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교육경시 풍조가 더 슬프다”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1.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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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언어연구교육원 강사 13명 ‘길거리 신세’

평생직장이라 생각하며 땀 흘려 일 해온 일터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되고 말았다는 것보다 대학에서 조차 이렇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경시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 참을 수 없이 화가 납니다.” 연세대 언어연구교육원(구 한국어학당)에서 16년간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오다가 지난 3월19일 사실 상 해고된 시간강사 김정혜씨의 말이다.

언어연구교육원은 올봄 새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 91년도 재계약 대상 시간강사 48명 중 7명에 대해서는 계약을 취소하고 김씨 등 6명에 대해서는 본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1년 계약을 학기당 계약으로 변경했다. 계약 변경이라고는 하지만 이번 학기에는 시간배정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상 13명이 무더기로 해고되고 만 것이다.

“처우개선 요구하다 노여움 산 것 같다”
현재 연구원을 상대로 부당해고 취소 청구소송을 준비 중인 김씨 등 해직강사들은 도대체 자신들이 왜 해고됐는지 영문을 모르겠다고 얘기한다. 대부분 10년 안팎의 경력자들인 이들은 연구원측이 주장하는 대로 자신들의 근무성적이 나쁘기 때문이었다면 벌써 몇 년 전에 해고를 했어야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이들은 연구원 측에 근무평가표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으나 묵살 당했다면서 자신들이 “89년 시간강사 협의회를 만들어 연구원 운영과 강사들의 처우개선을 꾸준히 요구해왔기 때문에 권위주의에 빠져 있는 연구원 상층부의 노여움을 사 해고된 것 같다”고 짐작한다.

또 연구원 측에서 그동안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한국말을 가르칠 수 있다. 연구원운영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나가라.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공공연히 얘기해왔던 점을 들어 근본적으로는 전문 인력에 대한 경시풍조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10년간 시간강사 일을 해오다가 이번에 계약 해지된 이숙씨는 “86년 연구원 측에서 계약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을 때 우리는 웃었다. 그런 게 없어도 성심성의껏 일해 왔는데 새삼스럽게 그런 게 왜 필요한지 몰라서였다. 그 제도가 우리를 일터에서 언제라도 쫓아내기 위한 것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우리 사회가 힘없는 사람에 대해서, 여성에 대해서 어떤 대접을 하고 있는지 이제야 분명히 알 것 같다. 요 며칠 동안 세상공부 많이 했다”고 말한다.

연구원 측과 이번에 재계약을 체결한 다른 시간강사들도 대부분 연구원 측의 처사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들은 현재 연구원 재학생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해직강사복직서명운동을 벌이는 한편 해직강사의 소송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동료들의 해고에 항의해 수업을 거부하고 있다는 10년 경력의 한 강사는 “연구원측은 이번에 중견강사들을 해고하면서 앞으로 강사들은 3년 이상 연속해 계약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이는 더 이상 전문 인력을 양성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람을 소모품으로 아는 풍토에선 도저히 가르칠 수 없다”고 얘기했다.

시간강사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연구원 측의 입장은 단호하다. 연구원 한국어교육부장 김은숙씨는 “이번 시간강사들의 계약해지는 민주적 절차에 의한 공정한 것이었다. 학생들의 평가와 담당 전임강사들의 평가를 종합해 결정했다. 물론 교수능력만 본 것은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법대로 하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호남지역 사람들의 성격을 비하하고 유신체제를 찬양하는 내용의 교재를 사용해 왔다 하여 곤욕을 치르기는 했지만 언어연구 교육원은 지난 59년 설립된 이래 30여 년 동안 3만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우리나라 외국인 한국어교육기관을 대표해왔다. 그동안 이 교육기관을 거쳐 간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어학당의 명성이 높은 것은 교재나 시설이 우수해서가 아니라 귀신같은 선생님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85년 졸업생인 재일동포 요한나 수녀는 “법원에서 어떤 판결을 내릴지는 알 수 없으나 우수한 선생님들이 교단에서 영원히 물러나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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