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살릴 길 품종개발에 있다
  • 김재일 경제부차장·사진 이용호(프리랜서) ()
  • 승인 1991.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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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품목 선별, 집중투자로 ‘수입개방’ 뚫고 나가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에 위치한 농촌진흥청은 농산물 신품종 개발의 본산이다. 직물시험장의 한 온실에 들어서면 후끈한 기운과 함께 진한 벼냄새가 물씬 코를 자극한다. 60평 넓이의 시험용 인공 논에 가지런히 늘어선 벼에는 알곡이 영글어가고 있다. 섭씨 28도의 높은 온도만 아니라면 마치 가을 논에 와 있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두줄마다 동진 벼 추청벼 섬진벼 신선찰벼 대청벼 화성벼 영산벼 등 수십가지의 벼 이름이 적힌 작은 푯말들이 꽂혀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벼의 키나 알곡 상태 등이 조금씩 다르다.

 온실에서는 1년에 벼를 2~3번 재배하므로 한 품종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15년의 기간을 9~10년으로 단축하고 있다는 崔泳根 연구관의 설명이다. “한해에 3~4개의 품종을 개발하기도 하지만 한 품종도 개발하지 못할 때도 있다. 바람과 병에 강하고 밥맛도 좋은 품종을 기대하면서 시험, 개발하지만 엉End한 품종이 나오기도 한다.” 벼의 신품종은 인공교배를 통해서 개발한다. 한 품종의 벼에서 수술을 빼낸 후 다른 품종의 꽃가루를 대신 집어넣는 방법이다.

 지난해 농촌진흥청은 10여년간의 시험연구 끝에 일품벼와 서안벼를 개발했다. 이 품종은 양질미로 알려진 ‘아끼바레’보다 품질과 밥맛이 훨씬 좋을 뿐 아니라 소출면에서도 통일벼와 비등하다. 93년부터 농가에 보급될 예정인 이 품종은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한편 농민의 소득증대와 국제경쟁력 향상에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쌀값은 국제가격보다 3.8배가 비싸다. 현재 우리 쌀 생산비는 ㎏당 6백91원으로 미국의 3.6배이다. 2001년에는 농업기계화로 생산비 격차를 미국의 2.4배수준으로 좁힐 수 있으나 큰 차이는 아직도 남는다. 결국 가격상으로는 아무리 해도 경쟁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영양분이 많고 맛과 외관이 좋으며 향내까지 나는 양질미를 개발하면 외국살의 국내시장 침투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농촌진흥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수입개방 예시로 벼랑끝 몰린 농민
 앞으로 3년간 행해질 농수산물 1백31개 품목에 대한 정부의 수입개방 예시는 가뜩이나 위축된 농민의 마음을 벼랑 끝으로 몰고가는 느낌이다. 농민단체들은 “영농의지를 급격히 감퇴시키고 관련품목의 직접적인 가격하락과 함께 생산구조의 왜곡을 가져와 농촌경제의 전반적인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정부의 발표에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발간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한 보고서는 현행 관세율을 그대로 적용해서 농산물을 개방할 경우 지난 85~88년 연평균 가격보다 참깨는 86%, 콩은 77%, 밀은 65%, 마늘은 61%가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생산비를 감안해 80~3백%의 높은 관세를 물린다 해도 참깨는 58%, 팥은 50%, 마늘은 49%, 유채와 고추는 각각 20%씩 값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많은 품목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는 말이다.

 결국 현재 경쟁력이 있는 품목과 앞으로 가능성이 있는 품목의 개량을 위해 집중적으로 연구, 투자할 필요가 있다. 모든 농산물을 균형있게 발전시키기보다는 가망이 있는 품목을 과감하게 선택,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말이다. 농촌진흥청은 쌀 품질향상을 위한 노력 외에도 13개 수출유망 작목의 경쟁력 강화에 연구를 집중시키고 있다. 13개 작목이란 사과 배 감 매실 양다래 감귤 채소류 꽃류 버섯 약용작물 돼지 닭 누에고치다. 그중 몇가지를 선택, 경쟁력을 따져보자.

사과와 배 품질 세계제일
 우리나라 사과와 배는 품질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 가을 날씨는 일조량이 많고 주야간 온도교차가 커서 사과 재배에 이상적인 기후다. 현재 연간 1만1천톤 정도를 대만 등 여러나라에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후지’ 품종보다도 품질이 좋은 원교2호와 원교3호가 개발됐다. 이 품종은 당도가 높고 봉지를 안 씌워도 착생이 잘 돼 인건비가 적게 들 분만 아니라 규격이 균일해 상품성이 뛰어나다. 농촌진흥청의 박무언 연구관은 “내년부터 2001년까지 원교2호와 3호의 1만ha 보급이 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 사과 1인당 연간소비량은 12.5㎏인데 2001년에는 16.3㎏으로 증가돼 내수가 50%정도 늘어날 전망이다. 또 품질개선을 계속하고 수출 대상지역을 미국 유럽 등으로 다변화한다면 수출량을 크게 늘릴 수 있다.

 우리나라 배는 달고 즙이 많으며 신선도가 높아 동남아와 유럽 각국에서 인기가 높다. 서양에서는 우리나라 배를 배가 아닌 ‘특별한 과일’로 생각할 정도다. 현재는 내수가 많아 수출은 5천톤 내외다 더욱이 최근 신품종 원교7호, 8호가 나와 품질이 더욱 향상됐다. 이 품종의 개발로 현재의 3백평당 생산량 2천2백㎏은 3천㎏로 늘어나고 3백평당 소득도 현재의 1백16만원에서 2백21만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내다봤다.

 꽃류 재배는 우리나라 농업 중 가장 유망한 분야의 하나다. 농촌진흥청 원예시험장의 2백평 남짓한 온실에는 주머니꽃 시클라멘 개불알꽃 금새우난 프리물러 철쭉 등이 제각기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철쭉만 해도 붉은 색 흰색 분홍색 등 다양하다. 89년에는 2백10만달러어치가 주로 일본과 네덜란드에 수출됐다. 접목재배로 증식된 ‘비모란’ 선인장의 수출량은 3백만개(약 72만달러)로 세계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내수도 계속 늘고 있다. 농촌진흥청의 한 관계자는 “꽃류의 수출전망은 매우 밝다. 문제는 해외시장에 대한 정보 취득, 연중공급체제 확립, 그리고 수송기술의 개선이다”라고 지적한다.

 버섯은 품질과 기술면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어 현재도 경쟁력이 있다. 농촌진흥청은 최근 버섯 병재배법을 개발했다. 작은 플라스틱 병에 톱밥을 넣고 30~35일 정도 배양한 후 15~20일 동안 온도와 습도를 맞춰 버섯이 콩나물처럼 돋아나오게 하는 새로운 재배법이다. 병재배는 모든 과정의 완전 자동화가 가능해 생산비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버섯과 돼지고기 수출 유망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버섯 소비량은 71년의 30g에서 최근에는 8백75g으로 늘어났다. 일본의 1인당 소비량이 2천9백g이며 대만이 5천8백g인 점을 감안해 볼 때 국내 버섯 수요는 더욱 신장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소비뿐만 아니라 수출 전망도 매우 밝다. 89년도 버섯 수출액 9천3백50만달러는 전체 농산물 수출액의 10%에 해당하고 수출은 매년 증가추세다.

 돼지고기 또한 수출 유망 품목이다. 농촌진흥청 축산시험장의 돈사는 여느 돼지우리처럼 울음소리로 시끄럽고 냄새가 고약하다. 그러나 별로 지저분하지는 않다. 사료공급 시설과 똥오줌 치우는 시설이 자동화돼 있기 때문이다. 사료공급 호스가 각 구유로 연결되고 있다. 우리 밑에 설치된 배설물받이는 돼지의 똥오줌을 일괄적으로 운반한다. 돼지고기는 주로 일본에 수출되는데 이는 일본의 총수입량 33만톤의 1%를 차지한다. 가장 큰 경쟁상대는 일본 총수입물량의 48%를 담당하는 대만이다. 현재는 생산비가 대만보다 11~14% 정도 높지만 앞으로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薛東攝축산시험장장은 말한다. 농촌진흥청은 최근 돼지의 배설물을 톱밥으로 흡수시켜 공해를 막고 노력비를 절감할 뿐 아니라 비료로도 사용할 수 있는 톱밥발호 돈사를 개발했다.

과립형 감귤 캘리포니아산과 싸울 만
 감귤 중에는 껍질을 벗겨도 알맹이형태를 글대로 유지하는 과립형만이 경쟁력이 있다. 우리나라 감귤은 미국 일본에 비해 생산성에서 뒤질 뿐 아니라 가격도 미국에 비해 1.3배 정도 높다. 그러나 ‘알알이’ ‘봉봉’ 주스의 원료인 과립형 감귤은 캘리포니아산에 비해 경쟁력이 있고 품질고급화와 생산비 절감으로 수출확대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관계자는 말한다.

 그밖에도 단감 채소 양다래 매실 약용작물 닭 누에고치 등도 유망한 수출 작목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거대한 일본 농축산물 시장을 적극 공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농촌경제연구원의 徐種赫 연구위원은 “일본은 88년도에만 해도 육류 40억달러, 과채류 36억달러어치를 수입했다. 국내 농산물값이 일본시장 판매값의 20~60% 선밖에 안된다는 이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수출전략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거센 농수축산물 수입개방 압력에 이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타결을 눈앞에 두고 농민들은 절망감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경쟁력 있는 농축산물 품목이 꽤 있다. 전세계적으로 교역되고 있는 1천여개의 농축산물 중에서 우리가 품질면에서 우수한 품목, 또 지리적으로 유리한 품목들이 있는 것이다. 이를 발굴해 발전시키면 내수확대는 물론 해외시장에도 얼마든지 진출할 수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획기적인 투자가 뒷받침돼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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