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동네 ’푸른 눈 촌장
  • 태안.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1.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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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한 미국인 ‘천리포수목원’에서 3백여 종 관리 …멸종위기 식물도 재배

유신정권의 마지막 치적으로 기록된 아산만 방조제. 그 방조제가 있는 삽교호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국도를 달리면 태안반도의 기암절벽이 서해바다와 맞닿아 절경을 이루고 있는 만리포에 이른다. 금모래 밭이 펼쳐진 해안선을 따라 천리포를 향해 20분 남짓 걷노라면 이번엔 연못 논 온실 초가집이 갖가지 나무와 목련꽃 속에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진 동산이 나타난다.

사단법인 천리포수목원. 충남태 안군 소원면 의항 리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수목원은 지난 1970년 한국에 귀화한 미국인 민병갈씨(71 ·본명 칼 페리스 밀러의 한국식 발음을, 따서 지은 이름)에 의해 세워졌다. 이곳은 올해까지 31년 동안 약 7천종의 국내외 희귀 수목 보호수를 수집 ·관리하고 세계 각지로부터 각종 식물의 씨앗을 들여와 보관하고 있어 원예학이나 임학 ·식물학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제법 잘 알려진 곳이다.

20만평이 넘는 방대한 천리포수목원에는 해송 ·육송 등의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볼 만한 구경거리는 7천여 종의 나무가 있다는 수목원 한가운데의 정원이다. 여기에는 제주도에서 자생한다는 머귀나무, 완도 지방의 감탕나무 등 희귀종 수목과 미선나무 꽝꽝 나무 호랑가시나무 등 멸종위기에 놓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식물도 포함돼 있다.

그밖에도 이 정원은 자연미를 그대로 살려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것도 특정이다. 우리의 전통가옥인 초가집, 한 마지기 정도의 논 그리고 제법 큰 연못까지 있어 정원 전체가 마치 옛 시골촌락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또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는 고풍스런 한옥정자가 있어 귀족적인 멋을 내고 있다.

현재 한 증권회사의 명예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민병갈씨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일흔 고개의 노구를 이끌고 이곳 수목원으로 내려온다. 30년 넘게 가꾸어온 수목원이 그에게는 말 그대로 ‘고행인 셈이다. 더욱이 지난 82년 35년간 몸담아 왔던 한국은행 조사부에서 정년퇴직 한 이후 그에게 수목원은 노후를 편히 보낼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민씨가 처음 한국에 온 것은 45년 한국이 해방된 바로 뒤였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미 해군 중위로 근무 하다가 일본어 통역관으로 선발대와 함께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한국인의 순박한 성품에 깊은 인상을 받은 민씨는 그때부터 한국에 눌러 앉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가 천리포수목원을 세우게 된 것은 지난 65년 누군가가 그에게 현재 정자가 서있는 자리를 사라고 제의하면서부터였다. 땅을 매입한 민씨는 그 후로도 부지런히 땅을 사들여 부지를 넓혔으며, 74년에는 이곳에 대량의 나무를 심어 본격적으로 수목원을 꾸미기 시작했다.

30년이 넘게 천리포수목원을 가꾸어온 민씨의 자랑은 이곳이 목련 꽃 재배의 국제적인 명소라는 것이다. 천리포수목원에는 현재 3백여 종의 목련이 수집 ·개량 ·관리되고 있는데 “단일 수종으로 목련 종류가 이처럼 많은 식물원은 세계적으로 드물다”는 것이 민씨의 얘기 다. 재작년 5월 그는 영국의 첼시꽃 박람회에 한국국적으로 참가하여 ‘비치기념메달’(Veitch Memori al Medal)을 받기도 했다. 첼시꽃 박람회는 영국왕립원예협회의 주관으로 런던에서 매월 열리는 꽃박람회 행사의 하나로 영국의 유명한 꽃 수집 ·판매상이었던 피터비치를 기념하여 원예 분야에 공헌한 외국인에게 비치기념메달을 수여한다. 이러한 일을 계기로 민씨와 천리포 수목원은 지난 2월 영국의〈텔리그래프〉지에 소개되기도 했으며 민씨는 최근 미국 목련협회의 초청을 받아 미국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곳에서 관리되는 목련으로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중국원산의 목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계곡에서 자생한다는 함박꽃과 기타 외국의 목련종류도 많다. 이 가운데는 히말라야지방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꽃의 크기가 직경 30cm 정도로 사람 얼굴보다 큰 것, 미국 산으로 이파리가 크고 향기가 좋다는 ‘태산목’도 있다.

천리포수목원은 목련 품종의 개발에도 노력하고 있다. 미국에서 원예학을 공부한 뒤 귀국해 수목원 일을 맡아보고 있는 송기훈씨는 “여기서 목련을 연구하다 미국으로 간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김군소목련’ 이라는 새로운 목련품종을 개발하기도 했다”며 연구 성괴를 소개했다.

외국과의 활발한 씨앗교류도 민씨의 자랑거리이다. 외국의 식물학 관련 단체와 매년 2백~3백 종류의 씨앗을 주고받는 천리포수목원은 최근 교류의 범위를 넓혀 중국 헝가리 쿠바 등 공산권을 포함, 전 세계 1백여 곳에 각종 수목 ·화초 씨앗을 보내고 있다.

수목원은 외국에서 들여온 씨앗을 체계적으로 보관 관리하기 위해 컴퓨터까지 설치했다. “초가집 안에 컴퓨터가 있는 곳은 대한민국에서 아마 여기뿐일 것” 이라며 민씨는 유창한 우리말로 자랑했다.

천리포수목원은 완전히 격을 갖춘 식물원은 아니라고 한다. 송기훈씨는 “우리 수목원은 사실 나무 종류만을 중점적으로 취급해왔기 때문에 식물원의 기능을 다소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목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밝혔다.

바닷가라서 이제 막 목련꽃이 지천으로 피기 시작한 천리포수목원은 4월 중순이 한창 바쁜 때이다. 초가집을 개조해 만든 사무실에서는 직원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입력을 하느라 정신이 없고 밖에서는 인부들이 제초작업 시설보수작업 접목 ·삽목 멀칭 펴기(한발과 건조 에 대비해 건초 밀짚 나뭇잎 등으로 나무 밑둥을 덮어주는 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민씨도 사람들 틈에 섞여 목련꽃 피는 낙원을 가꾸는 데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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