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需 하늘의 승리자 ‘F-16'
  • 워싱턴·이석렬 특파원 ()
  • 승인 1991.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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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에서 성능 인정받아…한국 이어 스위스도 ‘F/A-18기’ 대신 구입 가능성

 걸프전쟁 희생자가 또 하나 생겼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한국 정부는‘다음세대전투기’로 미리 골라 놓은 F/A-18 호네트 전투기 대신 F-16 팰콘 전투기를 사겠다고 발표, 50억달러가  넘는 거래가 성사된 것으로 여겨왔던 맥도널 더글러스회사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가 돼버렸다.

 당초 한국 정부는 ‘다음세대전투기사업’(KFP)에서 한국 공군의 주력기로 미국 맥도널 더글러스 회사가 만든 F/A-18 호네트 1백20대를 사들이기로 방침을 세우고 지난해 10월최종 계약단계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맥도널 더글러스 회사가 예상보다 훨씬 비싼 값을 요구하자 한국 정부는 F/A-18 구입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새로 제너럴 다이내믹스 회사의 F-16 팰콘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3월28일 李種九 국방부장관은 작년 가을부터 호네트와 팰콘 두 기종을 비교검토한 결과 “상대적으로 값이 싼 팰콘이 호네트에 비해 성능상 손색이 없고 기술이전 측면에서도 유리해 공군의 작전 요구도를 충족할 수 있다고 판단, 이를 택한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장관의 발표가 있기에 앞서 미국의 방위전문 주간지《디펜스뉴스》는 3월 25일자에서 한국 정부의 새로운 계획을 앞질러 소개하면서 걸프전쟁에서 팰콘이 눈부신 활약을 했다는 기사를 실은 바 있다. 미국 국방부내 전문가들의 견해와 사우디아라비아 현재 미군사령부 지위관들의 말을 인용한 이 기사는 걸프전 당시 호네트 전투기의 활약에 대한 맥도널 더글러스사의 33쪽에 이르는 자체평가를 일일이 반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걸프전쟁에 동원된 호네트 전투기는 모두 2백대였고 개전 초 5천회 출격에 격추 또는 추락한 것은 단 1대뿐이라는 회사측의 주장에 대해 이 주간지는 미국 국방부의 분석을 인용하여 “팰콘 전투기(2백15대)는 야간출격 4천회를 포함하여 모두 1만3천회(전체 출격의 25%) 출격해 바그다드 심장부를 공격하는 위험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손실은 불과 5대뿐이었다”고 팰콘을 칭찬했다.

 그뿐 아니라 팰콘은 고속 反방사성 미사일(HARM) 발사능력에서도 호네트에 못지않은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도했다. 《디펜스뉴스》는 쌍발기(호네트)가 단발기(팰콘)에 비해 손실(추락) 비율이 절반밖에 안된다는 맥도널 더글러스 회사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점도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며칠 뒤 한국 정부의 기종변경 결정을 보도하면서 한국 공군은 이미 팰콘을 36대 갖고 있으며 새로 나올 최신형 팰콘(블럭 50형으로 불림)에는 개량된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AMRAAM)이 추가될 예정이므로 기종변경은 결과적으로 잘된 것 같다고 논평했다.

 이 신문은 이어 한국에 대한 전투기 판매는 ‘가장 어려운 흥정’이었다면서 기술이전 문제를 둘러싼 의견대립이 있었고 당초의 50억달러에서 62억달러로 가격이 뛰긴 했지만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고 보도했다.

제너럴 다이내믹스 株價 크게 상승
 어쨋든 한국 정부의 기종변경으로 호네트를 사려고 마음을 먹었던 스위스 정부 역시 팰콘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자 맥도널 더글러스 회사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제너럴 다이내믹스 회사는 미국 군수산업을 이끌로 있는 5대 회사의 하나로 세이트루이스에 본사를 두고 항공기 우주선 탱크 장갑차 핵잠수함 그리고 고성능 특수 전자제품을 만들고 있다.

 레이건 행정부의 군비강화정책이 한창이던 때는 지출자본이 연간 4억9천6백만달러였으며 자체 연구개발비로 4억6천3백만달러를 쓴 이 회사의 종업원 수는 10만3천명에 달했다. 그러나 신데탕트로 군사비 지출이 삭감되기 시작한 올해 이 회사의 지출자본은 전성기의 3분의 1로 줄어들고 연구개발비도 약 절반으로 축소됐으며 종업원 수는 9만2천명선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해 월리엄 앤더스가 새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사원지주제 계획이 발표되고 종업원을 6만명선으로 대폭 감축하는 작업이 진행중인 이 회사 주식값은 최근 75센트나 올라 34달러25센트가 됐다.

 팰콘 전투기를 만들고 있는 포트워즈 공장은 1942년 기동된 이래 B-24 중형 폭격기를 비롯해 F-111 전폭기 등 군용기 7천여대를 만들어낸 곳이다.

 지금 이 공장에서 만들고 있는 팰콘은 78년 처음 개발생산된 F-16A/B 원형을 4번이나 개량한 F-16C/D형으로 올 가을부터 미국 공군에 납품될 예정이다.

 “값싸고 다목적인 고성능 전투기 팰콘”이라고 선전하는 제너럴 다이내믹스 회사는 18개국 2천8백대의 팰콘을 팔았다.

 한국 정부는 기종변경과 함께 미국의 기술을 도입해 항공기 제작에 새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국내 항공업계에 새 활력을 불어넣어 2000년대에는 세계 10대 항공국이 된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한국은 항공기 정비와 가공제작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축적을 이뤘다는 평을 듣고 있지만, 설계·소재·시험평가 부분에서는 초보단계를 못 벗어나 있으므로 최신형 전투기의 조립생산과 합작생산이 가져올 파급효과는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20여만개의 부품을 국내에서 만들기 위해 관련 산업체가 새로 생기고 고용이 늘어난다. 한국 정부는 이번 결정에 맞춰 95년까지는 항공기 단순부품의 국산화를 끝낼 것과 훈련기 등 중급 항공기의 설계기술을 완전히 익힌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이전을 어떻게, 어디까지 하느냐 하는 문제로 한차례 큰 고비를 맞을 것 같다. 미국 의회가 무엇보다도 까다롭게 따지는 분야가 외국에 첨단기술을 이전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에 대한 기술이전 문제로 미국 의회가 미주알고주알 따진 선례로 미루어볼 때 팰콘 판매를 의회가 승인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의회의 한 소식통은“한국 정부의 갑작스런 기종변경이 꼭 값 때문만은 아니다. 맥도널드 더글러스보다 제너럴 다이내믹스로부터 더 많은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내린 결정이다”라고 귀띔했다.

 걸프전쟁이 끝난 뒤 많은 나라가 다투어 미국의 첨단무기를 탐내게 되면서 미국 군수업체들은 저마다 새 무기 개발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고 미국 정부도 이를 장려하고 있다. 소련에 이어 세계 두 번째 무기수출국인 미국은 연간 5백50억달러어치를 팔고 있다. 한국은 83~87년 5년 동안 23억달러어치의 무기를 미국으로부터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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