문점에서 남북간에 첫 회담이 열린 후 금년 2월까지 4차례의 회담 끝에 나온 결과이긴 하지만 남북간에 첫 체육회담이 열렸던 지난 63년부터 따진다면 근 28년만의 쾌거로 평가되고 있다.
 
북한문제전문가인 金南植씨는 “특히 민단과 조총련이 하나가 되어 응원하게 된 것은 46년 분단사에서 실로 획기적인 일”이라며 “남북이 합작하면 비단 스포츠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한 민족으로서 이질적인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더욱이 오는 6월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도 남북이 단일팀으로 출전하기로 이미 합의됐고,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서울과 평양에서의 통일축구대회가 예정돼 있다. 따라서 향후 각종 세계대회에 남북한이 단일팀으로 참가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진 것은 물론 오는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나아가 95년 북한 삼지연에서 열리는 제3회 겨울철 아시아경기대회에도 단일팀으로 나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치적 이해 합치가 ‘단일팀’ 성사시켜
 우리처럼 분단국이었던 동서독은 지난 56년 멜버른올림픽대회를 비롯, 60년 로마올림픽, 64년 도쿄올림픽대회에 단일팀으로 참가한 기록이 있다. 동독은 51년 국제올림픽위원회에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자격신청을 냈으나 서독이 그보다 하루 앞서 IOC에 등록을 마침으로써 무산됐었다. 동독이 올림픽에 독자팀을 내보낼 수 있게 된 것은 IOC가 65년 동독의 NOC 자격을 받아들이면서부터이다. 그러나 68년 멕시코올림픽대회와 72년 뮌헨올림픽대회에서는 단일국가와 국기를 사용함으로써 ‘단일팀 아닌 단일팀’의 모습을 전세계에 과시한 바 있다.

 이번 탁구단일팀 성사의 배경에는 양측의 스포츠교류에 대한 바람이 크게 작용한 게 사실이나 본질적으로는 양측의 정치적 이해의 합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역으로 양측의 정치적 이해가 어그러질 경우 스포츠교류는 언제든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우리측이 종전의 ‘선교류후 단일팀’방침에서 한발짝 물러나 북한측의 ‘선단일팀 후교류’주장을 과감히 수용한 배경에는 북방외교의 주역이자 막후에서 대북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朴哲彦 체육교육부장관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측도 나름대로 정치적 계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랜 맹방인 소련이 우리와 수료를 했고, 동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산정권이 무너지는 등 민주화바람과 탈냉전의 분위기는 지난 수십년 동안 폐쇄정책을 고수해온 북한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와같은 국제적 개방무드에 따른 압력과 함께 현재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서두르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한국과는 관계개선을 韓·日수교조건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는 일본측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남식씨는 “탁구단일팀 성사는 지엽적인 스포츠분야에만 국한돼 있지 않고 최근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남북한내 통일지향적 세력들간의 상호작용에 힘입은 바 크다”고 분석했다. 또 남북대화사무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번 스포츠교류를 통해 북한은 내부적으로는 통일열기를 확신하고 밖으로는 이른바 단일의석에 의한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라는 그들의 논리를 강화시켜주는 효과를 얻었다”고 분석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통일문제와 관련, 고려연방제란 큰 테두리를 먼저 정해놓고 문제에 접근하는 이른바 ‘구조주의적’ 접근방식을 취해온 북한이 우리측이 그동안 내세운 교류를 통한 신뢰구축, 즉 ‘기능주의적’ 접근방식을 수용했다는 점이다. 남북정책을 담당하는 청와대의 한 당국자는 “바로 이같은 측면에서 이번 탁구단일팀 성사는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면서 “당국간의 합의만 있다면 여하한 민간 차원의 교류도 적극 환영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스포츠분야에서의 교류가 현재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총리회담 또는 국회회담 등과 같은 정치분야에서 어떤 돌파구를 마련해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본질적으로 남북한 양측의 법적·제도적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일례로 북한은 남한을 적화의 대상으로 규정한 헌법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탈냉전시대에 걸맞지 않는 국가보안법을 여전히 운용하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스포츠교류가 여타 민간교류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남북 모두 현실주의적 정책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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