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한인 2세 아버지 찾기 운동
  • 송준 기자 ()
  • 승인 1991.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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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섭씨 1백51명 신상자료 정리 …지난 3월 첫 열매 거둬

베트남에서는 한국인 아버지와 월남 여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를 ‘라이 따이한’이라고 부른다. 지난 17일《시사저널》 편집국에 모두 77가구 1백51명의 ‘라이 따이한’에 대한 신상명세 자료가 접수되었다. 보도를 의뢰한 사람은 호치민시에서 한인2세의 ‘대부’ 역할을 하는 鄭周燮(55) 씨. 정씨는 한 인2세를 위한 기술양성소 푹롱기술 학원의 운영을 맡고 있는데 원생들이 제출한 신상자료를 정리하여 한국 호주 동남아 각국에 흩어져있는 혈육을 찾는 일을 해왔다. 지난 3월이 사업은 작은 열매를 맺었다. 71년생인 트란 히(20)양의 아버지와 정씨 간에 연락이 닿은 것이다. 아버지가 부쳐준 3백53달러(약25만원)로 트란 양은 단번에 신데렐라가 되었다.

지난해 12월1일 문을 연 푹롱기술학원은 베트남 노동청 산하 사이공인력공급회사의 지원을 받아 기독교대한감리교 방콕한인교회 신광준(54) 목사가 개설했다. 이 기술학원은 컴퓨터반(5대 보유) 타자반(40대) 미싱반(20대) 회계반(전자계산기 10대) 그리고 영어반과 한국어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원 당시 45명에 불과하던 인원이 지금은 1백62명으로 늘었다. 학원 개설 이후(주) 대우 베트남 지사 등에 9명의 학생이 새로 취업했으며, 등산배낭생산업체(주) 효동은 베트남에 공장을 세우는 대로 30명의 학생을 주 ·야간으로 나누어 취업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15~25세에 이르는 ‘라이 따이한’ 들은 한국군이 머물렀던 사이공 캄란 나트랑 다낭 후에 등지에 주로 살고 있는데 현지 관계자들은 5천~1만 명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한다. 이들은 대부분 날품팔이나 행상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튀기’라는 인종적 차별과 적대국 군인의 자식이라는 사회적 억압을 피하기 위해 신분노출을 기피하는 사람을 감안하면 한인 2세의 수는 훨씬 늘어날 수도 있다.

가족 재결합 바라지는 않아
처음 정씨는 한인2세에게 ‘자전거  사주기 운동’을 벌였다. 베트남을 찾은 한국인 내방객들에게 자전거를 1대씩만 사서 기증해 달라 부탁했다. 이것이 상당한 호응을 얻어 자전거 54대를 한인2세들에게 전해 주었다. 이 운동은 그전까지 신분을 감추려던 ‘라이 따이한’이 자신의 몸에 흐르는 한국인의 피를 새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정씨는 덧붙인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가족 재결합이 아니다. 생존의 확인과 최소한의 양육에 대한 책임을 느껴달라는 것이다. 기술학원에 오기 전 이들은 창녀나 소매치기가 될 운명이었다. 자기 자식이 몸을 피는 인생을 살아 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정씨는 한인2세가 앞으로는 최소한의 정상적인 인생을 살 권리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미국인이 베트남에 뿌려놓은 씨앗 ‘아메 라시안’을 본국에 데려간 경우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그들은 혼혈아들을 필리핀으로 이주시켜 미국식 생활방식에 적응할 기간을 준 다음 지금은 모두 미국생활을 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아버지 찾기 운동’은 실적이 지극히 저조한 형편인데 정씨는 한국 가정의 폐쇄적 의식구조를 이유로 든다. 과거를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련자의 아내나 자녀가 한인2세의 존재를 꺼려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정씨는 한국 정부의 무관심이 가장 답답하다면서 “정부에서 괜한 일을 하고 다닌다고 나를 나무랄지도 모르지만, 한인2세 들이 범죄인이라도 된 뒤에는 정부가 아무리 떠들어도 이 아이들의 인생은 보상받을 길 없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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