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위한 외교 펼칠 용의”
  • 김춘옥 국제부장 ()
  • 승인 1991.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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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주한 소련대사 올레그 소콜로프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있다. 올레그 소콜로프 초대 주한 소련대사(54)를 만나서 갖게 된 느낌이다. 고르바초프의 방한이 발표된 직후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은 소련대사관에서 어렵사리 만난 솔로호프 대사는 의외일 정도로 격의없이 인터뷰에 응했다. 유창한 영어에 가끔은 농담까지 섞어가면서 질문에 답하는 그의 모습은 가까워지기만 하는 한·소관계 그 자체였다.

●요즘 바쁘십니까?
 그렇습니다. 정상회담 준비로 여념이 없습니다.

●이번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이번 방한은 양국관계의 돈독함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미 상당한 정도까지 와 있는 양국관계를 가일층 고양시켜줄 것입니다. 이번 회담은 작년 6월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을 포함, 세 번째 만남으로서 양국우호관계를 다시 한번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는 소·한관계를 증진시키려는 우리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소 양국간에 특별한 현안이 없는 상황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방한합니다. 그 배경을 직접 듣고 싶습니다.
 이번 방한은 한국정부의 초청을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물론 현재 양국간에는 별다른 현안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양국간에 협의할 사항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양국간의 외교관계 수립은 한반도에 있어서의 긴장을 해소하고 안정을 도모하는데 이바지했습니다. 이 점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거론될 수 있는 한 분야일 것입니다. 또 다른 측면은 양국관계의 협조방안입니다. 양국 정상은 이같은 의제를 두고 많은 얘기를 나누리라고 봅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불과 열흘 앞서 발표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은 무엇입니까?
 이미 말씀드린 대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초청은 이미 오래전부터 추진돼왔습니다. 물론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대단히 바쁘지만 이번에 방한하기로 결심한 것은 그 자체가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반영한 것입니다.

●서울이 아닌 제주도로 정상회담 장소를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선은 빡빡한 일정을 고려한 것이겠지만 양국 정상이 어디서 만나느냐에 대해서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봅니다. 과거에 보면 세계의 정상들이 수도가 아닌 다른 곳, 이를테면 몰타나레이캬비크 심지어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만난 적도 있습니다. 제주도로 택한 것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정상 보다 편리한 곳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만나 광범위한 주제를 토의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서너시간 가량의 방한은 너무 짧지 않습니까?
 물론 정식 틀을 갖춘 확대정상회담을 갖기에는 적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현재 소련이 당면하고 있는 정치적 어려움 때문에 사실 대통령이 해외방문을 한다는 것이 극히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현재 소·한관계에 비추어 시간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전격적으로 방한을 결정한 배경에는 일본과의 협상 때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닌가요?
 소·한 관계와 소·일 관계는 완전히 별개의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이든 일본이든, 아니 그 어느 나라든 이 지역의 모든 나라와 관계를 개선하기를 원합니다. 한국은 우리의 바로 이웃에 있습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은 자연 우리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같은 점에서 우리가 고르바초프의 방한을 대일카드로 사용한다는 시각은 온당치 않습니다. 재차 강조하건대 우리는 한국과의 관계 증진을 희망합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아시아 집단안보 구상과 관련하여 그의 한국 방문이 아·태지역의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과 같은 시대에서 우리가 군사적 용어(註 : ‘교두보’를 지칭)를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특히 우리의 아·태정책에 관해서는 그렇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미 수년전 블라디보스토크 선언에서 밝혔듯이 소련은 아·태지역 국가들과의 관계증진을 선언한 바 있습니다. 아·태지역에 있어 소련은 중요한 일원입니다. 우리는 이 지역에서 첫째 긴장의 완화와 함께 안정이 정착될 수 있도록 기여하길 바랍니다. 이는 우리에게 있어 분명한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문제입니다. 특히 한국과 같은 이웃나라의 긴장상태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이 지역 국가들과 고립된 존재가 아니고 협조자가 되길 바랍니다. 다시말해 이 지역 국가들과 생산적이고도 건설적인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느 한 나라를 몰아붙이거나 이 지역 국가들이 맺고 있는 여타 국가들과의 관계를 해치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아·태지역에 대한 소련의 정책은 개방적이고 솔직한 것입니다.

●소련의 대한반도 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해 주십시오.
 대한반도 정책의 근간은 긴장완화입니다. 고도의 군사력이 집중돼 있는 한반도의 상황은 세계 어느 지역과도비교가 안됩니다. 따라서 이 지역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한국도 이 문제에 대해 분명히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이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지역 모든 관계당사국들의 대화와 노력이 중요합니다. 바로 이점이 우리가 한국과의 수교를 하게 된 중요한 배경 중의 하나입니다.

●남북한 통일에 대한 소련측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통일문제는 남북한이 일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한국민이 아닌 제3자가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습니다. 물론 보다 건설적인 과정을 위해 협조할 수는 있겠지요.

●소련은 한반도가 통일되려면 미군철수와 비핵지대화가 선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레그 미국대사는 최근 한반도의 비핵지대화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소련은 이와 관련해 대단히 중요하고도 일방적인 선언을 한 바 있습니다. 즉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핵무기를 통한 선제공격은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다른 나라도 한반도에 있어 우리와 같은 공약을 한다면 이는 평화구축을 위해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점진적인 신뢰구축조치를 취해 나간다면 아마도 궁극적으로는 군축도 가능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소련은 한반도에 군대를 진주시키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 정부는 금년중 유엔에 단독가입안을 제출한다는 방침을 확정했습니다. 우리의 유엔가입에 대한소련의 공식 입장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과거 수차례에 걸쳐 모든 나라가 보편주의에 입각해 유엔에 가입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을 표명해왔습니다. 이는 진지한 목적을 가졌다면 어느 나라든 유엔회원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남북한이 동시에 가입할 수만 있다면 소련은 이를 전적으로 지지할 것입니다. 따라서 남북한이 앞으로도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유엔가입에 대한 합의점은 찾기 바랍니다.

●소련은 아직도 북한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관계를 과거와 같은 혈맹관계로 규정해도 되겠습니까?
 나는 북한주재 소련대사가 아닌 한국주재 대사입니다. 우리는 한국과의 관계만큼이나 북한과의 관계도 돈독하길 바랍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소련은 남북한이 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고 나아가 보다 생산적이고 협조적인 관계를 이룩하는 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련정부는 한국과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도록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의사는 없는지요?
 주권국가간에‘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표현은 적당치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타국의 국내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이는 내정간섭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남북 총리회담에 응한 배경에는 소련의 영향력 행사가 주효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북한도 나름대로 지혜가 있는 나라입니다. 총리회담의 경우 북한 지도부가 알아서 판단한 결정이라고 보고싶습니다.

●그 ‘지혜’라는 것은 외부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던 것이 아니었는지요?
 어쨌거나 우리는 북한이 앞으로도 그같은 지혜를 계속 발휘하기 바랍니다.(이 대답을 하던 중 솔로호프대사는 두눈을 찡긋 감으며 미소를 머금은 표정을 지었다.)

●한·소 경협문제로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30억달러에 이르는 대소 경협에서 보듯 한·소 경협은 쌍방적이기 보다는 일방적이라는 느낌을 갖는 한국인이 낳습니다.
 한국 기업인들에게 물어보면 아시겠지만 소·한경협은 그들에 대단히 관심있는 사안입니다. 한국 정부의 차관은 소련 정부나 국민 모두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소련 국민에게 그들의 상품을 팔 수 있을 것이고 소련 국민도 물건값을 지불한다는 점에서 경협은 쌍방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소·한 경협은 결코 일방적이 아닙니다.

●외교관계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도 이런 방향에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요?
 소·한 관계는 그 이상이라고 봅니다. 경제관계는 양국의 다양한 관계의 한 측면이 될 수 있겠죠. 양국 지도자는 이밖에도 관심사항이 많습니다. 소련으로서는 경협외에도 한국 정부에 선의의 고려를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즉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를 위한 건설적 목표를 위해 우리의 영향력 권위 능력 다시말해 외교력을 펼치는 것을 말합니다. 소·한 수교로 이미 이같은 목표의 하나를 달성했다고 봅니다. 이 지역에서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관계당사국간의 대화가 중요합니다.

●요즘 소련 상황이 복잡한 것 같습니다. 대사는 국내 정정을 어떻게 보십니까?
 분명한 것은 개혁정책의 큰 줄거리는 그대로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단지 그 진행과정에서 파생되는 문제가 복잡할 뿐입니다. 물론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문제점도 많지만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면서 파생한 문제도 많습니다. 도 소련은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한국과는 달리 다양한 민족을 포함하고 있는 광대한 국가입니다. 우리에겐 자원과 능력있는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한국처럼 단일민족의 작은나라가 오늘과 같이 성장하는 데도 무려 30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이제 겨우 개혁 6년째에 접어 들고 있습니다. 당초 문제를 지나치게 생각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현실을 직시해 볼 때 이제 우리는 개혁작업을 완수하기 위해서 보다 큰 결의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우리는 정치체제를 개혁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고 있으며 경제분야에 있어서도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기에 부심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수도 있었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실각설이 끈질기게 나돌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의 한국방문일에 중앙위원회가 고르바초프를 제거하리라는 외신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6년 전 시작한 개혁정책을 계속 추진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같은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수 있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고르바초프 최후의 날’과 같은 각본도 이런 점에서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나는 쿠데타니 하는 루머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언제 처음으로 아셨습니까?
 어렸을 때 학교에서 알았습니다. 그때만해도 한국은 아주 멀리 떨어진 나라라고 생각됐습니다. 이제 여기와보니 한층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도 많이 사귀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받은 첫인상은 한국의 발전상입니다. 특히 한국민의 근면성은 인상적입니다. 한국은 참으로 경치가 좋은 나라입니다. 수도 서울에도 언덕도 있고 산도 있고 해서 마치 소련의 남부지방에 와 있는 느낌입니다. 따라서 한국에 오게된 것, 이 나라의 초대 소련대사로 선택된 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소련 국민에 대한 한국민의 감정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순전히 내 개인적인 제한된 경험내에서 말씀드리자면 소련 국민쪽에서보다 한국 국민이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소련의 영토 생활양식 관습 등에 대한 효기심 측면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소련 국민도 한국민과 마찬가지로 마음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언제쯤 한국과 소련은 현재 한국과 미국이 누리는 관계만큼이나 돈독한 관계를 누리리라고 보십니까?
 우리는 한국이 소련이든 미국이든 어느 나라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한국과 어는 일국과의 관계를 손상시키면서 한국과의 관계를 도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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