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 넘어 남북 직교역 ‘합작생산’은 머나먼 길
  • 김재일 경제부차장 ()
  • 승인 1991.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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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있지만 서서히 늘듯…북한·일 수교 변수 ‘웬만한’ 손해 감수하며 경제협력 확대해야
 분단 46년만의 남북한 물자직교역은 남북관계에 있어 하나의 이정표라 할 만하다. 직교역 합의는 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환상을 경계한다 할지라도 남북한 경제협력을 강화시키는, 의미있는 조짐으로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단계에서의 남북교역은 빈약한 물물교환 방식이지만, 앞으로 확대될 것이고 나아가 좀더 진전된 형태의 경제협력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남북한 당국이 직교역을 승인함으로써 남한의 천지무역상사(회장·劉相烈)는 이달말쯤 쌀5천톤을 인천항에서 남포항으로 반출하고5월초 북한의 금강상 국제무역개발회사(총사장·朴敬允)로부터 무연탄 3만톤과 시멘트 1만1천톤을 반입할 것으로 보인다. 천지무역상사에는 직교역에 관한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벌써부터 현대 등 대기업은 북한에서 반입될 석탄 전량을 사겠다는 제안을 해오고 있다. 북한산 시켄트 또한 품질이 좋아 불티나게 팔릴 것이라고 천지무역의 劉載承 기획실장은 말한다.

 남북한의 직교역 승인을 계기로 삼성물산 (주)대우 효성물산 등 종합상사들은 대북한 교역의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남북 직교역의 경우, 우선 홍콩 중국 일본 등 제3국 중개상에게 간접교역 때 지불해야 하는 10~15%의 커미션만큼 이득을 볼 수 있다. 중개상들은 남북한 간접교역에는 위험이 않다고 판다, 통상적인 3% 내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커미션을 요구해왔다.

 관계당국은 남북한의 수출입 구조를 분석한 결과 올 1년 동안 2억8천여만달러어치의 북한산 농수산물과 광산물, 즉 철광석 유연탄 아연괴 니켈괴 알루미늄괴 옥수수 생사 명태 오지어 한약재의 반입이 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그 반면에 20억달러어치 정도의 남한산 공산품과 농수산물, 즉 냉연강판 강관 승용차 손목시계 컬러텔레비전 냉장고 음향기기 면직물 감귤 김 등의 반출이 가능할 것으로 분석한다.

 전문가들이 남북 직교역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우선 남북한 무역은 한동안 물물교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번 거래할 때마다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것도 들여와야 한다는 것이다. 원자내나 중간재 중심의 교역이기 때문에 무역확대에 어려움이 잇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북한측은 원산지가 밝혀질 수밖에 없는 남한산 완제품의 수입을 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품질을 보증할 만한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점도 지적된다. 계약위반이나 물건의 하자 등으로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이미 조성된 2백50억원의 남북협력기금으로 손실분을 보전한다 해도 교역 규모가 커지면 정부가 업체를 일일이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물품을 실은 배가 공해상으로 나갔다가 상대편 목적항으로 들어가는데, 이 또한 남북교류 촉진이라는 측면에서 불필요한 절차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남북한 직교역이 당분간 물물교환 형태로 서서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그렇지 않아도 간접무역을 통한 남북한 교역량은 올 들어 3개월 동안 모두 55건 3천9백30만달러에 육박해 지난 한해 동안의 78건 2천2백여만달러를 훨씬 웃도는 등 남북 경제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남북 경제협력은 직교역 확대뿐만 아니라 남북 합작생산의 형태로까지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측 기업이 정작 눈독을 들이는 것은 직교역 확대보다는 북한의 노동력이다. 남쪽이 자본과 기술이 북쪽의 자원·노동력과 결합된다면 국제경쟁력확보에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태국 인도네시아 중국 등에 진출하고 있지만 언어소통, 문화 차이, 현지인과의 갈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은 지난 84년 합작회사 운영법을 제정, 세계 각국의 회사와 개인이 북한의 회사·기업소와 북한 여내에서 ‘합영기업’을 설립·운영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합영기업은 국제 합작의 한 형태이나 출자한 쌍방이 기업의 경영과 손실에 대해 공동으로 책임을 지며 이윤을 공동분배한다는 데 특징이 있다.

 합영법 발표 이후 현재까지의 합영기업 실적은 북한내 유치가 1백30여건, 해외진출이 80여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국토통일원에 따르면 회사명·합영당사자·자본금·사업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기업은 북한내 유치가 67건, 해외진출이 21건 등 88건뿐이다. 북한내에 유치된 67개 합영기업 중 50건은 조총련과 이루어진 것이며 해외진출 21건 중 13건은 소련과의 합영이다. 합영기업의 업종별 현황은 식당 관광 금융 유통정비 등 서비스 분야가 40%, 경공업이 25%, 농수산업이 15%이다. 또한 소련에 진출한 동의학계통의 합영기업에 힘입어 의료분야가 9%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금속기계·중화학공업, 기타 첨단과학기술 분야와 관련된 합영실적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단계에서 우리 기업의 북한내 합작생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대신 북한 소련 중국 등 3국의 접경지대인 두만강 하구지역의 개발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은 훈춘, 소련은 나홋트카와 보스토치니의 개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지역에 도로와 통신시설을 건설하는 등의 투자가 이루어져 경제특구가 조성된다면 이곳이 북한과의 합작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高日東 연구위원은 “두만강 하구지역에서의 구체적인 남북한 경제협력이 앞으로 5년 이내에 가능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훈춘시는 중국 길림성의 동부에 위치, 동남으로는 소련의 하산구와 접하고 있다. 훈춘시의 방천촌은 중국 소련 북한 3개국의 국경이 교차하는 곳으로 자유무역구를 건설하기에 유리한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동쪽의 소련의 변경 철도역인 빠오더거얼나야, 서남쪽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두만강구와 마주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훈춘은 소련·일본·한반도 및 동북아 국가들과의 무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 요지라고 볼 수 있다.

 남북 물자교역은 88년 ‘7·7특별선언’에 뒤따른 남북간 물자교역 개방조처 이후 간접교역 형태로나마 계속 이어져왔다. 종합상사들은, 초기에는 기업홍보차원에서 일용품 중심으로 반입했으나 최근 광산물 등 공업용 원자재 위주로 품목이 다양화되고 있다. 남북 경제관계에 있어 하나의 변수는 북한과 일본의 급속한 관계개선 조짐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일본과 수교할 경우 남한과의 교류를 피할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남북한 경제관계는 결과적으로 진전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시각도 있다. 북한과 일본의 수교에 의해 단기적으로는 남북 경제교류가 위축될 것이나 일본의 돈·물품·기술이 북한에 들어간다는 것은 결국 북한의 개방확대를 뜻하고,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남한과의 경제관계 개선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측이 어느 정도 손해를 보더라도 북한과의 경제교류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이질적인 체제를 서로 접근시키는 데 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일이며, 통일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투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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