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왕좌’ 노리는 크라운 “하늘이 내려준 기회”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1.04.1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斗山사건으로 어부지리…점유율 회복 적기로 삼아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오염 사건’으로 두산그룹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던 지난달 25일, ‘크라운맥주’라는 상표로 잘 알져진 조선맥주(주)의 본사(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640) 2층 회의실에서 열린 노사협상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달랐다. 협상에 참여한 18명의 노사대표는 5일간의 파업을 끝내고 정상조업을 재개하기로 어렵지 않게 합의하였던 것이다.

 그동안 노사간의 협상과정에서 쟁점이 되었던 것은 ‘퇴직금 승수제’였다. 퇴직금 승수제란 10년 이상 근속한 근로자의 퇴직금을 누진적으로 적립하는 제도이다. 근로자쪽에서는 88년에 폐지된 이 제도를 부활시키자고 주장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1천여명의 노조원들은 13일간에 걸친 준법투쟁에 이어 21일부터는 파업에 돌입했다. 이날 협상에서 취임한 지 한달도 채 못돼 파업사태를 치러야 했던 朴文德(41·朴敬福 회장 차남) 사장은 퇴직금 승수제를 부분적으로 부활시키기로 했다. 2년내 전면실시도 약속했다.

 이날 박사장은 “우리 제품이 없어서 못팔 지경인데 분규로 제동을 걸면 어떻게 하느냐”고 근로자들을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쪽에 따르면 박사장은 쟁의가 발생한지 3일만인 23일 자정무렵에도 노조를 찾아와 “하늘이 내려준 기회다”라 고 근로자들의 작업재개를 독려했다고 협상과정에 참여했던 노조 부위원장 金慶福(48)씨는 “회사와 사장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고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물론 경영진이 드러내놓고 40여년 ‘동고동락’하던 경쟁자의 약점을 이용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지난 30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열린 규탄대회에 참석하려던 노조를 말린 것도 경영진이었다. ‘불난 집에 기름 붓는’심보로 비쳐질까봐 광고비도 늘리지 않을 정도로 무척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내심으로 최악의 수준으로 처진 시장점유율을 회복하거나 그 이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사실이다.

페놀사건 이후 출고량 67% 늘어
 페놀오염 사건이 사회문제로 비화되기 시작한 3월21일 전까지만 해도 조선맥주(주)가 동양맥주(주)를 따라 잡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임에 틀림없었다. 작년 조선맥주의 일반맥주 시장점유율은 사상최저로 떨어져 29%에 머물렀다. 일반맥주와 고급맥주·드라이맥주를 전부 합한 전체 시장점유율은 30%로 떨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술집에서 손님들에게 크라운맥주를 내놓으면 약80%가 제품을 바꿔달라고 항의했다”고 회사관계자가 고백할 정도이다.

 이젠 형세가 뒤바뀌게 되었다. 국민의 ‘공해기업’에 대한 반감이 조선맥주에게 일대 반격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는 셈이다. 회사쪽에서는 평균 하루 18만상자(20명들이)에 불과하던 출고량이 30만상자로 늘어났다고 밝히고 있다. 약 67%가 더 늘어났다는 얘기다.

 반면 두산쪽에서는 “피해보상에 신경을 쓰느라고 매출액 감소분을 집계할 겨를도 없다”면서 “전국적으로 평소 매출액의 5%정도가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매출액 감소는 이러한 추정치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동양맥주 대구지점의 李相勳 지점장은 4월2일 현재 “대구지역의 출고량이 80% 가량 감소했으며 경북지역의 감소액도 20%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 3만여 회원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회장 金元植)의 불매운동이 끼치는 영향만 해도 꽤 크다. OB맥주가 일반소매업체와 업소에 대략 5대5의 비율로 팔리고 있다는 점과 이 연합회가 전국 13만소매업체 가운데 20%에 달하는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10% 이상의 매출액이 감소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또 연합회쪽에서는 “두산이 그동안 ‘패스포드’나 ‘썸씽스페샬’ ‘OB맥주’ 같은 인기있는 주류에다 비인기 주류를 끼워파는 것을 비롯해 유통업자들에게 상당한 횡포를 부려왔다”면서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유통업체에 대한 횡포에 대해서도 납득할 만한 조처를 취할 때가지 불매운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시장점유율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두산쪽의 잘못으로 득을 보는 경쟁자가 조선맥주만은 아니다. 넓게는 두산의 23개 계열사의 경쟁회사가, 좁게는 위스키 시장과 콜라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던 (주)진로와 롯데칠성(주)도 수혜자가 될 것이다. 그 가운데서 조선맥주가 유독 부각되는 것은 양사 가 전통적인 ‘재계의 라이벌’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양사의 전신은 1933년 일본의 대일본맥주와 기린맥주가 우리나라에 설립한 조선맥주와 昭和기린맥주이다. 전쟁중이던 52년 5월 두 맥주회사는 각각 공개입찰로 양사의 관리인이었던 閔德基씨와 朴斗秉씨에게 불하되었다. 경쟁과 협력이라는 ‘숙명적인 관계’의 출발이었다.

 50년대는 맥주판매망이었던 대리점 확보경쟁으로 일관하였다. 치열한 광고·판촉전이 병행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경쟁에서 무리한 투자로 자금이 묶인 조선맥주는 60년 한일은행 관리업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선맥주가 전후 66.5%로 최고에 달했던 시장점유율상의 우세를 잃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60년대 중반에 이르자 은행관리업체인 조선맥주의 시장점유율이 30%대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때 광복 직후부터 부산에서 대선발효라는 소주회사를 경영해오던 현재의 박회장이 조선맥주를 인수했다 그는 자금난을 겪으면서도 60년대말까지 시장점유율을 40%로 끌어올렸다.

 양사가 지배하던 맥주시장을 70년대에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된다. 73년 6월 섬유업체인 삼기물산(주)이 서독 이젠벡사와 합작해서 한독맥주(주)를 세워 75년부터 국내 시판을 개시했기 때문이다. 고가정책을 쓴 이젠벡맥주는 시판 이후 3개월간 맥주시장의 거의 15%를 잠식했고, 품귀현상까지 일어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이에 양사는 공판체제를 최대한 활용하여 판매경로를 방어하는 전략을 구사하였고, 이젠벡맥주가 화학주라는 소문까지 나돌아 한독맥주는 1년반만에 도산하여 조선맥주에 팔리게 된다. ‘공동의 적’을 물리치는데 성공한 동양맥주와 조선맥주는 시장을 각각 58대 42 수준으로 사이좋게 분할할 채 70년대말의 호황을 구가했다.

 조선맥주쪽이 다시 경쟁에서 뒤처지기 시작한 것은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84년 시장점유율이 30%대로 떨어졌고 90년에는 20%대를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회사쪽은 이렇게 졍쟁에서 낙오하게 된 이유로 “크라운맥주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들었다. 많은 소비자가 크라운맥주 하면 쓰다고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비자의 기호변화를 제대로 알지 못한 보수적인 경영관리도 한몫 거들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이번 사건이 있기 전까지 조선맥주는 ‘실지회복’을 위해 드라이맥주 시장을 개척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조선맥주쪽에서는 드라이맥주를 시장에 내놓은 89년 한 해의 광고비로 30억원 이상을 투입할 정도로 총력전을 펼쳤다.

세 공장 풀가동에 잔업까지
 요즘 조선맥주쪽에서는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서울 마산 전주의 세 공장을 풀가동시키고 하루 2~4시간의 잔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충분하지 못한 실정이다. 대구의 경우는 수요량의 60%밖에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회사는 연간 12만㎘의 생산능력을 갖춘 전주 제3공장을 18만㎘ 규모로 증설할 계획이다.

 이와 같은 공식적인 것 외에 좀더 은근하게 진행되는 경쟁전략도 있다. 많은 도소매업체가 동양맥주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는 요즈음이 전통적으로 열세인 유통망을 확보하는 데 적기라고 판단, 이들에 대한 집중공략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판매기획부 외에 최근에 생긴 시장조사부를 중심으로 도소매업체들에 대한 판촉과 선전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이번 사건과 무관하게 진행되어온 것이긴 하지만 드라이마일드맥주를 개발하고 출시한 것도 점유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관계자들의 “경쟁자의 ‘헛방’으로 빼앗긴 시장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점유율이 40%대를 유지해준다면 그 이상도 욕심낼 수 있다”로도 밝히고 있다.

 이번 사건은 상대적으로 잘못이 적어도 덕을 본다는 ‘공해시대의 경쟁원리’를 기업계에 깨우쳐주고 있는 듯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